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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앞에서 선 한국미술의 거장 이우환선생. 소격동 국제갤러리(신관)
 작품 앞에서 선 한국미술의 거장 이우환선생. 소격동 국제갤러리(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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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신관)에서 한국미술의 세계적 거장 이우환(Lee UFan 1936~)의 올해 신작 '관계망' 10점을 선보이는 첫 조각전이 10월 9일까지 열린다. 돌과 철판으로 된 설치형식이다. 조각전이라 평면보다는 공간 그리고 물질성과 관계성이 더 중시된다.

이우환 선생에 대한 첫인상은 경남 함안의 지리산자락의 정기를 받은 작가로 꾸밈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애써 겸손해하지도 않고 안팎을 그대로 보여주는 현대판 선비라 할 수 있다. 웃을 때나 열변을 토할 때는 어린아이의 표정이 되살아난다.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이후에 한국미술을 이끄는 이우환, 그는 서울대미대를 다니다 일본으로 건너가 철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세계미술에 눈을 돌렸다. 백남준이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라면 그는 '모노하(もの派 the school of things)'의 창시자다. 이 학파는 초기엔 외면을 받았으나 지금은 전후(戰後)일본을 대표하는 사조가 되었다.

여백 있는 공간, 여유 있는 일상

'관계항(Relatum)-삼각관계' 철제와 자연석 20×170×1.5cm 40×40×40cm 2009
 '관계항(Relatum)-삼각관계' 철제와 자연석 20×170×1.5cm 40×40×40c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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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에게 있어 울림과 흐름이 있는 공간의 여백이나 거기서 일어나는 시각적 상상력은 빠트릴 수 없는 요소다. 자연과 문명을 맺어주면서 현실과 예술의 관계성을 주시한다. 돌처럼 가공하지 않은 소재와 약간 가동된 철판이 엇갈리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읽는다. 거기에서 긴장과 이완도 함께 맛볼 수 있다.

그는 느닷없이 "우리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야 한다"는 말한다. 대량소비사회에서 물신에 빠져 각박하고 눈먼 삶을 사는 개인이나 성급한 난개발로 자연을 훼손하는 국가정책자를 나무라고 질타하는 말인가. 작품에서 보는 것 같은 여백 있는 공간에서 일상에서 여유를 찾는 상상을 해보라는 권유 같기도 하다.

"그림 보는 재미는 호응하는 것과 만나는 데 있다"

'관계항(Relatum)-역학관계' 철제와 자연석 180×160×1.5cm 50×50×50cm 2009. 돌과 철판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
 '관계항(Relatum)-역학관계' 철제와 자연석 180×160×1.5cm 50×50×50cm 2009. 돌과 철판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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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당대미술을 모욕하듯 뒤샹(1887~1968)은 레디메이드인 변기를 뉴욕 전에 출품하여 세계미술계에 큰 쇼크를 주었다. 이우환도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선사시대 고인돌을 연상시키는 돌과 철판을 엮어 내놓았는지 모른다. 하여간 그는 40년간 돌을 찾아 전 세계를 찾아다녔다. 그 나라의 돌은 그 나라사람을 닮았다는 속 깊은 경험담도 소개한다.

그의 이런 작업은 '만남', '대화', '관계성'과 같은 키워드를 잉태시킨다. "만남은 무한을 낳고 대화는 작품을 낳는다", "작품 보는 재미는 '호응(correspondence)'하는 것과 만나는 데 있다", "표현이란 감각이나 상상력을 북돋워주는 것이다" 등에서 그의 관점을 알 수 있다.

원효의 '화쟁'과 백남준의 '비빔밥' 그리고 이우환

그는 볼거리 없는 현대미술에서 개념이나 사유의 뿌리를 중시한다. 전혀 다른 것을 병치시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미학을 구현한 것인가. 사실 우리시대 가장 시급한 건 '똘레랑스(다름 인정)', '화이부동(이견에도 화목)', 원효의 '화쟁(논쟁하면서 화합)' 같은 것이리라.

작가는 수천 년에 걸쳐 만들어진 돌과 산업화의 산물인 철판을 '관계의 미학'으로 엮어 자연의 상반된 두 힘인 음양의 원리를 차용한 것인지 모른다. 아무튼 작가는 이 점에 대해 "따로 사는 이 둘을 불러 인연을 맺어 대화로 이어주려 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이우환은 백남준과 예전부터 가깝게 지냈다. 그래서 그런지 두 작가의 사고방식도 너무 비슷하다. 작품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우환이 '돌과 철판'을 놓은 것이나 백남준이 '부처와 TV'를 놓은 것이나 그 원리가 같다. 서로 갈등하고 대립되는 것들의 공존과 더 나아가 동서의 화합까지 꾀하는 것이리라.

백남준 I 'TV 부처' 폐쇄회로 1976. 백남준아트센터소장
 백남준 I 'TV 부처' 폐쇄회로 1976. 백남준아트센터소장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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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항(Relatum)-눈짓' 철제와 자연석 220×200×2cm 90×90×90cm 2009. 돌과 철판이 서로 눈짓을 교환하는 것 같다.
 '관계항(Relatum)-눈짓' 철제와 자연석 220×200×2cm 90×90×90cm 2009. 돌과 철판이 서로 눈짓을 교환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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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원시적인 것과 문명적인 것을 서로 마주 놓는 것은 또한 오늘날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나 백남준이 말하는 비빔밥정신과도 통한다. 하긴 백남준의 친구인 요셉 보이스(1921~1968)는 2차 대전에 출전했다가 비행기사고로 추락, 8일간 타타르원주민의 도움을 받고 극적으로 살아난 후, 문명보단 원시에 더 애착을 둔다.

