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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루스와 호렘헤브
 호루스와 호렘헤브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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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악박물관의 <이집트문명 파라오와 미라> 전에 다녀왔다.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기행(이용재)>을 읽으며 건축가 박승홍이 설계한 국립중앙박물관을 다시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었고, <앙코르와트 월남가다(김용옥)>을 읽고는 서울역사박물관에 왔던 <앙코르와트 유물전>에 가보지 못한 것을 스스로 자책한 바도 있기 때문이었다.

가기 전에는 며칠 동안 틈틈이 책 한권을 읽었다. 이집트 유적발굴의 권위자 '요시무라 사쿠지'가 쓴 <고고학자와 함께하는 이집트 역사기행>. 문장도 담백하고 내용도 충실했다.

책을 읽는 중에 존경하는 분의 부고를 접했다. 입원하시기 직전까지 깊은 통찰에서 우러나오는 선명한 발언을 쏟아내고 계셨으므로 돌아가실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특별한 유언도 없이, 죽는 날까지 '행동하는 양심'을 외치다 돌아가신 분의 죽음 앞에서, 거대한 무덤인 피라미드도 무색하게 느껴졌다.

나들이를 가기 위해서는 조문을 다녀와야 했다. 조문도 하지 않고 4000년 전 북아프리카 국왕들의 유물을 보러갈 수는 없었다. 순서가 뒤바뀐다면 목에 가시를 걸고 다니는 기분일게 뻔했다. 순서를 지켜서 갔음에도 어수선한 심경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호루스와 호렘헤브

전시회도, 학생들의 방학도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으므로 서둘러 집을 나섰다. 조금이라도 덜 붐빌 때 보기위해서 박물관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이집트 문명전>으로 향했다. 어두컴컴한 전시장에서 조각상 하나가 여행기중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제목은 <호루스와 호렘헤브>. 매의 머리를 가진 현세의 왕 '호루스'(저승의 왕은 '오시리스')와 이집트의 파라오 '호렘헤브'가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이다. 정치적인 배경 이야기를 떠나 신과 인간이 너무나 다정하게 표현되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인간의 대표자 호렘헤브는 당당한 포즈로 앉아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다. 한손을 들어 백성을 가르치려고 하거나, 두 눈을 부릅뜨고 준엄한 심판을 내리려하는 모습이 아니다. 신의 대표자 호루스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얼굴은 너무나 온순하여 권위라고는 찾아 볼 수 없고, 단순화 된 그의 얼굴은 오히려 귀여운 캐릭터 인형에 가까운 모습이다. 호렘헤브도, 호루스도 보는 사람을 살짝 미소 짓게 만든다.

대칭적인 구조와 부드러운 선이 강조된 이 조각상에서 호렘헤브와 호루스를 연결시켜 주는 것은 호렘헤브의 등 뒤로 뻗은 호루스의 팔이다. 살며시 들어 올린 호루스의 팔이 양편의 수직구조를 조용히 깨뜨린다. 세부묘사 없이 무심하게 표현된 그의 팔은 두 존재를 잇는 교감의 통로가 되어주고 있다. 호루스는 "말하지 않아도 네 맘 다 알아. 잘 하고 있으니 걱정 마" 라고 말하는 것 같고, 호렘헤브는 "다 네 덕분이지 뭐. 앞으로도 잘 도와줘야 돼." 라고 말하며 쑥스럽게 웃는 것 같다. 그들은 그렇게 4000년 동안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조각상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새로운 생각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조각상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얘기냐 하면, 무신론자인 여행기중독자는 <호루스와 호렘헤브>를 보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신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인간과 친밀할 수 있음을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돌아가신 그 분이 떠올랐다.

신을 믿는 한 인간에게 신과의 소통과 인간과의 소통이 별개 일 수는 없을 터, 신과 수직적으로 만나는 사람은 타인들을 수직적으로 대할 것이고, 신과 수평적으로 만나는 사람은 타인을 수평적으로 대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 앞에서 축복과 면죄를 바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신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고난 앞에서 성역으로 도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신의 뜻에 따르기 위해 고난 속으로 몸을 던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이제서야 왜 그 분이 평생 평화와 사랑과 정의를 위해 고난의 길을 살아 가셨는지 종교적인 관점에서 조금 더 깊이 알게 된 것 같았다. 지금쯤 그 분은 틀림없이 하느님과 다정하게 앉아서 우리의 미래를 상의하고 계실 것이다. 호루스와 호렘헤브처럼. 찜찜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소중한 교훈

만일 여행기(엄밀하게 이 책은 역사기행이긴 하지만)가 아니었다면 감상은 이쯤에서 멈추었을 것이다. 하지만 책에서 읽은 내용을 상기해 보면 감상이 조금 길어진다. 상징과 역사의 세계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조각상을 보는 내내 호렘헤브가 누군지 가물가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집트 고대문명의 역사에는, 기원전 3000년의 고왕조를 시작으로 기원전 300년경까지 30왕조에 걸쳐 수많은 왕들이 있고, 그 뒤로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로마의 지배받던 시기의 클레오파트라, 그리고 테오도시우스 왕조에 이르기까지, 이름도 생경한 엄청난 수의 왕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천재가 아닌 이상 기억하기 어렵다. 집으로 돌아와 책을 펴서 호렘헤브를 찾았다. 과연 그는 조각상에서 풍기는 인상대로 온화한 군주였을까? 

