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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부터 웃지는 않았어요/망치와 정으로 깎이고 다듬기를 수차례 했는 걸요/그렇지만 여러분들은 쉽게 웃을 수 있죠? 자~ 스마일"(시 "미소" 전문).

"이젠 그댈 보내려합니다/하나 둘 셋/멀리 밀어 보내지만/다시 돌아오는 그대."(시 "그네" 전문).

디카시. 시 “미소”와 같이 실린 사진(왼쪽)과 시 “그네”와 같이 실린 사진(오른쪽).
 디카시. 시 “미소”와 같이 실린 사진(왼쪽)과 시 “그네”와 같이 실린 사진(오른쪽).
ⓒ 무크지 <다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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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온 반년간 무크지 <디카시> 6호(2009 하반기)에 실린 시다. "미소"는 '동리목월문학관 디카시 백일장' 최우수 당선작이고, "그네"는 '제2회 경남고성디카시페스티벌 디카시백일장 중등부 최우수 당선작'이다.

이 시들은 모두 10대 청소년들이 쓴 것이다. "미소"는 안현주(용강초교 6년)군이 탈 그림 사진을, "그네"는 김시정(고성중 3년)군이 놀이터의 그네 사진을 각각 휴대전화로 찍어 쓴 시다. 무크지에는 시와 사진이 함께 실려 있다.

2004년부터 '디카시'를 주창했던 이상옥 시인(창신대 교수)은 "젊은 세대일수록 디카시의 코드가 더 잘 맞는 것 같다"면서 "특히 10대들은 기성세대보다 더 순간 포착을 잘하고 디카시의 본질을 잘 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카시'는 디지털카메라(휴대폰)로 사물이나 장면 등의 사진을 찍고, 거기서 순간적으로 느낀 감흥을 시로 적어 놓은 작품을 말한다. '디카시'는 이상옥 시인이 홈페이지에 시와 사진을 함께 올리면서부터 붙은 이름인데, 지금은 새로운 '시담론'으로 자리잡았다.

'디카시'만 담은 무크지(이전 '디카시 마니아')가 2006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6호가 나왔다. '디카시집'도 나왔으며, 평론집도 나오고 있다. 월간·계간 문예지들도 '디카시'를 담거나 조명하고 있고, '디카시전'이라고 해서 전시회도 열리고 있다.

백일장도 열리고 있다. 경남 고성에서는 2008년에 이어 지난 5월 두 번째 '디카시 백일장'이 열렸고, 지난 6월에는 동리·목월문학관에서 '디카시 백일장'이 열렸다. 이 백일장은 원고지 없이 휴대전화에 사진을 찍고 시를 써서 제출하는 방식으로 열리고 있다.

'디카시' 낭송회도 열렸다. 서울시가 주최하고 세종문화회관이 주관했던 "시민과 함께하는, 시가 살아있는 공간" 행사가 지난 7~8월 사이 매주 토요일 선유도에서 열렸는데, '디카시 낭송회'가 열린 것.

문덕수·이상옥·이상범·오하룡·최서림·홍성란·오세영·이우걸·강희근·박노정·배한봉 등 시인들이 '디카시'를 찍고 써서 선유도에서 낭송한 것이다. 세종문화회관은 "현재 디카시는 한국을 대표하는 많은 시인들에 의해서 씌어졌으며, 인터넷을 중심으로 네티즌들이 디카시 쓰기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촌철살인에 해당하는 극명한 순간 포착"

무크지 <디카시> 6호 표지.
 무크지 <디카시> 6호 표지.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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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시> 6호에는 '현대시와 다양성'에 대해 다뤄놓았다. 김종회 경희대 교수(시인)는 "현대시의 새로운 장르, 디카시"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평상의 언어가 시가 되기 위해서 응축과 상징의 표현력을 얻어야 하듯이, 디지털 카메라의 사진 또한 피사체의 여러 표정 가운데 촌철살인에 해당하는 극명한 순간을 포착해야 마땅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디카시는 작고 소박하지만 순간적이고 강렬한 것을 지향한다"면서 "이제 현대문학의 새로운 얼굴로서 유년을 넘기고 있는 한국의 디카시가, 축약되고 정돈된 모양만이 아닌, 절제되고 정제된 의미의 깊이를 웅숭깊게 구현해낼 때가 되었다"고 제시했다.

또 그는 "문학사에 기록될 새 장르의 개척이 오히려 부차적인 항목이 되고, 늘 곁에 있던 일상과 새롭게 열리는 탈일상이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의미의 깊이와 감동의 힘이 중점 항목이 되어야 할 것"이라며 "그렇게 될 때 비로소 디카시는, 한국문학의 뜻있는 지평으로 영예롭게 부상하리라 본다"고 밝혔다.

김경복 경남대 교수(문학평론가)는 "디카시의 자리가 인터넷과 영상매체의 발달에 의존해 있는 만큼 그것의 향유 역시 그러한 매체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라며 "사진과 시는 순간성과 응결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디카시가 추구하는 극순간성은 사실 시가 갖고 있는 본질적 성격으로서 순간성과 관련된다"면서 "그런데 디카시는 너무 시각적 이미지에 우리의 상상력을 한정하는 약점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완하 한남대 교수(시인)는 "문학은 인쇄술 기반의 책 속에만 갇혀 자신의 상상력을 고갈시키지 말고,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포용하는 보다 넓고 새로운 미래로의 광야를 향한 실험적 스펙트럼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선태 목포대 교수(시인)는 "디카시는 정체된 우리 시단에 새로운 충격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며 "위기에 처한 시의 하나의 새로우 돌파구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며, 디카시 운동을 벌이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문덕수 시인이 선유도 행사에서 시를 낭송하고 있다.
 문덕수 시인이 선유도 행사에서 시를 낭송하고 있다.
ⓒ 무크지 <디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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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시, 신의 은총 ..."

<디카시> 6호에는 문덕수, 오세용, 원구식, 김상미, 복효근, 김영남, 목진숙, 황정산, 강영은, 천수호, 김륭, 황시은, 박준, 김지율 시인이 각각 시를 쓰고 그 옆에 시와 관련있는 사진을 찍어 놓았다.

곽경효 시인은 선유도에서 열렸던 행사에 다녀온 소감문을 "디카시를 콘텐츠로 하는 시의 공간 선유도"라는 제목으로 실어 놓았다. 곽 시인은 "행사가 진행되면서 사족 또는 연인 등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하나 둘 기다란 나무의자에 삼삼오오 몰려와 앉기 시작하면서 한 여름 밤의 시의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고 소개했다.

이상옥 시인은 권두언에서 "어쩌면 디카시는 신의 은총에 기대는 작업인지도 모른다"면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한다는 것은 인간의 의지보다는 신의 의지를 존중한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인간의 위대한 상상력을 운위하기보다 신의 그것을 우러러 흠모하여 포착하고 영상과 문자로 옮겨 오는 작업, 디카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2004년 4월부터 소박하게 개인의 실험으로 시작된 디카시가 이제는 어느덧 우리 시대의 새로운 시담론을 생산해낼 수 있는 문학코드로 확고히 자리 잡아가고 있다"면서 "지난 5년간 의욕적으로 전개한 디카시 운동이 선한 의지라면 그것은 전적으로 신의 은총이다"고 덧붙였다.


태그:#디카시, #이상옥 시인, #선유도, #디카시 백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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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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