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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 우려.
 
이명박 정부 2기 내각의 총리 후보로 내정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바라보는 조중동의 반응이 이러합니다.

이 대통령이 표방한, 중도실용에 어울리는 참신한 인물을 고른 것엔 높은 점수를 줄 만하지만, 이 정부와 여러 면에서 대립각을 세운 그의 전력을 생각할 때 혹여 국정혼선이 빚어지지나 않을까 우려된다는 것입니다. 호의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조화와 조율을 특별히 주문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정씨의 파격 발탁을 "비판자를 총리로"란 헤드라인으로 깔끔하게 정리한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이 대통령과 정 총리후보의 차이가 혼선이 아니라 조화로 나타나야만 대통령이 이번 개각으로 얻으려고 하는 화합과 개혁이 이뤄질 수 있다"며 두 사람의 차이를 조화로 승화시키라고 당부했습니다.
 

중앙일보는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총리를 기대한다"면서도, 현 정부의 정책 기조와 일치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선 "이것이 자칫 정부 내 정책 불협화음이나 국정 혼선으로 번지지는 않도록 충분한 토론과 조율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본다"고 우려를 표했습니다.

동아일보는 "(정씨가) 부분적으로 현 정부 경제정책에 비판적 자세를 보였지만 한국경제 전반을 바라보는 인식이나 친기업적이면서도 친서민적인 성향 등에서 이 대통령과 비슷한 면도 많다"고 치켜 세우면서 "국정 운영에서 잡음이 나오지 않도록 이 대통령과 조화를 이루는 데 유념할 일이다"고 목소리를 깔았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참여정부 때만 해도 정씨를 바라보는 이들 신문들의 눈길은 이렇듯 너그럽지 않았습니다. 너그럽기는커녕 아주 몹쓸 사람쯤으로 폄훼하고 비난하기 바빴드랬지요. 조중동 눈에 비친 당시 정운찬 총리 후보의 모습이 여하했는지 잠시 감상해 보시렵니까.

우선, 동아일보는 2007년 3월 26일자 사설 <政治하려면 교수·CEO·종교인 모자 벗고 해야>에서, 정 전 총장이 전국을 순회하는 강연정치를 통해 사실상 대선행보를 하고 있다며 "정치와 대학에 양발을 걸치는 모습이 여느 폴리페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충청도 출신이라서 덕 본 것도 많아 갚으려고 한다" "충청인이 나라 가운데서 중심을 잡아 왔다" 등등 출신지역과 관련해 그가 내뱉은 발언들을 소개하면서 "새 정치를 하겠다는 대학 총장 출신이 기성 정치인들도 삼가는 지역주의 행태를 보이는 것이 실망스럽다"고 쏴붙였습니다.

또 2007년 5월 1일자 사설 <정운찬 씨에게 '꽃가마'는 없었다>에서는, 정치참여를 놓고 저울질하는 그의 어정쩡한 태도 때문에 "우유부단하고 기회주의적인 지식인의 전형"이라는 얘기까지 들린다고 냉소하면서 "정씨는 현란한 언어의 유희로 자신의 의도를 감추거나 포장했을지 모르지만 우리 정치의 구태인 기회주의, 인물 중심의 급조 정당 추진, 지역주의 편승 등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동아일보는 2002년 10월 25일자 사설 <서울대총장의 비뚤어진 여성관>에서, 법원에서도 성희롱을 인정한 '우 조교 성희롱 사건'에 대해 정 총장이 "과장됐다" "터무니 없는 소리인데 판결이 나버리고 나니 그만" "이 사건이 재계약에서 탈락된 우 조교의 앙심에서 비롯된 일로 당하는 사람은 죽을 맛"이라고 말함으로써 "사법부의 권위를 부정"하고 남성우월적 시각을 드러냈다며 이렇게 거세게 비난했습니다.

"성희롱이 으레 있을 수도 있는 일이며 가해자인 남성이 오히려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시각을 드러낸 것이다... 정 총장은 기관 내 성폭력 문제를 다스릴 책임이 있는 기관장이다. 그런데 가해자와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성희롱이 범죄행위임을 망각한 경솔한 일이다... 게다가 정 총장은 "여성운동도 신중해야 한다"는 말로 마치 옳지 않은 일에 여성단체가 나서는 것처럼 여성운동을 폄하했다... 그의 '흉금을 터놓은' 발언은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가부장적 보수성과 왜곡된 여성관의 일면을 드러낸 것이어서 개운치 않다..."

