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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링 선수의 음식 손맛은 어떨까?

매트리스 위에서 상대선수를 제압하던 솥뚜껑만 한 손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제는 레슬링을 접고,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전직 레슬링 선수 권왕진씨의 손맛을 들여다 보았다.

레슬링 선수에서 주방 코치로 변신

레슬링선수 시설에는 날렵한 몸매로 각종 대회서 이름을 날렸다
▲ 레슬링선수 시절 레슬링선수 시설에는 날렵한 몸매로 각종 대회서 이름을 날렸다
ⓒ 권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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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시 문성리에서 '권대감 옛날옛적에'를 운영하고 있는 권왕진(41)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한 레슬링으로 다부진 체력을 자랑했었다.

하지만 후배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주방 코치로 전환하면서 육중한 몸매로 변했다. 그는 음식 앞에만 서면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섬세해진다고 겸연쩍어 했다.

권씨는 체육 중·고등학교 재학시절에 소년체전과 전국체육대회 등에서 각종 상과 메달을 휩쓸었다. 태릉선수촌에서도 이름을 날린 권씨는 연습 도중 큰 부상으로 레슬링을 그만둬야 했다.

눈물을 머금고 올림픽 국가대표의 꿈을 접고 선수촌을 떠나왔다. 하지만 레슬링은 천직. 은퇴 후에도 후배들을 가르치며 코치로 레슬링 주위를 떠나지 않았다. 또 후배들의 몸 보신을 위해 주방코치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선수생활을 접고, 후배들을 가르치며 주방코치를 자임했다.
▲ 레슬링 선수는 요리중 선수생활을 접고, 후배들을 가르치며 주방코치를 자임했다.
ⓒ 전득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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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코치가 된 권씨는 항상 먹을 것이 부족했던 후배들에게 직접 음식을 만들어주는 주방장 역할을 자임했다. 물론 레슬링도 함께 가르치면서 말이다. 그때부터 권씨와 요리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후배들이 무슨 음식이든 기막히게 맛있다며 빈 그릇을 내놓을 때가 가장 흐뭇했었죠. 처음엔 라면부터 끓여 주었는데 나중에는 요리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음식을 만드는 솜씨도 계속 늘었던 것 같아요."

사실, 권씨의 음식 솜씨는 어머니에게서 나왔다. 어린시절 고향에서 오랫동안 음식점을 운영했던 어머니 옆에서 귀동냥 손동냥으로 배웠던 것이다. 어머니는 남자가 주방에 들어오면 안 된다고 내쳤지만 권씨는 늘 주방 주위를 맴돌았다. 밥 냄새가 좋았고, 요리가 좋고, 먹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후배들 떠나자 아예 갈비탕집 개업

이후 권씨는 후배들이 전지훈련을 떠나면서 자연스럽게 주방 일과 코치를 그만둬야 했다. 그때 그는 후배들이 인정해준 손맛을 밑천으로 삼고 음식점을 개업했다. 종목은 갈비탕. 개업과 동시에 현수막도 내걸었다.

'한우 갈비탕 개업기념, 한 그릇 1천 원'

5천 원짜리 갈비탕을 1천 원에 팔았으니 손님 숫자로는 대박이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은 물론, 문을 열기도 전에 음식점 앞은 장사진을 이루었다. 손맛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개업 기념 행사가 끝나자 손님들을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다. 싼 가격 때문에 온 것이었다. 결국 그는 많은 손해를 보고 개업 한 달만에 문을 닫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레슬링대회에서 패한 것보다 더 억울하고 원통했다. 음식으로나마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꿈도 한순간에 사라졌다. 고객들의 입맛은 정직했다. 권씨는 그때 맛의 정직함을 배웠다고 한다.

이후 그는 음식점을 접고 가전제품 대리점도 운영했었다. 그것도 여의치 않아 속옷가게를 차렸는데 불경기와 맞물려 싼 가격이 통했다. 여성 고객의 성향도 파악하고, 돈도 꽤 벌었다. 제법 잘 나가는 사장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오기와 뚝심이 생명인 레슬링선수의 본능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패했던 음식점을 다시 해보기로 결심했다.

어머니에게 기본을 배우고 전국 맛집에서 요리를 배우다

 쓰러져가는 고택을 일일이 수리하니 근사한 음식점이 되었다.
▲ 권대감옛날옛적에 전경 쓰러져가는 고택을 일일이 수리하니 근사한 음식점이 되었다.
ⓒ 전득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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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제대로 몸 푸는 시간을 가졌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획하고 준비했다. 전국의 맛있는 음식점만 찾아다니며 일일이 메모하고 기록했다. 기본 장류와 양념 그리고 숙성 비법 등의 자료들을 노트에 기록한 것만도 10여 권에 달했다. 그리고 그는 고향의 어머니를 찾아갔다.

