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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에 누군가가 함께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용감해지는가? 혼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인데도 불구하고 친구가 곁에 있다면 우리는 그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고야 만다. 재미있게, 그리고 당당하게, 그리고 멋지게…….

 

이 책의 '절친' 크리스토퍼 호그우드 또한 저자 사이 몽고메리에게 있어서 그런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왜냐하면 호그우드를 통해 그녀는 마을 사람들 간의 인간관계를 더욱 원만하게 유지할 수 있었고,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어린 친구들과의 우정도 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를 처음 본 사람들에게 미친 사람처럼 비칠 수밖에 없는 그녀의 행동에 대해서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돼지와 놀았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동물을 주제로 한 책들을 접하다 보면 대부분의 책에서 인간과 동물의 교감을 그리고 있으며 이러한 교감을 통해 인간 속에 잠재되어 있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장면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 <돼지의 추억>도 마찬가지로 지은이 사이 몽고메리와 돼지 크리스토퍼 호그우드 간의 교감을 통한 그들의 우정이 그려지고 있다.

 

유대인 남자와의 사랑을 위해 부모와 의절을 하게 된 저자의 상황과 무녀리(가장 먼저 태어나는 돼지로 다른 돼지들에 비해서 몸집이 작고 약한 존재)로 태어나서 어쩔 수 없이 희생당해야만 하는 크리스의 상황이 동질감으로 우리들 앞에 등장한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분명히 있지만 저자와 크리스 모두가 부모와 사회적 인식의 벽에 부딪혀 시련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질감으로 맺어진 크리스토퍼는 그녀의 이야기에 딴죽을 걸지 않고 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다. 그리고 가만히 내버려뒀으면 이 세상에 없었을 그 작고 약해빠진 크리스토퍼가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면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건강하게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서 저자의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상처를 치유해나갈 수 있었다.

 

그뿐이랴. 돼지 크리스토퍼는 그녀가 살고 있는 이웃에게도 그녀와 같은 치유작용을 일으킨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딱 그 짝이다. 이 마을에서 크리스와 가까이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과거에 돼지에 관한 비밀이 하나씩 있었다. 어쩌면 그 때문에 크리스로 맺어지는 저자의 인간관계가 더욱 쉽게 이루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이웃들 각자의 돼지와의 추억. 그 끝은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녀의 이웃들은 오래 전에 돼지를 키우면서도 식용으로 넘겨야만 했었던 과거의 추억에 대한 죄책감을 크리스에게 정성으로 쏟아 부음으로 인해 용서를 빌었다고 후에 고백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크리스토퍼의 죽음을 함께 지켜보면서 돼지의 여생을 함께 추억할 수 있다는 기쁨에 과거의 상처를 어느 정도 덜어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작은 시골에서 벌어지는 전 이웃들의 돼지사랑은 정말 눈물나게 감동적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크리스를 알아보고 친구처럼 대하는 장면들을 볼 때마다 나는 얼마 전 일어났던 우리 동네의 한 비극적인 사건과 맞물려서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해졌다.

 

때는 바야흐로 초복이었다. 그날 오후 나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들었다. 이야기인즉슨 이웃집 개가 갑자기 행방불명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아무리 찾아도 안보인다고...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냐며 걱정하는 이웃집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볼품없게 생겨먹었고, 꼬리는 짤막하고, 짖는 소리가 영 마음에 안 들어서 '바보 개'라고 막 대했던 그 녀석이 그리워지는 동시에 갑자기 왠지 모를 허전함이 밀려들었다.

 

그 집에서는 개를 우리 집 강아지와는 달리 아무 데나 풀어놓고 키웠기 때문에 마을 온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던 개였다. 그랬던 그 녀석이 없어졌다니……. 우리 가족들은 그 녀석이 아마도 어떤 악질 괴한에게 잡혀서 복날의 희생양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다음 날 그 녀석을 시장바닥에서 보았다는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누군가가 데리고 갔다고 했다.

 

그날부터 그 바보 녀석의 높은 톤의 짖는 소리는 들을 수가 없었다. 돼지가 경찰관과 함께 거리를 노닐고, 또한 경찰관을 이리저리 끌면서 다니는 책 속의 그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리고 돼지가 떠돌고 있으면 마을사람이 합심해서 헛간으로 들여보내는 평화로운 그곳의 풍경을 상상하면서 갑자기 그 녀석 생각이 떠올랐다.

 

이 책은 돼지 '크리스토퍼 호그우드'의 추억 이외에도 사람에게 상처만 받고 자랐던 '보더 콜리' 종의 강아지 테스와의 추억도 그리고 있었다. 저자는 테스와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동물과 인간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어떤 사람들은 동물을 대체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심리학자들은 인간과 동물의 애정 관계를 좌절된 부모 역할의 대리만족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에 따르면 인간과 동물의 우정은 모두 뒤틀린 감정에서 나온 것이고, 아이에 대한 좌절된 갈망이 동물에 대한 애정으로 왜곡되어 표현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애완동물은 우리의 아기가 아니다. 하워드와 나는 크리스를 새끼돼지로 키웠을 뿐, 녀석을 인간의 아기로 착각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이 말을 곱씹어 본다면 테스가 온 집안을 어지럽혀 전 주인과의 관계에서 멀어졌던 이유가 설명된다. 그 이유는 그들이  '테스'를 양치기의 습성을 가지고 있는 '보더 콜리' 종의 개로 생각하지 않고 집안에 들여놓고 키워도 얌전하게 있어야 하는 아이로 생각했던 것이었다. 저자는 인간의 습성을 강요받게 되어 마음 속에 상처를 간직하고 있었고, 또한 그 때문에 육체적으로도 큰 수술을 받은 '테스'에게 그가 가진 습성의 상징물인 주특기 '공 잡기'로서 다가간다.

 

크리스와 테스 이 둘은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저자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저자가 글을 쓰기 위해서 다른 곳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이웃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한다. 그렇게 그들은 늙어가고 살찌고, 눈이 멀고, 병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쪽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생애. 그 작별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면서 세월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이며, 세월의 힘에 의해 약해져만 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슬픔이 묻어나왔다.

 

이 책에서는 크리스토퍼 호그우드라는 이름을 가진 돼지를 주제로 삼는 새로움의 접근이 있다. 하지만 이 책에는 테스라는 이름을 가진 개도 있고, 꽥꽥 소리를 내는 공주님들도 함께하고 있다. 이들은 인간의 대체물이 아닌 동물 그 자체였으며 이것을 인정하고 더불어 살고 있는 이 가족의 신선함은 다른 책들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매력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또한 그들과 끝까지 함께 하면서 겪게 되는 슬픈 운명에 관한 이야깃거리도 자못 진지하게 내 마음을 울렸다. 이 책은, 아니지 돼지 크리스토퍼는 이처럼 많은 삶의 교훈을 우리에게 전달하면서 그렇게 잠들었다. 하지만 내 가슴 속에는 그의 기억이 아직도 이렇게 남아 숨 쉬고 있다. 비록 실제로 만나보지는 못하겠지만, 마치 크리스가 바로 곁에 있는 것처럼 생생한 필력으로 우리에게 재미를 선사해준 저자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돼지의 추억

사이 몽고메리 지음, 이종인 옮김, 세종서적(2009)


태그:#돼지의 추억, #사이 몽고메리, #세종서적, #단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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