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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괴짜 학자들, 한국 사회를 뒤집어 보다'란 주제로 열린 대담회. 왼쪽부터 홍기빈, 김규항, 김민웅, 진중권, 우석훈.
 28일 '괴짜 학자들, 한국 사회를 뒤집어 보다'란 주제로 열린 대담회. 왼쪽부터 홍기빈, 김규항, 김민웅, 진중권, 우석훈.
ⓒ 이대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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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만약 하루 동안 대통령이 된다면?

"사퇴하겠다."
"저도 사퇴하겠다."
"하루 종일 잠만 자도 지금보다 나라가 더 잘 굴러간다는 걸 입증하기 위한 실험을 하겠다."
"이명박이 등장한 건 결국 한국은행장이 나빴기 때문이다. 나를 한국은행장으로 만들겠다."

위로부터 홍기빈·김규항·진중권·우석훈 4명의 답변이다. 진보진영의 'F4'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가장 활발히 대중과 호흡하며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지식인 4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괴짜 학자들, 한국사회를 뒤집어보다'란 주제로 한국 사회의 현 모습을 진단하고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대담회는 경찰국가, 폭력, 신자유주의, 빈곤, 학교, 교회, 대통령 서거 등 우리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대담자들이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등 시종일관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된 대담회는 4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넘겨서도 끝날 줄을 몰랐다. 대담회에 참석한 300명 이상의 청중들도 긴 시간 동안 자리를 함께했다.

28일 건국대학교 새천년관에서 열린 대담회는 책 <괴짜 사회학> 출간을 기념하며 김영사·프레시안·예스24에서 공동주최했다.

김민웅 교수, 진보지식인 'F4'가 4시간이 넘도록 나눈 대화의 모든 양과 모든 열정을 기사로 담아낼 수는 없었기에 일부 주요대목만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경찰국가] "좋은 경찰 필요하지만 경찰의 두목이 이명박인 게 문제"

우석훈: "경찰국가로 간다고 생각한 건 사실 이명박 정권 때가 아니라 노무현 정권 중간부터다. 노무현 정권시 FTA를 반대하며 농민들이 죽어나갈 때 한국이 경찰국가로 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한국 자본주의가 경찰 없이는 지킬 수 없는 단계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속도가 이명박 정권 들어 굉장히 빨라진 거다.

또한 GDP 2만 불이면 지하경제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공식발표로는 우리나라 GDP의 10~15%를 지하경제로 보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을 것 같다. 이건 깡패국가란 거다. 깡패들이 갖고 있는 깡패경제가 굉장히 강하다. 깡패 중의 왕깡패가 골프장 끼고 있는 건설업자이고 그 깡패 중의 완전 두목이 이명박 대통령이다.

10여 년 전부터 조폭들이 건설업체 갖게 됐고, 돈세탁을 위해 바다이야기를 만들었고, 그런 사람들이 지방정부를 갖고 있고, 그 사람들의 모임이 한나라당이고, 그 사람들의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이다. 비공식경제의 비리는 경찰들이 막아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다. 좋은 경찰이 필요하지만 경찰의 두목이 이명박인 게 문제다." 

홍기빈: "경찰이라는 조직이 공적기구인지 민간기구인지 스스로 헷갈려하는 상황이다. 쌍용자동차 사건에 대해 경찰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는데 이건 아주 심각한 문제다. 이건 마치 소방서가 불을 꺼준 후에 불 껐으니까 수도값 내고 대원들 치료비 내놓으라는 얘기와 마찬가지다. 이렇듯 공적영역에 있는 기구라기보다도 민간영역에서의 싸움꾼 행세를 하기도 한다. '국가기구가 공적영역에 속하느냐, 그렇다면 지켜야 할 공공성이 뭐냐'에 대해 당사자들이 근본적인 인식전환을 하고 계신 듯하다. 앞으로 굉장히 걱정되는 부분이다."

[폭력] "1년에 뺨 한번 맞을 일 없는 사람들의... 끔찍한 폭력 "

김규항: "중요한 건 세상에 폭력주의자는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잘 생각해보면 폭력이 좋다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사람은 없다. 비폭력주의자가 아닌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말로서의 비폭력주의는 아무 소용이 없다. 1년에 뺨 한번 맞을 일 없는 사람들이 서재나 토론장에서 얘기하는 비폭력주의란 피해자 당사자에겐 오히려 끔찍한 폭력이 될 수 있다. 비폭력주의라는 것은 오로지 폭력의 현장에서만 나올 수 있다. 간디는 비폭력주의자였지만 항상 폭력의 현장에 있었고 결국 폭력에 의해 희생당했다. 하지만 오늘날 간디의 비폭력주의를 말하는 사람들은 폭력의 현장에 있지 않다.