이렇게 모순되고 엇갈리는 두 오브제를 한데 놓는 착상은 분석적인 유럽인에게 감동과 전율을 준 모양이다. 이우환은 유럽에서 특히 프랑스에서 이렇게 인정을 받는다. 그래서 1991년에 프랑스문화훈장을 받았고 1997년에 파리국립미술대학교수가 되었고 그해 파리국립미술관(Jeu de Paume)에서 동양인으로 처음 개인전도 열었다.

여유로운 공간에 자유로운 마음이 흐른다

'관계항(Relatum)-물질과 언어' 철제와 자연석 200×190×2cm 900×90×90cm 2009
 '관계항(Relatum)-물질과 언어' 철제와 자연석 200×190×2cm 900×90×90c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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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보듯 이우환의 공간은 정말 넉넉하고 여유롭다. 그는 인위적이고 번잡한 걸 꺼리고 물의 흐름과 바람의 스침처럼 시공간을 자유롭게 구가한다.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어느 틈엔가 그림이 나를 그리게 된다"는 고백은 바로 이런 기질에서 나온 것이리라.

'물질과 언어'이라는 제목이 주는 시사점이 크다. 갑자기 사물이 어떤 언어로 서로 연관을 맺는지 궁금해진다. "한국엔 음식은 있으나 요리가 없다"는 작가의 발언을 듣고 보니 위 제목을 '음식과 문화'로 치환해도 좋은 듯싶다. 그는 우리가 아직도 애국주의에 빠져 문화적 촌스러움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말하고자 한 것 같다.

그는 한중일 음식을 체계적으로 비교한다. 일본은 재료에 조미료를 더해 그 재료의 차원을 더 섬세하고 높인다(A+b=A') 한국은 재료와 재료, 조미료를 섞어 절묘하게 침투시킨다(A+B=A'B') 중국은 재료와 재료, 조미료를 합쳐 맛이 완전 달라진다(A+B=C)로 분석한다. 이런 건 한중일 문화전쟁시대에 삼국의 장단점을 찾는 단서가 되리라.

"내 작품을 보러오는 사람이 많지 않기를"

'관계항(Relatum)-불협화음' 철제와 자연석 30×4cm 300×4(2개) 25×30×25cm 2009
 '관계항(Relatum)-불협화음' 철제와 자연석 30×4cm 300×4(2개) 25×30×25c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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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우환은 또 뜻밖에도 "내 작품을 보러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기를 다만 마음속으로 조용히 감상해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이건 작가와 관객의 '불협화음'인데 작가란 남의 시선보다는 자기의 신념을 용기 있게 믿는 존재라는 뜻에서 한 말일 것이다.

아무튼 이는 백남준이 1963년 독일 뒤셀도르프 근교 부퍼탈 첫 전시에서 선보인 '랜덤 액세스(Random Access)'와도 정신이 통한다. 왜냐하면 백남준의 이런 실험은 관객의 시선에는 안중에 두지 않고 그 자신도 규정할 수 없고 언제 어디서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상황에서 오직 예술의 새 가능성을 열고자 했기 때문이다.

'텅 빈 충만', 최소 개입으로 최대 공간 확장

'관계항(Relatum)-휴식' 철제와 자연석 350×5cm 80×100×80cm 2009
 '관계항(Relatum)-휴식' 철제와 자연석 350×5cm 80×100×80cm 2009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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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이번 전에서 경험한 가장 놀라운 점은 전시장이 텅 빈 것 같은데 마음은 그지없이 충만함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가 여러 번 언급한 "최소의 개입으로 최대의 공간을 확장하다" 혹은 "최소의 접촉으로 최대의 교감을 부른다"는 점을 증명한 셈이다. 

여기 '휴식'도 바로 그런 국물도 없는 사회 숨통이 막힌 것 같은 우리네 삶의 공간에 여유와 여백을 되찾아주려는 암시가 아닌가. 이제 끝으로 '이윽고 언어가 그치고 그 언저리에 여백이 퍼진다'라는 노래한 그의 시를 여기 옮기면서 이번 이야기를 맺고자 한다.

"산뜻한 한 장의 철판이 있다/ 그 건너편에 답답한 몇 개인가의 돌이 있다
멈추어 있던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짜임새가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리라
산뜻한 한 장의 철판은 하나의 생각이라도 좋다/ 답답한 몇 개인가의 돌은 공기라도 좋다
이윽고 언어가 그치고/ 언저리에 여울여울 여백이 퍼져간다" - 여백의 철학(99)에서-

덧붙이는 글 | 국제갤러리(신관) www.kukjegallery.com 종로구 소격동 62번지 02)733-8449. 이우환작가 영문홈페이지 www.officeleeufan.org 이우환저 <예술의 여백(2002)> 참고함



태그:#이우환, #백남준, #국제갤러리, #모노하, #뒤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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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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