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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전세값이 폭등하고 있습니다. 부동산정보업체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전세가격 상승이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가족이 편안히 쉴 곳을 걱정하는 일 없이 사는 것이 점점 더 요원해지는 시절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를지, 언제까지 오를지 알 수 없습니다. 출렁이는 전세 값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던 동네를 떠난 친구와 주기적으로 이사를 다녀야 하는 친구는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습니다. 여기 친구 두 명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금 내던 시민 내쫓는 서울시 뉴타운 재개발

다가구 주택이 사라져갑니다. 서민들이 모여 살던 곳들이 점점 줄어듭니다.
 다가구 주택이 사라져갑니다. 서민들이 모여 살던 곳들이 점점 줄어듭니다.
ⓒ 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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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C는 전업주부입니다. 남편의 일터가 동대문 근처라 신혼 초부터 왕십리에 살았습니다. 지금은 뉴타운 개발 때문에 이사를 갔습니다. 집집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뉴타운이 진행되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왕십리를 떠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관리처분인가'가 나기도 전에 이주비를 받은 집주인들은 내용증명으로 명도소송을 할 거라며 세입자에게 이사 갈 것을 종용하기도 합니다. 뉴타운 지역은 강북 안에서도 오래된 집들이 모여 있는 경우가 많아서 지은 지 15년 이상 된 다가구 주택은 아파트나 신축 빌라 시세보다 저렴한 값에 빌릴 수 있었습니다.

대중교통이 편리한 왕십리에서 60제곱미터(열여덟 평)에 방이 세 개나 있는 집들이 6500만 원, 50제곱미터(열다섯 평) 정도에 방이 두 개인 집은 4000만 원 정도면 빌릴 수 있었으니까요.

봄에 서둘러 이사한 사람들은 사정이 조금 낫습니다만, 올 가을에 이사를 앞두고 있는 세입자들은 갈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전세 값이 가파르게 오르기도 했지만,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는 강북 뉴타운 재개발 때문에 서울 시내에 다가구 집 자체가 귀해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친구는 같은 가격으로 이사를 가려고 하니 주변 지역에는 전세값이 천정부지로 솟아 도저히 갈 곳이 없다고 합니다. 길 건너 동네는 4000만 원에 살던 집이 자고 나니 7000만 원으로 거의 두 배 가까이 올랐다고도 합니다.

집 주인 못지않게 집값을 올리는 데 열심인 사람은 부동산 중개업소들입니다. 일부 공인중개사들은 계약기간이 만료되기 몇 달 전에 미리 '물건'을 파악해서 집주인들에게 전화를 건다고 합니다. 뉴타운 때문에 이사 갈 사람이 많으니까 집값을 더 올려 받을 수 있다고 친절(?)하게 알려준다는 것이지요. 그런 전화를 받고 그냥 끊는 주인이 몇이나 될까요? 그렇게 올라간 집값은 주변 집값 상승까지 연결됩니다. 그리고 다시 주변 전세값에 반영되는 수순이지요.

악순환의 고리는 서울 시내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의정부나 경기도 포천으로 이사한 이웃들도 있습니다. 문제는 일터가 을지로와 동대문에 몰려 있다는 것이지요. 출퇴근 시간이 두세 배로 늘어나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뉴타운으로 인해 서울에는 원거리 출퇴근을 하는 저소득층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서울시 버스나 지하철 운영과 인구의 서울 집중 현상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부자들이 살 수 있는 중대형 아파트를 짓기 위해 오밀조밀 모여 살던 다가구 주택들이 철거되고, 서울 시내에서 일하고 세금 내던 사람들이 시내 밖으로 쫓겨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곁에서 봐도 고달파 보이는 '메뚜기형 이사'

다가구 주택 대신 중대형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입니다.
 다가구 주택 대신 중대형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입니다.
ⓒ 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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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도서관에서 일찍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빈 자리를 찾아 다니는 학생들을 가리켜 '메뚜기족'이라고 불렀습니다. 먼저 자리를 맡은 사람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앉았다가, 임자가 나타나면 비켜주는 귀찮은 일이지요. 제 친구 중에는 이사도 메뚜기형으로 하는 집이 있습니다. 순전히 일 때문입니다.

친구 P가 다니는 회사는 강남과 강서 두 곳에 지점이 있습니다. 2년이나 3년에 한 번씩 순환 근무를 해야 합니다. 한 곳에 너무 오래 있으면 부정의 소지가 있기도 하고, 강남 근무자가 아이들 교육면에서 일종의 특혜를 누리기 때문에 공평한 인사발령과,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인력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진행하는 순환근무입니다.

친구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어느 지점에서 일하든 별로 상관하지 않더니, 임신을 한 뒤로 대치동에 있는 구립어린이집 대기자 수를 확인하더군요. 막상 복직이 강서지점으로 결정되자 이사 갈 집을 찾느라 눈코 뜰 새 없는 날들을 보냈습니다. 값이 오른 것도 문제였지만, 강남에서 강서로 이사하는 경우라 돈보다는 빈 집이 문제였습니다. 회사 근처에, 보내고 싶은 어린이집이 멀지 않은 집을 구하려니 쉽지 않았던 거지요.

며칠 동안 퇴근 후에 세 식구가 발품을 판 끝에 가격 대비 만족도가 괜찮은 집을 찾았습니다. 친구 남편은 그나마 강남에서 햇빛도 거의 안 드는 방 두 개에 33제곱미터(열 평)짜리 좁은 집에서 생활하다가, 강서로 옮기니 집이 조금 넓어지고 햇빛이 잘 들어서 오히려 애를 위해서는 더 잘됐다고 말했답니다.

친구P는 강서에서 몇 개월을 보내고 난 뒤, 이번에는 강남으로 옮길 때를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1년 몇 개월 후에는 아이 교육을 생각하면 강남 쪽으로 근무지가 바뀌는 것이 환영할 일이지만, 전세값이 이미 수직 상승한 터라 집 구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을 미리 걱정하는 것입니다. 이번 가을에 오른 집값이 다음 번 인사이동에서 친구에게 전세 보증금 폭탄이 될 것입니다.

곁에서 지켜보기에도 정기적으로 강남과 강서를 오가며 일하는 친구가 주거안정과는 먼 생활을 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집 문제는 교육문제, 직장문제와 연결돼 있습니다. 맞벌이 부부의 출근길과 아이들 양육까지 고려하면 집을 구하고 옮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 가진 사람들의 편리와 탐욕에 덜 가진 사람들이 몸도 마음도 고달파지는 시절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태그:#전세대란, #뉴타운 ,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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