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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읽기 - 글쓴이가 드리는 말
[우리 말에 마음쓰기] ['-의' 없애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적' 없애야 말 된다], 이 세 흐름에 따라서 쓰는 '우리 말 이야기'는,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있는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우리 생각을 열'고 '우리 마음을 쏟'아, 우리 삶과 생각과 말을 한 동아리로 가다듬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한자라서 나쁘다'거나 '영어는 몰아내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우리 삶과 생각과 말을 어지럽히는 수많은 걸림돌이나 가시울타리 가운데에는 '얄궂은 한자'와 '군더더기 영어'가 꽤나 넓게 차지하고 있습니다. 쓸 만한 말이라면 한자이든 영어이든 가릴 까닭이 없고, '우리 말'이란 토박이말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쓸 만한지 쓸 만하지 않은지를 생각하지 않으면서 한자와 영어를 아무렇게나 쓰고 있습니다. 제대로 우리 말마디에 마음을 쓰면서 우리 말과 생각과 삶을 가꾸지 않습니다. [우리 말에 마음쓰기]라는 꼭지이름처럼, 아무쪼록 '우리 말에 마음을 쓰면'서 우리 생각과 삶에 마음을 쓰는 이야기로 이 연재기사를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한 가지 종류의 일

 

.. 그는 어떤 한 가지 종류의 일을 하도록 허락을 받는다 ..  《존 버거,장 모르/김현우 옮김-제7의 인간》(눈빛,2004) 62쪽

 

 "허락(許諾)을 받는다"는 그대로 두어도 괜찮으나, "받아들여진다"나 "문이 열린다"로 손볼 수 있습니다.

 

 ┌ 종류(種類)

 │  (1) 사물의 부문을 나누는 갈래

 │   - 여러 종류의 책 / 종류가 같다 / 교과의 종류가 많아졌다

 │  (2) 갈래의 수를 세는 단위

 │   - 서너 종류 / 부드러운 흰색의 융과 면, 두 종류로 만들었다

 │

 ├ 어떤 한 가지 종류의 일을

 │→ 어떤 한 가지 일을

 │→ 어떤 일 하나만을

 └ …

 

 국어사전에서 '종류'를 찾아보면 '갈래'와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어사전에서 '종류' 같은 한자말을 찾아보는 분들이 이런 말씀씀이를 고이 헤아리면서 당신 말투를 가다듬는 일을 보기란 퍽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종류' 같은 한자말을 구태여 국어사전을 뒤적이면서 알아보지 않습니다. 이냥저냥 들어온 말이라 이냥저냥 쓰고, 둘레에서 흔히 쓰니 당신들 또한 흔히 씁니다.

 

 이러한 낱말이 얼마나 쓸 만한가 아닌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생각하지 못합니다. 이래저래 쓰이니 마땅히 '우리 말'이라고만 여길 뿐, '참다이 쓸 만한 우리 말'인지, '굳이 우리 말이라 해야 할 만인지 아닌지'를 가려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이 무엇인 줄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거든요. 가르치는 사람이 없기도 했으나, 가르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여도 우리 스스로 익히려 하지 않았거든요.

 

 마치, 우리 역사를 우리 스스로 살피지 않는 모습과 같다고 할까요. 머나먼 옛 역사부터, 바로 열 해나 스무 해쯤 앞선 때 역사까지 차근차근 헤아리지 않는 매무새처럼, 우리가 늘 쓰는 말을 '나는 말다운 말을 옳고 바르게 쓰는가?' 하고 끊임없이 되물으면서 추스르지 않습니다. 세상을 찬찬히 짚고 꿰고 들여다보고자 애쓰지 못하듯, 우리 말과 글을 찬찬히 짚고 꿰고 들여다보고자 애쓰지 못해요.

