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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리옹대학의 로베르 포리송 교수는 독일의 가스실의 존재를 부정하는 몇 편의 저서를 발표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역사 왜곡"이라는 이유로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기소되었으며, 국제사회로부터 엄청난 비난에 직면했습니다. 이러한 분노의 상황 속에서 지식인 500명이 포리송 교수의 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청원서를 제출합니다. 그 속에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식인 중 한명으로 선정되었던 노암 촘스키 교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그가 어떤 의견을 가졌든지 상관없이 표현의 자유를 가지고 있으며, 세상 모두가 도덕적으로 혐오하는 그런 의견을 표현할 때일수록 더욱 더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에 나는 그 청원서에 서명했다."

 

시인은 파면되고, 최고의 진보논객은 재임용 탈락하고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본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생각과 말로 인해 부당한 박해와 불이익을 받고 있다면 우리는 '깨어 있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행동하는 양심'의 명령에 따라 그를 지키고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2009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경제에 관한 예측과 전망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혹독한 고초를 당한 미네르바 박대성씨는 암울한 현실이 낳은 대표적 피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6년 시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된 황지우 시인은 끝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파면당했습니다. 황지우 시인은 함께 밤을 지새우며 어깨걸고 노래하고, 술을 마시며 세상의 어둠을 뚫고자 몸부림쳤던 저의 30년 지기 친구입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며 5공의 어두운 현실을 통렬하게 질타하던 이 시대의 시인, 나의 친구 황지우가 바로 그 현실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 친구로서 저를 응원했던 것이 배경이 되어 결국 이런 결과로 나타난 것 같아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이번에는 시사평론가 진중권 교수가 또 다른 희생자가 됐다는 우울한 소식이 들리고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진중권 교수는 재기 넘치고 날카로운 풍자와 독설로 수많은 누리꾼들의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고 후련하게 해주고 있는 우리시대 최고의 논객입니다.

 

평소 진중권 교수의 생각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어떠한 쟁점과 현안에 대해서는 그와 철저히 생각을 달리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참신한 상상력과 자유로운 사고는 무척이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저의 좌우명은 '구동존이(求同存異)'입니다. 같음을 구하되 다름의 존재를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생각의 다양함과 표현의 자유로움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동력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강준만, 고종석, 김규항, 우석훈, 홍기빈, 이 다섯 분의 존경하는 지식인이 진중권 교수 지지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진중권씨를 지켜내는 일이 진중권씨보다 불리한 환경에서 작업하고 사유하는 지식인들 일반을 보호하기 위한 공공성을 가진 일이라고 믿기에 이렇게 뜻을 같이 하게 되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헌법에 명시된 사상과 표현의 자유와 권리를 수호하고자 지식인들이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있는 이 때, 정치하는 사람으로서 무엇을 하고 있나라는 반성과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권력에 의한 눈에 띄는 억압만큼이나 무서운 것은, 그러한 억압이 사회 각 분야에 파고들어 암묵적인 합의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진중권 교수를 겨냥한 여러 대학들의 잇따른 강의 취소와 다양한 형태의 법률적 압박은 이러한 합의가 공개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여 참담할 뿐입니다.

 

프랑스 계몽철학자 볼테르의 잠언을 기억하라

 

1990년 여름, 니카라과 취재를 갔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산디니스타반군 지도자였던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의 연설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청바지를 입고, 팔뚝에 셔츠를 걷어붙인 채 이렇게 외치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예술가들에게 자유의 공기를 숨쉬게 하겠다. 그러니 더 이상 마이애미로 망명하지 말라. 이곳 조국에서 시와 미술과 연극, 소설 등 예술 활동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하겠다."

 

500여명의 예술가들은 환호했습니다.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처럼 90년대 초 중남미의 척박한 사회주의국가에서조차 '자유의 공기'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진국 도약, 국민소득 2만불 돌파를 외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지식인들의 자유로운 상상과 표현이 억압받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이제 진중권 교수마저 정치권력과 제도권 학계의 공모로 희생된다면, 그 다음에는 우리 모두가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프랑스의 계몽철학자 볼테르의 유명한 잠언을 기억합니다.

 

"나는 당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당신의 생각 때문에 탄압을 받는다면 나는 당신을 위해 싸울 것이다."

 

진중권 교수를 위해, 아니 그 다음에 억울한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 그를 응원하고 도울 것을 제안합니다. 그를 지키는 것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국회의원입니다. 


태그:#진중권, #황지우, #정동영, #파면, #재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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