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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경 지음. 한겨레출판
▲ 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한겨레출판
ⓒ 윤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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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가슴에 삼천 원쯤은 있는 거예요" 생뚱맞게도 나는 누구에게나 과거에 짝사랑했던 선생님에 대한 추억이 있다는 의미의 멋진 말을 찾으려고 생각하던 중에 드라마 '쩐의 전쟁'에서 신동욱씨가 했던 유행어가 갑자기 생각났다. 왜 생각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의미를 되새김질 해보았다.

"누구나 가슴에 상처 하나쯤은 있는 거예요"가 원래 대사였지만 "누나 가슴에 삼천 원"이라고 들리게 만든 그의 어눌한 발음 덕분에 우리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던 그 대사가 아직까지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아마도 누구나 상처 하나쯤은 있다는 그 대사가 내 마음속에 깊은 파문을 일으켰기 때문이 아닐까?

가슴에 상처가 되었든 사랑이 되었든 간에 누구나 과거의 기억은 남아있다. 이 책<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바로 그런 우리들이 가진 넓디넓은 기억의 샘을 자극한다. 그리고 나 역시 저자의 요구에 순순히 내 기억 속의 선생님을 그려보았다.

기억 속의 우리 선생님

중학교 1학년에서부터 2학년 사이에 내가 다녔던 학원에서 과학을 가르쳤던 선생님. 내가 다니던 반을 담임도 동시에 맡으셨던 그래서 그녀의 마음에 들고자 너무 열심히 했던 나머지 상위 클래스로 옮기는 바람에 떨어져야 했던 선생님. 그 때는 선생님의 반에 계속 남아있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떠나보낸 선생님.

나는 이 책의 주인공 동구처럼 동구의 박영은 선생님과 함께 하루에 한 시간씩 남아서 둘만의 공부도 한 적이 없었고, 어른들의 세계에 어울려 같이 술자리를 하지도 못했고, 더욱이 동구처럼 고백 비슷한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저자 심윤경님은 동구와 박영은 선생님의 이야기를 매개로 해서 나의 과학 선생님에 대한 기억샘을 촉촉하게 자극시킨다. 그래서일까 동구의 행동 하나하나가 심윤경님이 만들어낸 '상상 그 이상의 표현력'과 이리저리 반죽되어 마치 내가 과거에 동구가 된 것처럼 몰입해서 사건을 바라보도록 조종됨을 느꼈고 흔쾌히 조종당해주었다.

1980년 5월 18일

이 책의 시간적 배경은 1977년부터 1981년까지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박영은 선생님이 할머니를 만나러 광주에 잠시 내려간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문장을 보고서 지금껏 동구가 되어버린 내 머리 속은 마치 천만근의 포대자루가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 사랑하는 나의 박영은 선생님……. 어찌하여 하필 그날에 내려가시나이까…….

"실은 제가 오늘 밤에 광주에 내려가야 하거든요. 19일이 할머니 생신이라서요. 그날 아침에 미역국이라도 같이 먹고 올 생각이에요. 학교에는 월요일에 휴가를 내겠다고 말씀드려 놓았어요." (225쪽)

내려놓은 휴가 계획서를 마지막으로 그녀는 그렇게 동구에게 멀어져버렸다. 주리삼촌은 믿을 만한 사람의 이야기라며 박영은 선생님이 이미 돌아가신 것 같다고 이야기하지만 동구는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 이를 때쯤 저자는 희망적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해준다.

"나는 바랜듯한 금빛 깃털을 발견하고 벌떡 일어섰다. 나의 눈에 띄었던 금빛 가슴 털의 새, 야윈 곤줄박이는 얼음위에서 날아오르지 못하고 깡충깡충 뛰어 연못을 벗어났다. 살아있었구나, 나의 곤줄박이야. 그 어느 못된 손목이 던진 돌팔매에 맞아 날개를 다치고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이렇게 살아서 아름다운 정원에 남아 있었구나." (314쪽)

저자는 이미 아이들의 돌팔매에 희생된 줄로만 알았던 곤줄박이가 살아있음을 우리에게 암시해주면서 생사를 알 수 없는 박영은 선생님의 대한 소식에 희망을 의미하는 파란불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 파란불은 무너져버린 동구네의 가족사에 있어서도 큰 의미로 다가온다.