딸아이를 데리고 용산참사 현장에 갔었는데 아이가 "아빠, 노무현 대통령 추모객의 1/100만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했다. 또 얼마 전엔 용산참사 현장에 작은 도서관이 지어졌었는데 용역들이 와서 때려 부수고 경찰들은 지켜보고만 있었다. 폭력의 현장과 우리를 분리시키지 않고 순환시키면서 폭력을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진중권: "'과개발의 정치'와 '저개발의 정치'가 있다. 선진국의 경우 대개가 유희로서의 정치, 놀이로서의 정치인 '과개발의 정치'가 일어난다. 반면 제3세계 국가에서는 생존으로서의 정치, 투쟁으로서의 정치인 '저개발의 정치'가 일어난다. 우리 사회는 '과개발의 정치'와 '저개발의 정치' 사이에 어정쩡하게 얹혀있는 것 같다. 촛불집회의 경우 전형적으로 과개발의 정치였지만 용산사태의 경우 저개발의 정치였다. 폭력이 나오기 전에 해법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정부·정치·언론이 해줘야 한다. 용산문제도 얼마든지 해법이 존재했다. 왜 그 해법을 말하지 않느냐, 왜 그들을 몰아넣느냐. 이거야말로 제도적인 폭력이다. "

[빈곤] "개개인이 잘나서 부유해질 수 있다는 환상은 거짓"

홍기빈: "빈곤이 왜 발생하느냐에 대한 농경제 시대의 메커니즘과 산업경제에서의 메커니즘이 다르다. 자유주의가 만든 부와 자유가 개인의 속성이란 얘기는 거짓말이다. 농경제에서는 내가 열심히 노동 투입해서 많은 돈을 벌었다는 얘기가 타당성 있지만, 산업경제에서는 사회 전체가 다 같이 노력하지 않는다면 결코 풍족해지지 않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는 현대산업사회에서도 개개인이 자기가 잘나서 자기가 부유해질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산업경제에서는 개인의 부라는 게 먼저 있는 게 아니라 집단의 부가 먼저 있다. 산업경제에서 빈곤의 문제는 산업경제를 어떻게 조직하느냐, 발생한 부를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따라 발생하는 것으로서 빈곤의 직접적 원인은 사회에 있다. 신자유주의처럼 개개인의 경쟁력을 말하면 모두가 가난해진다."

김규항: "예수는 철저히 가난한 사람들의 편이었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내일 입고 먹을 것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고도 말했다. 여기에 굉장히 깊은 통찰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체제에서는 가난하다는 의식이 가난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실제로 빈곤하다고 할 수 없는, 조금 마음을 편하게 먹으면 훨씬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아직 모자라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 현실이, 그래도 우리 아이가'라며 안정에 대한 공포에 쫓기고 있는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바쁘다고 말하는데 사실 다 먹고 산다. 먹고 사는데 진짜 문제 있는 사람들은 먹고 사는 문제를 얘기할 틈도 없다.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내가 모자란다, 가난하다는 생각이 실제 가난을 만들어 내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 평생 동안 5년 후, 10년 후, 내 아이의 미래를 말하며 일만 하다 죽어나가는 거다. '아직은 가난하다, 아직은 모자란다'란 의식이 우리 삶을 조악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학교] "대학도 시장주의 원리에 포섭... 기업연수원화"

진중권: "대학이 다 망해가고 있다고 해야 할까. 기업들은 쓰레기를 갖다버리면 되지만 국가는 그걸 끌어안아야 한다. 기업들은 노동자들을 마구 해고할 수 있지만 국가는 그걸 끌어안아야 한다.  완전히 다른 시스템인데 신자유주의는 공적인 걸 사적 기업논리로 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대학도 시장주의 원리에 포섭되다보니 대학 고유 역할이 사라지고 기업연수원처럼 되어버렸다. 대학이라는 것은 국가와 시장이 잘못될 때는 경고시그널을 날려줘야 되는데 이게 안 된다.

시장은 근시안이다. 그러나 국가는 10년이고 100년이고를 봐야 한다. 임기와 상관없이 시스템을 만드는 문제이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내 100% 입학사정관제 발언 등 뭔가 보여주려는 조급함에 젖어 있다. 이런 근시안에 대학도 물들어가고 있다. 또한 미래는 상상력이 생산력이 되는 시대다. 이제 재화의 생산이라기보다 정보 자체가 생산의 대상이 되는 시대이다. 그런데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인문학·사회학을 홀대하며 상상력·창의력을 다 죽여 놓는다. 이게 과연 시장적 관점에서도 합리적인가? 아니다. 시대착오적이다."

