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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기 그리고 또 한 학기. 이렇게 일 년을 우리들과 함께 보냈던 담임선생님을 떠나보내야 하는 학창시절의 기억을 다시금 떠올려보면 참으로 우리는 우리들 생각 밖에 안했다는 죄책감이 든다. 정들었던 선생님의 웃음과 목소리 그리고 추억들을 뒤로 한 채, 우리는 얼마나 바로 내일로 다가온 방학의 기쁨을 만끽하려고 애를 썼던가?

 

토리 헤이든의 <한 아이>를 읽으면서 나는 방학이라는 기간이 왜 그렇게 길게 주어지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좋은 방법 중에서 어떤 재미있는 것을 잊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재미난 일을 해야 한다는 법칙이 있는데, 한 달가량의 방학은 선생님과 떨어져있기 싫어하는 동심을 유혹하는 가장 좋은 무기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방학이라는 달콤함에 취해 선생님이 우리를 그리워하는 것을 외면할 수 있게 되는 동시에 우리가 현재의 정에 깊숙하게 얽매이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다음 학년의 새로운 기다림을 준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 아이>의 아이들은 방학이라는 즐거움 따위로는 교사와 제자들의 교감이 쌓아놓은 헤어짐의 아쉬움을 가로막질 못한다. 방학뿐 아니라 어떤 것도 쉽게 그들을 떼어놓지 못한다. 왜냐하면, 토리 헤이든과 그녀의 제자들. 특히 쉴라는 지금껏 한 번도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하면서 지금껏 살아온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토리와 쉴라의 관계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자주 인용되는 셍텍쥐베리의 <어린왕자>. 그 책 속의 여우와 장미의 에피소드에 대해서 나는 <어린왕자>를 자체적으로 읽었을 때 미처 제대로 깨닫지 못했던 그 '길들여짐'에 대한 절절한 느낌을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

 

어린왕자가 길들인 여우와 장미는 왕자가 사랑을 쏟은 수많은 것들 속에서의 유일무이한 친구였다. 토리와 쉴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그 둘은 서로가 서로를 유일무이한 선생님이자, 유일무이한 제자 사이로 길들여짐을 알고, 쉴라는 <어린왕자>를 통해서 새로운 정서적인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쉴라는 이별을 받아들이고, 그 이별이 영원함이 아니라 추억임을 알아간다. 그렇게 쉴라는 내적으로 성장을 이룬다.

 

왜 쉴라에게는 <어린왕자>의 길들여짐이 절실했나?

 

학교에 들어오기 전에는 어땠을까? 그녀는 고작 6살의 여자아이였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차도에 내다 버리고나서 그녀의 동생과 도망쳤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와 그녀는 수도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극빈층의 구역인 이민자 거주지에 살고 있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살았던 쉴라는 혹여나 아버지마저 그녀를 떠나버릴까 봐서 아버지가 원치 않는 행동, 그 자체를 야기하는 모든 것을 죄책감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이 바라봤을 때는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의 매질을 쉴라는 당연히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인지한다.

 

이렇게 비뚤어져버린 애정결핍이 낳은 그릇된 소유본능과 생존본능은 그 비뚤어짐이 점점 더 커져가면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낳고, 자신을 귀찮게 하는 이들에게 처절한 복수를 낳게 한다. 그녀가 다른 아이를 숨지게 할 때까지……. 그 누구도 쉴라의 이런 행동에 제동을 걸어주지 못했다. 그녀는 고작 6살의 나이에 살인을 하게 된다.

 

그러나 토리 헤이든과 쉴라의 만남은 쉴라에게 있어서 새로운 전환점을 갖게 도와준다. 뒤틀려버린 쉴라의 자아를 건강하게 회복시킬 수 없었다면, 만약 쉴라가 계속 그런 인생을 살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아마도 '히틀러'와 같은 인간이 되었을 것이라고…….더욱이 그녀의 뛰어난 지능은 더욱 위험한 인물이 될 수밖에 없을 것만 같은 불안함을 야기한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히틀러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따르면 히틀러는 항상 부모의 횡포 때문에 생존에 대한 위협을 느끼면서 자랐고, 그 때문에 생존 본능이 그릇된 가치관을 형성하게 되었으나 그것을 바로잡아준 선생님이 없었기에 그는 커서도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이들과 자신의 동족에 방해가 되는 인종을 모조리 살해한 잔혹한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던 쉴라에게 올바른 인간관계를 형성하게끔 만들어주었던 똑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는 반 친구들과 그녀의 선생님. 그들의 정서적인 편안함이 가져온 <길들여짐>이 어떤 역할을 했을지 <한 아이>라는 책을 탐독하면서 느껴보는 것은 참으로 유익한 경험이 아니었나 자문해본다.

 

한발 더 나가서, 유아교육을 전공하시는 분들이라면 저자인 토리 헤이든이 아이들을 다룰 때, 쉴라와의 마찰이 생겼을 때, 그녀가 어떻게 슬기롭게 그 상황을 무사히 넘겼는지 꼼꼼히 살펴보면서 읽어본다면 앞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순간의 여러 가지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한아이 1 - 아동교육 심리학의 영원한 고전

토리 헤이든 지음, 이희재 옮김, 아름드리미디어(2008)


태그:#한 아이1, #토리 헤이든, #아름드리미디어, #단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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