 

 ┌ 여러 종류의 책 → 여러 가지 책

 ├ 종류가 같다 → 갈래가 같다

 └ 교과의 종류가 많아졌다 → 교과가 많아졌다 / 가르칠(배울) 과목이 많아졌다

 

 남들이 쓴다고 나 또한 쓸 만한 말은 아닙니다. 세상에 두루 쓰인다고 나까지 두루 써야 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못 알아들을 토박이말을 국어사전에서 훑어내어 쓰자는 소리가 아닙니다. 우리들 누구나 가장 밑바닥에 깔고 있던 말과 글을 느끼자는 소리요, 우리한테 자유와 평화와 민주와 통일과 평등을 가장 잘 살리고 북돋울 말과 글이 무엇인가를 찾자는 소리입니다.

 

 배운 지식인만 쓰는 말인지를 살피고, 배운 티가 한껏 드러나는 말인지를 헤아리며, 배운 자랑을 해대는 말은 아닌가를 곱씹자는 소리입니다. 우리가 쓸 말은 '어릴 때부터 배운 말'임에는 틀림없지만, '배웠다고 그예 쓸 말'은 아니거든요. 어려서 도둑질을 배웠다고 늙어서까지 도둑질을 해도 되지 않고, 어려서 욕지꺼리를 배웠다고 언제까지나 욕지꺼리를 읊어도 되지 않습니다. 어려서 어른들한테 맞고 컸다고 자기가 큰 다음에는 자기 아이들을 주먹질로 키워도 되지 않습니다.

 

 말과 함께 삶을 보고, 삶과 함께 세상을 보며, 세상과 함께 사람을 보아야 합니다. 말에 담기는 사랑을 느끼고, 말에 싣는 믿음을 되돌아보며, 말로 무엇을 나눌 수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 서너 종류 → 서너 가지 / 서너 가지 / 서넛

 └ 두 종류로 → 두 가지로 / 둘로

 

 언제나 '천 냥 빚 갚을 만한 말'을 찾기란 어려울 수 있고, 꼭 천 냥 빚 갚을 만한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천 냥 빚을 지지 않을 말을 가만히 살피는 가운데, 나와 내 이웃 모두한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나한테 기쁨이 되고 이웃한테는 도움이 되는 말을 펼칠 수 있습니다. 내 넋과 얼을 보듬으며 이웃 넋과 얼을 아끼는 말을 풀어놓을 수 있습니다.

 

 ┌ 이주노동자는 어떤 한 가지 일만을 하도록 받아들여진다

 ├ 이주노동자한테는 어떤 한 가지 일에만 문이 열린다

 ├ 이주노동자는 어떤 한 가지 일만 할 수 있을 뿐이다

 └ …

 

 한 사람이 오롯이 서자면 한두 해라는 삶이 아니라,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 마흔 해, 때로는 쉰 해나 예순 해에 걸친 기나긴 삶을 들여야 합니다. 기나긴 삶을 들여도 오롯이 못 서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말은, 한 사람이 오롯이 서려는 길과 같고, 오롯이 서려고 애쓰는 몸짓과 같으며, 오롯이 서기까지 부대끼는 온갖 세상살이와 같습니다. 하루아침에 일으키거나 마무리짓는 말이 아니고, 한달음에 새로워지거나 거듭나는 말이 아닙니다. 뚜벅뚜벅 걸으면서 다리힘을 키우듯, 한 낱말 두 낱말 곱씹고 되씹으면서 말힘을 키웁니다. 하루이틀 삶을 다지면서 하나둘 말을 다지고, 오래오래 내 삶을 즐기듯 두고두고 내 말매무새를 즐기게 됩니다.

 

 옳게 펼치는 말도 버릇이고, 얄궂게 펼치는 말도 버릇입니다. 버릇이란, 기나긴 해에 걸쳐 몸에 익숙해진 모습, 곧 삶입니다. 옳은 삶에 옳은 말이고, 그릇된 삶에 그릇된 말이며, 착한 삶에 착한 삶인 가운데, 궂은 삶에 궂은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겹말#중복표현#우리말#한글#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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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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