[교회] "보수 개신교가 심어준 의식, 천박한 체제 유지하는데 큰 기여"

김민웅: "한국사회에서 교회라고 하는 건 단순히 종교적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것에서 굉장히 중요한, 뭔가를 거머쥐는 집단이라고까지 얘기할 수 있을 정도다. 현재 이명박 체제를 유지하는 힘 가운데서도 교회란 요소를 빼놓을 수 없다. "

김규항: "보수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악행을 한다는 걸 넘어서, 한국 보수 개신교가 심어주는 의식 자체가 지금 현재의 천박한 체제를 유지하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교회를 볼 때 그게 교회인지 아닌지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교회를 가장한 장사일 수 있다, 장사일 가능성이 오히려 높다. 지금 현재 한국사회에서 한국 사람들이 가진 가장 천박하고 저급하고 치졸한 의식들을 하나님 이름으로 말하고 있다. 어떤 부자도 겉으로 '돈이 최고야'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돈 벌면 하나님이 축복했다고 말한다. 이런 사고에 사로 잡혀 있는 게 한국 보수 교회이기에 그 해악은 이루 말할 수 없다. "

홍기빈: "한국 자본주의 정신적 기반과 한국 교회 정신적 기반 중에서 완벽하게 일치하는 게 있다.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 맨주먹으로, 무대뽀 헝그리 정신으로 물질적 풍요를 이루고야 만다는 정신이다. 박정희 이후의 자본주의 패러다임과 개신교가 갖는 부흥교회 패러다임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부분이다. 신자유주의가 일관되게 쏟아내고 있는 메시지는 호모이코노미쿠스이다. 즉, 경제인에 도움이 되지 않는 욕구·욕망·상상은 모조리 처박아 두라는 것인데, 이때 사회 전체적으로 균형을 잡아야하는 게 종교여야 한다. 이렇게 사회에 신자유주의의 가치가 팽배할 때 '영혼의 의미는 무엇일까'란 예수와 부처가 애초에 던졌던 질문에 천착하는, 종교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대통령 서거] "가운데 벽이 사라진 상황, 이제 진보-보수 격돌할 때"

우석훈: "김대중 대통령 서거 소식 들었을 때 눈물은 안 났는데 앞으로 한국이 어떻게 될까 생각할 때 진짜로 길이 안 보였다. 김대중만 한 사람이 한국에 또 나올까 생각하면 안 나올 거란 생각이 든다. 영웅의 시대가 끝난 것은 맞다. 하지만 안티히어로는 있을 것 같다. 이명박이 아닌 어떤 사람, 안티히어로에 의해서 우리가 다시 영웅을 만드는 시기를 살지 않을까 희망한다."

홍기빈: "내가 반대하는 정치인임에도 두 분 돌아가셨을 적에 죄송하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두 분은 개인적인 내심·신념이 어찌 됐든 중도였다. 이분들은 진보파도 아니고 보수파도 아니었다. 우리나라 보수파들이 진보와 싸우면서 형성된 게 아니라 김대중과 싸우며 형성됐다. 또한, 우리나라 진보파가 한나라당과 싸우며 형성된 게 아니고 김대중을 보수로 놓고 싸우면서 형성됐다. 희한한 일인데, 가운데에 커다란 벽이 있고 여기에 벽치기를 하면서 우리나라 보수와 진보가 생겨난 것이다.

실상을 보게 되면 두 분은 양쪽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으려고 면도날 위를 걸어가는 달팽이처럼 노력한 분이다. 아마 속들이 썩어 문드러졌을 것이다. 이제 중간에 있던 벽이 사라진 상황이기 때문에 진보와 보수가 서로 격돌할 때이다. 서로가 서로를 보며 형성해야 할 때이다. 이제 이걸 준비할 마음가짐과 준비가 우리에게 되어 있느냐, 큰 혼란이 올 것이다."

진중권: "두 인물을 잃었다는 상실감으로 다가오는 건 아닌 것 같고 두 분이 대표했던 가치들의 상실이기에 훨씬 더 우울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래서 두 분의 추모는 추모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뭘 해야 하나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보수주의 씽크탱크가 만들어낸 사회상이 얼마나 조악한가를 보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을 내놔야 한다. 진보진영 및 개혁진영에서 한국사회에 대한 미래상을 제시하는 것, 시대정신을 설정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 없이는 이합집산 해봤자 소용이 없다. 이것만 던지게 되면 모이게 된다."

김규항: "두 분이 교양 있지만 먹고 살 만한 사람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대통령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서민대중 입장에서는 나쁜 대통령이라 이야기할 수도 있었다. 마음이 안타까운 건 좌파들이 수긍할 만큼 대통령직을 잘 수행할 여건이 되었었느냐 생각하면, 상당히 안 좋았다는 점이다." 

김민웅: "내가 과연 대통령의 자리에 있었다면 그만한 고난을 이겨내고 희생하고 지켜내면서 어느 정도까지 밀고나갈 수 있었을까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고달픔을 이겨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 간단한 사항은 아니었겠구나란 생각이 든다. 간단하지 않은 사항을 어떻게 희망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가 남겨진 우리들의 과제일 것이다.


태그:#괴짜사회학, #진중권, #김규항, #우석훈, #홍기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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