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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한·EU 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14일 오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에서 '한·EU FTA 묻지마 타결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지난 7월 한·EU 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14일 오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에서 '한·EU FTA 묻지마 타결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우성

 

최근에 정부가 콜롬비아와 FTA를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뉴스를 통해 보도되었다. 지난 9월 3일에 한국과 콜롬비아 간에 열린 외교장관회담에서 FTA 공식 협상을 연내에 개시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이날의 회담에서는 지난달 말 종료된 한-콜롬비아 FTA 추진 타당성에 대한 민간공동연구의 결과를 평가하면서 이같이 합의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중남미의 분위기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중남미에서 미국과 FTA를 본격 추진하는 나라는 두 나라인 것 같다. 하나는 중남미의 대표적인 친미국가 콜롬비아이고 다른 하나는 인구 3백만 명의 소국(小國) 파나마이다. 나머지 나라들 대부분이 미국이 추진하는 FTA에 반대하는 상황이다. 특히 2005년 아르헨티나에서 있었던 미주지역정상회담에서 조지 부시가 미주대륙 전체를 포괄하는 FTAA(미주자유무역협정)을 들고 나오자,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을 중심으로 중남미 국가들이 단결해서 조직적으로 대항했던 사실이 있을 정도이다. 이미 중남미에서 FTA는 한물, 아니 두물 간 구상이다.

 

중남미 나라들이 이렇게 FTA에 대해서 반발이 심한 이유는, FTA가 결국 미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적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에 중남미 나라들을 편입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를 통해 캐나다와 멕시코의 노동자, 농민, 서민들이 미국의 독점자본들에게 궤멸적인 피해를 입은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가. 북미를 넘어 미주대륙 전체로 FTA를 확장하려는 미국의 시도는 이미 파탄이 나고 중남미 대륙에서 FTA는 시체처럼 땅에 파묻혀 버렸다. 그나마 친미국가 콜롬비아와 소국 파나마를 중심으로 진행 중인 FTA조차 여러 가지 이유로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미국이 추진하는 FTA가 힘을 못쓰는 중남미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것은 ALBA(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동맹)이다. 쿠바와 베네수엘라를 중심으로 2004년 12월에 처음으로 결성되어 어느덧 9개 회원국을 보유하게 된 이 국가 간 협력체제는 대략 다음과 같은 원칙으로 운영이 된다.

 

- 이윤이 아닌 국민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협력을 바탕으로 회원국 간의 무역과 투자를 증진한다.  

- 회원국은 서로 협력하여 모든 회원국 국민들에게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실시한다.

- 국민들의 수요에 맞춰 회원국의 에너지 자원을 통합한다.

- 미국과 지역 신자유주의 매체에 대응하는 대안 매체를 만들어 남미의 정체성을 찾는다.

- 회원국은 토지를 재분배하고 식량안보를 지켜낸다.

- 국영 기업을 육성한다.

- 기본 산업을 발전시켜 경제적으로 독립한다.

- 노동운동, 학생운동, 사회운동을 장려한다.

- ALBA의 모든 사업은 친환경적이어야 한다.

 

운영원칙을 찬찬히 읽어보면 알 수 있듯, ALBA는 단순히 이윤추구를 위해서 무역을 하는 기존 국가 관계와는 근본부터 다르다. ALBA 회원국들은 각 나라의 자주권을 존중하는 관계 속에서 서로 간의 장점을 공유하고 각 나라들이 자신의 두 발로 설 수 있도록 공동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ALBA는 자본주의식 이윤추구 모델이 아닌 연대와 협력의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할 수 있다. 베네수엘라의 무상의료 시스템을 지원하기 위해서 약 2만명의 쿠바 의사들이 베네수엘라로 건너가 의료봉사를 하며, 베네수엘라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쿠바에 석유를 제공하는 관계. 이렇게 서로 돕는 협력적 관계가 ALBA의 국가 관계이다.

 

이와 같이 ALBA가 중남미로 급속하게 번져가는 과정에서 중남미의 대표적 친미국가, 아니 왕따국가 콜롬비아와 FTA를 덜컥 추진하는 뜬금없는 정책이 과연 누구 머리에서 나온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중남미의 대표적인 친미국가 콜롬비아와 아시아의 대표적인 친미국가 남한과의 FTA 추진을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할까? 세계 경제에서 중남미가 점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나가고 있다는 것은 신문 국제면을 꾸준히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중남미 대부분의 국가들은 미국식 FTA가 아닌 다른 모델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왕따국가 콜롬비아와 FTA를 추진하는 정부가 중남미에서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너무나 우려스럽다.


#콜롬비아#FTA#A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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