중앙일보의 정운찬 평가도 냉혹하기는 마찬가지. 중앙일보는 2007년 3월 8일자 사설 <정운찬씨 정치 하려면 서울대 떠나야>에서, 교수와 절반의 정치인 사이에서 왕래하고 있는 그를 가리켜 "몸가짐이 바르다고 할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정운찬에게 부족했던 것>이란 제목을 단 2007년 5월 1일자 사설의 내용은 훨씬 구체적이고 세부적입니다. 이번에 총리 후보로 내정된 그를 떠올리며 잠깐 들어 보시죠. 

"그는 대통령 후보의 냄새만 피웠지 왜, 무엇을 하려고 대통령이 돼야겠다는 비전이 없었다. 그렇다고 서민의 아픔에 대한 대변도 하지 못했다... 최고 지성인으로서 '체면의 대접'은 누리면서도 '고민의 의무'에는 나약했다. 그는 추상적인 언어에는 익숙했지만 부동산.교육 등 사회의 실질적인 난제에는 능숙하지 못했다. 적잖은 이가 그가 신선하다고 했다. 그래서 유권자는 '신곡'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충청도 지역주의라는 '옛곡'을 부르고 말았다..."

조선일보의 정운찬 비판은 한미FTA에 대한 그의 입장변화와 연관이 있습니다. 2007년 3월, "준비 없는 FTA 추진은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많다"며 협상을 2008년, 2009년까지 연장해야 한다고 발언했는데, 조선일보가 그를 "범여권의 FTA 반대 대선 走者들"로 묶어 분류하면서 "이들이 갑자기 FTA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진짜 이유는 '나라 걱정'이 아닐 것이다"고 격하게 비난한 겁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이 대통령에 대한 날선 비판자였다가 하루 아침에 총리 후보로 변신한 정씨의 기막힌 인생유전을 생각하면서 2006년 11월 8일자 조선일보 양상훈 칼럼 <관료는 영혼이 없다> 몇 대목을 읽어 보십시오.

"승진시켜 주는 사람이 하라면 그게 무엇이든 정치인보다 더 앞장서서 총대 메고 나선다. 외국 관료도 승진을 원하지만 이렇게 제 영혼까지 팔면서 달려들지는 않는다. 인간이란 게 원래 그렇다 해도 도를 넘어섰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음에 또 정권이 바뀌면 그 정권 앞에서 지금의 처신을 180도 뒤집고 총대 메고 나설 관료들이 광화문, 서초동, 과천에서 대기하고 있다. 틀림없는 일이다.

정치·경제·외교·군사 모든 면에서 국정이 엉망이 되고 있는 것은 위정자의 꼭두각시 노릇을 앞장서 하는 관료들의 책임도 크다. 101년 전 장지연 선생이 "돼지와 개만도 못한 대신들"이라며 토한 울분이 생각나는 시절이다."


폐일언 왈, 정씨는 '영혼 없는 관료들' 내지는 "돼지와 개만도 못한 대신들"의 목록에서 과연 열외될 수 있을까요? 그이 역시 정권 앞에서 지금의 처신을 180도 뒤집고 서울 어딘가에서 대기하고 있는 게 틀림 없는 일일텐데 말입니다.

아니, 그 이전에 조선일보에 따르면 나라 걱정도 아니 하고, 중앙일보에 따르면 추상적 언어에만 익숙하고 사회의 실질적 난제에는 능숙하지 못하며, 동아일보에 따르면 기회주의적 지식인의 전형에다 사법부 권위도 부정하고 공과 사도 구분 못하며 여성운동을 폄하하고 성희롱이 범죄인 줄도 모르는 이런 인물이 일국의 총리가 돼도 괜찮은 걸까요?

아니 아니, 그 이전에 제 입으로 정씨의 흠결과 잘못된 점을 조목조목 나열해 놓고도 정작 그가 총리 후보로 낙점되자 그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애오라지 "이명박 만세"만 부르고 있는 조중동 코미디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소와 쥐만도 못한 정치인들과 돼지와 개만도 못한 신문지들 때문에 혈압만 오르고 있는 요즘입니다.


#TAG 9.3 개각#이명박 2기 내각#정운찬 총리 후보#조중동과 정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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