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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다급한 요구를 알겠다. 하지만 신종플루 거점 병원 지정이 하나도 달갑지 않다. 신종플루 환자가 치료 받았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환자 끊기고, 현재 입원해 있는 환자도 다른 병원으로 옮기려 할 것이다. 제발 거점 병원 지정이 철회됐으면 좋겠다."

 

지방의 한 병원장은 익명을 전제로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했다. 그는 인터뷰 요청을 몇 번이나 거절한 뒤에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는 "의사의 윤리와 국민들의 다급한 심정은 이해하지만, 병원 실정도 이해해 달라, 자칫 잘못하면 병원이 문 닫게 생겼다"고 말했다.

 

신종플루에 대한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보건복지가족부와 질병관리본부는 25일 낮 12시 밀레니엄 서울 힐튼 호텔에서 신종플루 대비 병원계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신종플루 치료 거점병원으로 지정된 전국 병원 관계자 200여 명이 참석했다. 전체 신종플루 거점병원은 모두 455곳이다.

 

 

"신종플루 환자 다녀가면 다른 환자들 떠나... 제발 우리 병원 빼달라"

 

이날 간담회에서 전재희 복지부 장관은 "지금은 국가의 위기상황이다"며 "우리가 개개인의 의료기관이나 국가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전체적인 조화와 협력을 이루지 못해 더 큰 재난을 맞을 수 있다"고 전국 거점병원의 협력을 당부했다.

 

이어 전 장관은 "일선 지방자치단체와 보건소, 국공립·민간의료기관, 거점약국 등 모두 혼연일체가 돼 국민들이 안심하고 재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전 장관의 목소리와 태도에는 진정성이 담겨 있었다. 인사말을 한 뒤 자리를 뜨지 않고 오랫동안 현장 의료인들의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전국 거점병원장과 관계자들의 태도는 대체로 냉담했다.

 

특히 지방 병원 관계자들은 "거점 병원 지정을 철회해 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요청에 전국의 거점병원 관계자들은 큰 박수를 보내며 적극적인 호응과 지지를 나타냈다.

 

충남 서산 중앙병원의 관계자는 "정부의 거점 병원지정에 관한 공문을 받은 뒤 탁상행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정부 당국자는 직접 우리 병원에 와보라, 간호 인력이 부족해 병상이 비었어도 환자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간호 인력이 부족해 병실이 비어 있는데, 어떻게 신종플루 환자를 치료하느냐"며 "우리 병원은 전국 거점병원 지정에서 빼달라"고 요청했다. 이 관계자의 말이 끝나자 행사장에서는 큰 박수가 터졌다.

 

충남 서천의 서해병원 관계자 역시 "지난 1991년 콜레라 공포가 확산됐을 때 우리 병원은 130여 명의 환자를 성심껏 진료했지만 결과적으로 병원만 도산 위기에 빠졌었다"며 "당시 콜레라 치료를 한 뒤 6개월 동안 임신부가 단 1명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거점병원 지정에 불만을 나타냈다.

 

 

지방병원 "격리병동 비용과 인력이 부족해서..."

 

이어 이 관계자는 "우리 병원 역시 신종플루 환자가 발생하면 잘 치료한다는 각오는 갖고 있지만, 격리 병동을 운영할 수 있는 인력이 없다"며 "지역 보건소에서 1명이라도 간호 인력을 거점병원에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군부대가 밀집해 있는 경기도 연천군 보건의료원의 한 관계자는 "우리 의료원에서만 신종플루 확진 판정을 받은 군인이 10명이었고, 군부대 체험을 했던 어린이 두 명 역시 확진 판정을 받았다"며 "집단 생활을 하는 군부대 등에 먼저 타미플루를 공급해 달라"고 제안했다.

 

거점 병원 철회까지는 요구하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병원장도 있었다.

 

"컨테이너 병동이나 격리 병동을 운영하는 건 지방 병원에게는 너무 부담되는 일이다. 환자들도 불안해서 병원을 떠나려 할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차라리 거점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지 말자. 대신 의사를 보건소에 파견해 줄테니 보건소에서 모두 환자를 치료하면 어떤가. 그게 서로 좋지 않나."

 

이처럼 지방 병원들이 신종플루 치료 거점병원 지정을 달가워하지 않는 이유는 비용문제 때문이다. 입원 치료가 필요한 고위험군의 신종플루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서는 격리병동과 이를 운영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거점 병원 관계자들은 자칫 자신들의 병원이 '혐오시설'이 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경기도의 한 병원 관계자는 "정부가 거점병원을 맡아달라고 하니 맡긴 하겠지만, 우리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환자들과 지역 주민들은 당연히 싫어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서울 대형병원 "사스 때 의사들 많이 죽어, 보상 대책 마련을..."

 

이런 사정에 대해 전재희 장관은 "진료실을 설치하는 비용과 추가인력을 국가가 실비보상을 할 수 있도록 사후정산체제를 생각하고 있다"며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해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거점 병원 지정에 불만을 표시하는 건 지방 병원만이 아니다. 강남 세브란스 병원의 관계자는 "사스 대유행 시기 때 전세계에서 많은 의사와 간호사가 죽었다"며 "의료진 보호와 (신종플루에 감염됐을 때) 보상 대책을 정부 정책으로 수립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어쨌든 비상 상황을 맞아 전국 거점 병원의 '협조'를 얻어야 하는 정부는 "최대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전재희 장관은 "의료진들이 건강해야 진료할 수 있도록 의사와 간호사 등 해당 보건인력에 신종플루 증상이 나타나면 자가처방을 해서 타미플루를 복용할수 있도록 소요량을 파악해서 조치하겠다"며 "정부에서 지정한 455개 거점치료병원이 필요한 치료약, 보호구 등 장비를 관할보건소와 복지부에 요청하면 비치돼 있는 물품을 퀵서비스로 보내주겠다"고 밝혔다.


태그:#신종플루, #거점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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