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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래발전연구원 주최로 25일 저녁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노무현 시민학교' 첫 강연자로 나선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민주개혁진영의 대타협과 시민주권운동의 과제'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주최로 25일 저녁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노무현 시민학교' 첫 강연자로 나선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민주개혁진영의 대타협과 시민주권운동의 과제'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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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두 정부에 걸쳐 요직에 중용됐다. 이 전 총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에는 교육부장관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는 21개월간 국무총리로 일했다. 이렇게 요직에 중용될 만큼 그의 능력을 인정받은 셈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전 총리를 중용했던 두 전직 대통령이 지난 5월과 8월 연달아 세상을 떴다. 그는 "고애자(孤哀子)가 되었다"는 말로 자신의 슬픔을 표현했다. 어버이를 모두 잃은 것 같은 슬픔을 느낀다는 것이다. 물론 "(두 분이) 우리 민족의 불멸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는 찬사도 잊지 않았다. 

"자기반성이 있어야 한다" 해서 기대했지만...

이해찬 전 총리가 20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사당앞에 차려진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공식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이해찬 전 총리가 20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사당앞에 차려진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공식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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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5일) 한국미래발전연구원(이사장 이재정)에서 이 전 총리를 '노무현 시민학교' 첫 강의자로 초청한 것은 절묘해 보인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가 최근 세상을 뜬 두 전직 대통령과 가까웠고, 그들에게 중용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가 두 분과 활동한 세월만 20년이 넘는다. 그러니 그들의 서거가 각별할 수밖에 없다.

이 전 총리는 1919년 고종 황제 서거, 1949년 김구 선생 서거,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그리고 2009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열거하면서 "30년 단위로 의미있는 곡절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의미심장한 말도 덧붙였다.

"2039년에 어느 분이 돌아가실지…. 그 사이에 큰 그릇이 나올 것이다."

이 전 총리는 실세총리 출신답게 참여정부의 3대 국정목표와 4대 국정원리를 하나하나 불러왔다. 그가 이렇게 참여정부의 국정목표와 원리를 다시 들춘 것은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이명박 정부를 설명할 말이 없다. DJ는 국민의 정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였는데 이명박 정부는 이름이 없다. 국정의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국정이 왔다 갔다 하고 앞뒤가 안 맞는다. 경중, 선후, 완급을 잘 가르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비판은 계속됐다. "이명박 정부가 북측 조문단을 골탕먹였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다 이 전 총리가 "이명박 정부를 비판만 하다가는 우리가 할 일을 못한다"고 말했다. 좌중에서 폭소가 터졌다. 잠시 그는 '진지모드'로 돌아갔다.

"앞으로 집권해서 (국정을) 이끌기 위해서는 자기반성이 있어야 한다. 무턱대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자기반성'은 거기서 멈추었다. 오히려 이 전 총리는 민주개혁진영에서 집권한 기간이 10년밖에 안 됐음을 매우 아쉬워했다. 그는 '개혁군주'로 불리는 정조대왕까지 불러들였다.

"개혁국왕 정조가 1800년에 돌아가셨다는 걸 생각하면 DJ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한 10년은 굉장히 작은 점이다. 민주개혁진영의 지도자가 정권을 잡은 것은 10년밖에 안 된다."

이명박 정부가 왜 등장했는지 성찰한 흔적 없어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주최로 25일 저녁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노무현 시민학교' 첫 번째 강연자로 나선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민주개혁진영의 대타협과 시민주권운동의 과제'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주최로 25일 저녁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노무현 시민학교' 첫 번째 강연자로 나선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민주개혁진영의 대타협과 시민주권운동의 과제'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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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총리는 한국사회 구조적 특수성의 하나로 사회양극화를 언급하면서 "지난 1년 사이 더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양극화를 보여주는 지표인 '소득5분위배율'과 '재산5분위배율'까지 동원해가며 '사회양극화 심화'를 지적했다. 이것이 이명박 정부를 겨냥하고 있음은 불문가지다. 

하지만 개혁적 정조(情調)를 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사회양극화가 심화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DJ가 IMF 구제금융 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신자유주의를 도입했고, 노무현 정부도 스스로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할 정도로 신자유주의 노선을 적극 수용했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은 더욱 늘어났고, 사회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두 전직 대통령에 우호적인 <한겨레>조차 서거정국에서 이런 평가를 내놓았을 정도다. 

"김대중 정부에서 보건·복지 분야의 많은 정책이 새롭게 시행됐지만 신자유주의 확산에 따른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도시 노동자 가구 상위 20%와 하위 20% 소득계층의 평균소득 차이를 나타내는 소득배율이 경제위기 이전인 97년 1분기 4.81에서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2년 1분기에는 5.4로 벌어졌다." (8월 23일)

"빈곤층이 늘고 양극화가 심화하는 흐름은 이어졌다. 제조업의 좋은 일자리는 계속 줄고, 서비스업의 저임금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가계 소득이 중위소득의 50%를 밑도는 계층의 비율을 뜻하는 상대적 빈곤율은 2003년 12.1%(비농가 2인 이상 가구)에서 2007년 13.4%로 올라갔다. 비정규직 보호법을 도입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고 차별을 고치려는 시도를 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5월 25일)

이런 평가를 의식했던 것일까? 이 전 총리도 "DJ와 노무현 정부 때는 왜 못했느냐?"라고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가 스스로 답변한 내용은 이렇다.

"5~10년 안에 고쳐졌으면 진작에 고쳐졌다."

이는 MB정부가 들어서는 바람에 사회양극화를 극복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민주개혁진영의 집권기간은 매우 짧았다"는 변명인 셈이다. 전형적인 자기책임 회피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 전 총리의 발언은 왜 MB정부가 등장했는지를 성찰하지 못한 결과다. 'MB정부의 등장은 민주파 정부의 10년을 유권자가 냉혹하게 평가한 결과'로 볼 수 있어야 '성찰'과 '대안'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10년의 민주파 정부를 "민주, 민생, 평화를 쌓아올린 10년"이라고 추켜세울 뿐이다.

이 전 총리가 자주 언급하는 민주주의의 진전, 한반도 평화정착 등의 업적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의 뜨거운 머리와 가슴에서는 민주파 정부들이 무엇에 실패했기에 MB정부가 등장했는지를 성찰한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고령화 때문에 2017년 이후 집권 못한다"도 검증 안 된 주장

끝으로 한 가지만 더 지적하고자 한다. 이 전 총리는 '저출산 고령화사회 분석'에 기반해 "2017년 이후 민주개혁진영의 집권은 어렵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 이유는 "20대가 확 줄어들고 노인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향후 10~15년이 우리 역사에서 귀중한 시간"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마치 일본형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기 전에 민주개혁진영이 집권하지 못한다면 일본처럼 '보수파 정권의 장기집권체제'로 갈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보다 훨씬 더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에서는 현재 54년 만에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자민당 장기집권을 상징하는 '일본의 (19)55년 체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진지한 성찰을 거치지 않으면 손쉽게 '두려움의 동원'에 의존하게 된다. 이 전 총리도 그런 경우다. 며칠 뒤 일본의 정권교체가 현실화될 때 이 전 총리가 어떤 평가를 내놓을지 궁금해진다.


태그:#이해찬, #민주파 정부 10년, #노무현 시민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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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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