어머니에게 두 손을 내밀어 보이며, 정직한 손맛을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다 큰 아들이 음식점을 다시 하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불을 끄고 가래떡 써는 연습부터 시켰다. 기본이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시래기를 삶고 말리고, 고추 가지 부추 마늘 등을 텃밭에 심고 가꾸며 기본기를 다시 배웠다.

이후 그는 차별화된 경영전략과 음식 맛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쓰러져가는 고택을 임대했다. 혼자서 고택을 수리하며 경영과 맛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 나갔다. 고택에 어울리는 음악과 소품, 환경 등을 선택해 디자인을 했다. 그리고 음식 종목은 바비큐로 정했다.

참나무 장작불로 황토가마에서 익힌다.
▲ 참나무 황토 바비큐 참나무 장작불로 황토가마에서 익힌다.
ⓒ 전득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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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씨는 전국을 돌며 기록해 놓은 10권의 노트를 참고해 바비큐 맛을 만들기 시작했다. 쉽지 않았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후 '참나무장작 황토바비큐'를 개발해 냈다.

참나무 장작불로 지피는 황토가마의 훈연만으로 익히는 오리 바비큐와 돼지 바비큐의 기막힌 맛이 바로 그것. 오리고기는 와인과 흑마늘에 3일간 잠재우고, 돼지고기는 부위별로 와인과 월계수 잎에 3일간 숙성시켰다.

"바비큐 요리는 오리와 돼지 특유의 잡냄새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비큐를 잘못 요리하면 텁텁하고 밋밋한 맛을 내기 때문에 금방 맛에 싫증을 느끼게 합니다. 때문에 부위별로 향긋하고 쫄깃한 맛을 내는 데 주력했죠."

오리 돼지 바비큐를 백김치에 둘러 한입 먹으면 세상 모든 시름을 잊는다.
▲ 권대감 바비큐 오리 돼지 바비큐를 백김치에 둘러 한입 먹으면 세상 모든 시름을 잊는다.
ⓒ 전득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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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식탁에 오른 바비큐가 식어버리자 제 맛을 못 낸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레슬링 선수시절 뜨거운 자갈밭에서 훈련했던 것이 생각난 것이다.

권씨는 자갈보다 열을 더 오래 품는 '자수정'을 준비했다. 그리고, 연탄불에 자수정 돌을 구워 바비큐 고기 아래에 깔았다. 예상대로 고기는 식지 않고 본연의 맛을 오래 간직하며 입맛을 지켜 주었다.

레슬링 한판승에 바비큐가 무료...
적립금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권씨는 운동하는 후배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참나무 장작을 직접 패게 하고, 황토가마에 불을 지펴 바비큐를 맛보였다. 그리고 맛에 대한 장·단점을 기록해 하나 하나 개선해 나갔다.

이번에는 오픈 현수막을 거는 대신 체험 이벤트를 마련했다. 그것이 뜻밖의 큰 호응을 얻으며 특색 있는 맛집으로 성장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손님이 직접 도끼로 장작을 패게 하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장작을 1회에 쪼개면 바비큐 쌈밥 정식 무료, 2회에 쪼개면 바비큐 2인분 서비스, 3회에 쪼개면 파전과 동동주 등을 선사했습니다."

장작을 한번에 쪼깨는데 선수인 권왕진씨. 이것도 힘과 기술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 레슬링 선수의 손맛을 보여주마 장작을 한번에 쪼깨는데 선수인 권왕진씨. 이것도 힘과 기술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 전득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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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씨는 레슬링 선수였음을 당당하게 밝히고 '힘자랑 이벤트'를 실시했던 것이다. 손님들은 함께 온 가족을 응원하고, 직원들은 권씨를 응원하는 등 재미와 맛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고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어 권씨는 '권대감 레슬링 선수권 대회' 이벤트도 실시했다. 레슬링 한판으로 손님이 이기면 주문한 음식 값이 모두 무료, 권씨가 이겼을 경우엔 주문한 음식가격을 모두 적립하게 하는 것.

권씨는 그 적립금액을 모아서 한 달에 한 번씩 보육원 아이들을 초청해서 오리와 돼지 바비큐를 실컷 먹도록 했다. 그러면서 나눔의 정도 생겨났다.

"'권대감 옛날옛적에'를 생각하면 마음이 참 푸근해지는 곳이라 기억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기억 속에, 마음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편안하고 정 넘치는 고향의 '권대감 네'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조그만 목표입니다."

권씨는 오늘도 보육원 아이들을 위해 '권대감 레슬링 선수권 대회'를 또 연다. 날씨가 추워져서 대회 개최가 어려워지기 전에 적립금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선수 생활을 하다가 음식점 사장으로 변신했지만 그는 여전히 레슬링선수고, 국가대표다. '권대감 옛날옛적에'서 만큼은 그가 국가대표가 된 것이다.


태그:#권대감 옛날옛적에, #레슬링 선수, #권왕진, #바베큐요리, #전득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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