가족 간의 반목 그리고 영주

동생 영주가 1977년에 태어나면서 이 책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소박맞을 년이라는 시어머니의 푸념 속에 아이를 낳았지만 남아선호사상의 희생양으로 '동구 동생 복자'라고 불릴 뻔한 이 여자아이는 영주가 되면서 6살 터울의 동구에게 하나의 자랑거리가 된다.  

게다가 영주는 세 살이 돼 글을 읽을 줄 알게 되면서 난독증세를 보이던 동구와 그의 가족 그리고 마음 사람들에게 신동소리를 듣게 된다. 이처럼 영주의 존재는 가족 간의 불화에 있어서 하나의 희망으로 그들을 옭아매주는 튼튼한 버팀목이었다. 

자기 아들을 빼앗겼다는 상실감에 며느리를 못살게 구는 할머니. 그런 시어머니의 알력 때문에 마음 편히 살 수 없는 어머니. 고부간의 싸움에 관해서는 무조건 아내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는 아버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생활을 불만스러워하는 동구에 박영은 선생님의 당부는 바람직한 것이었다.

"동구야, 엄마와 아버지와 할머니의 일은, 어른들의 일이라는 거야. 동구 네가 돕고 싶어도 잘 안 될 수도 있어. 그분들은 오랫동안 당신들의 방식으로 살아오셨기 때문에 동구가 아무리 좋은 방법을 알고 있어도 그분들이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인지도 몰라. 일단은 동구가 어른들 마음을 헤아리고, 아버지나 할머니나 엄마에게 늘 힘이 되는 큰아들이 되면 어른들은 정말 기뻐하실 거야." (117쪽)

그러나 가족 간의 불화 속에서 유일하게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애정을 받아내면서 그들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던 영주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뒤에는 지금껏 엉겨붙어있던 화약고가 한순간에 폭발하듯이 그렇게 집안은 풍비박산으로 허물어져버린다. 할머니는 엄마를 지 아이 잡아먹은 년이라고 욕하고, 아버지는 영주가 숨진 그 자리에 분노를 느끼며 커다란 망치로 부숴버리고, 어머니는 자신을 미친년 취급하는 시어머니 밑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어 정말로 신경쇠약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만다.

그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동구는 내면적인 성장을 이루어낸다. 참혹한 현실 속에서 그가 믿고 의지할 수 있던 유일한 존재인 박영은 선생님의 말씀을 곰곰이 생각했던 결과, 꿈속이지만 마치 실제로 박영은 선생님이 그의 앞에 나타나 말하는 것처럼 깨달음을 주고 그렇게 동구는 하나의 결심을 하게 된다.

"누군가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는 그 사람이 왜 저러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해봐. 모든 행동엔 이유가 있지 않겠니."(300쪽)

"남을 이해하려면 네가 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봐야 하거든. 어렵더라도, 그 사람을 위해서 깊이깊이 생각해봐야 한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거야. 특히 이해하기 힘든 사람일수록 정성을 다해서 더 깊이 생각해야해. 내 생각엔 말이야. 동구 할머님은 아마 다섯, 아니 네 식구 중에 당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계시는 것 같아." (302쪽)

동구의 내면속에서 얻게 된 가르침이라는 것은 모든 행동을 이해하면서 그 행동이 왜 일어나는지 생각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구는 모두의 화목을 위해서 잠시나마 떨어져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깨닫게 되면서 가족이 떨어졌을 때, 가장 외로워하실 할머니 곁에 남아서 할머니의 고향으로 같이 가기로 결정한다.

인왕산의 중턱에 자리 잡은 삼층집의 쇠창살 속에서 널따랗게 펼쳐져 있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그렇게 다시는 볼 수 없을 정원으로 동구의 추억 속의 한 장면으로 남게 된다. 그리고 박영은 선생님이 살아 계실 것 같은 암시를 주던 '곤줄박이'는 그들의 가족사에 있어서도 하나의 희망적인 미래를 암시하면서 그렇게 막을 내린다.

어린 시절의 첫사랑, 민주화의 물결, 가족사의 비극적인 내용들을 한데 버무리는 동시에 작가 특유의 예측을 불허하는 섬세한 묘사력은 나를 감탄시키기에 충분했음을 몸이 먼저 인식해버렸다. 그리고 처음 접했던 심윤경이라는 작가의 존재감이 가슴에 커다랗게 자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그녀의 작품을 많이 접해볼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더 좋은 작품을 기대해봐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한겨레출판(2002)


태그:#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한겨레출판, #단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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