그는 신왕국 시대라 불리는 18왕조(BC 1565-1070)의 마지막 왕이었다. 호렘헤브(BC 1319~1292 재위)가 왕위에 오를 무렵 18왕조는 거의 붕괴상태였다. 유일신 '아멘 라 신'('숨어있는 신'이라는 '아멘 신'과 '태양신'인 '라 신'의 합체)을 신봉하던 18왕조에서는 '신관단'의 권력이 막강했고, 왕권이 약해지자 균형은 무너졌다. 이를 견제하기위해 '아케나탄'과 '아아'라는 왕은 또 다른 태양신인 '아텐신'을 내세우며 신권 세력과 치열한 권력다툼을 벌이는데, 결과적으로 이로 인해 왕권은 붕괴직전으로 치달았다.

위기의 상황에서 정국을 수습하기 위해 왕족이 아닌, 장군이었던 호렘헤브가 왕으로 추대된다. 그는 선대왕의 왕비와 결혼하는 한편, 다시 '아멘 라 신'을 국교로 받아들임으로써 정국을 수습한다. 그래서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19왕조는 람세스 1세가 아닌 호렘헤브왕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수많은 왕조와 왕의 이름들도 난해하지만, 고대 이집트 신들의 계보까지 겹치니 설상가상으로 복잡하다. 다만 호렘헤브가 왕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혼란기를 수습하기 위해 투입된 정치인이라는 사실에서, 그가 온건하면서도 현명한 인물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그렇다면 그는 인격과 능력을 갖춘 인물이되, 출신으로 보면 굴러들어온 돌이다. 그래서 그의 조각상에는 다른 상징이나 다른 신들이 들어올 자리가 없었던 것 같다. 결국 오직 왕의 권능을 상징하는 신 '호루스'만이 그의 옆자리에 심플하게 자리하게 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어쩐지 홀로 않아있는 호렘헤브의 모습이 조금 외로워 보이기도 한다.

호렘헤브 다음으로 풀어야 할 의문은 '호루스'이다. 호루스는 매의 형상을 하고 있는 신이다. 신화에 의하면 호루스는 제법 복잡한 사정을 거쳐 '현세의 왕'('저승의 왕'은 그의 아버지인 '오시리스')이 되었는데, 여기서 현세의 왕이란 신화 속에서의 지위이지 현실 세계에서는 구체적인 권능이 없는 신이다. 예를들어 풍요의 신(하토르 여신), 나일강의 신(하피) 등등과 같이 실질적인 현상을 지배하는 신과는 성격이 다르다. 

얘기 나온 김에 호루스에 대해 조금만 더 알아보자면, 상형문자에서 호루스는 매의 형상을 하고 있다. 매의 옆모습을 그린 호루스 상형문자는 왕을 의미한다. 그래서 상형문자를 해독할 때 호루스 문자 옆에 있는 문자를 왕의 이름으로 해석한다. 이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호루스는 상징적인 의미의 신이다. 호루스는 황제의 상징이 되고, 황제는 호루스의 화신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호루스와 왕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그들은 하나이다. 사람에게 귀신이 붙어있듯 호루스가 왕의 등 뒤에 붙어있는 있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호렘헤브 혼자 있는 것이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호루스의 팔뚝에서 느낀 따스한 교감은 나만의 착각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루스를 인격화한 이 조각에서 여행기중독자가 느낀 '신과 인간의 친밀함'에 대한 인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그것이 아무리 오해에서 비롯된 억측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여행길에 비유하자면 이건 잘못 들어선 길에서 최고의 장소를 만나게 된 격이니, 나는 이 억측조차도 기억하기로 하였다. 신과 인간은 가르침과 정신의 장에서 치열하고도 친밀하게 만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고 김대중 대통령이 일생을 통해 몸소 보여주었다는 교훈을 기억하기로 하였다.

파라오의 저주

이집트 여행은 오늘 같은 날 할 만한 짓이 아닌 듯하니, 책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이쯤에서 글을 마무리하려한다.

"왕의 영원한 안식을 방해하는 자에게 벌이 내릴 것이다."

'투탕카멘'의 관에 새겨져 있다는 문구이다. 뒤늦게 발견된 그의 무덤과 유물은 20세기 최고의 고고학적 발견으로 평가된다. 투탕카멘은 18왕조 종교개혁의 선봉에 섰던 아케나탄 왕의 사위 자격으로 파라오가 된 인물이다(다시 말해 호렘헤브의 선선대 왕이다). 그의 행적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없음에도 투탕카멘이 가장 유명한 파라오가 된 이유는 무덤에서 발견된 '황금마스크'와 '파라오의 저주' 때문이다.

'파라오의 저주'란, 투탕카멘의 관에 새겨진 위 문구를 무시하고 투탕카멘의 유물을 발굴하거나 옮긴 사람들이 차례로 죽음을 맞은 사건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실제로 투탕카멘의 묘를 발굴하는데 재정을 지원했던 '카나본'이라는 영국귀족은 발굴 6개월 후에 죽었으며, 그의 후손과 친척들, 심지어 기르던 개까지도 이유 없이 급사하였다고 한다. 또 1972년에 투탕카멘 유물의 영국 전시회에서 운반을 담당했던 관계자들 6명 모두는 5년 사이에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파라오의 저주로 죽은 사람은 300명에 이른다고.

파라오의 저주에 관한 진위야 어찌되었든 간에, 한 인간의 죽음 앞에 오늘도 망언을 일삼는 자들에게 이 말을 전하는 바다. 본인들을 위해서라도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방해하지 말길 바란다.


고고학자와 함께하는 이집트 역사기행 - 서해컬처북스 4

요시무라 사쿠지 지음, 김이경 옮김, 서해문집(2002)


태그:#이집트역사기행, #서해문집, #요시무라 사쿠지, #이집트문명전,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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