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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아무개(38)씨는 지난해 8월 15일 밤 9시 30분께 종로2가 버스중앙차로 정류장에서 경찰에 연행됐다. 일반교통방해 및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때문이었다. 당시 종로에서는 '100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이명박은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경찰 조사를 마친 권씨는 이틀 뒤인 17일 오후에 유치장에서 나왔지만,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12월 1일, 권씨는 검찰이 자신을 벌금 150만원으로 약식기소했다는 법원 통보를 받았다. 많은 고민 끝에 그는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그리고 지난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이광우 판사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았다.

 

도대체 지난해 8월 15일 집회 현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 14일, <오마이뉴스> 기자는 사건 현장에서 직접 권씨를 만났다.

 

장동건 사진 보다가 색소 물대포 맞았는데...

 

"멍하니 장동건 사진을 보고 있는데 물대포가 우리 쪽으로 방향을 돌리더라구요. 그걸 맞고 의경들이 절 둘러싸는 데 한 30초도 안 걸린 것 같았어요. 왜 왔는지도 모르고 유치장에 있는데 정말 무섭고 수치스럽고…. 내가 너무 무기력하게 느껴졌어요."

 

지난해 8월 15일 저녁 경찰에 연행되기 직전, 그는 종로2가 네거리의 버스정류장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는 그날 오후 아는 동생과 영화를 보고 술도 한잔 한 뒤 친구가 일하는 인근 카페에 들렀다. 이들이 카페에 들어갈 때만 해도 거리는 조용했다. 권씨는 그날 집회가 있는 것도 몰랐다고 한다.

 

잠시 카페에서 잠들었다가 깨서 배가 고파진 그는 길 건너 노점에서 다코야키를 사먹었다. 금방 돌아올 생각이었기 때문에 가방도 놓고 나갔다. 그런데 그 사이 도로에는 경찰 살수차가 등장해 횡단보도를 향해 색소가 섞인 물대포를 쏘아댔다.

 

카페로 돌아오던 권씨는 길을 건너려다가 물대포를 맞을까봐 버스정류장이 있는 중앙차선 인도에 멈췄다. 의류매장이 있는 건너편 건물의 장동건 대형사진을 바라보고 있는데, 물대포가 방향을 바꿨다. 마침 흰 남방을 입고 있었던 권씨가 파란색 색소가 든 물대포를 맞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곧 의경 10여명이 얼떨떨한 상태의 권씨를 둘러쌌다. "물대포를 맞았으니 시위에 참가한 게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권씨는 물론이고, 카페 유리창으로 상황을 지켜본 동생과 친구가 뛰쳐나와서 항의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다. 권씨는 발버둥을 치다가 경찰서로 끌려갔다.

 

 
 

권씨에 따르면, 당시 경찰들도 그를 왜 연행했는지 알지 못했다고 한다. 자기들끼리 "저 아가씨는 왜 끌고 왔냐"고 이야기했고, 권씨를 조사하면서 "우리도 집에 못 가고 미치겠다, 밥줄 때문에 이러니까 이해해달라"고 하소연까지 했다는 것.

 

이 사건을 담당한 송영섭 변호사는 "수사기관들이 '일단 잡아들이자'는 식으로 연행하다 보니까 인권 문제는 신경을 안 쓴다"면서 "법적으로 구제받지 못한 시민들도 많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변과 국가인권위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촛불집회와 관련해 약식기소된 1036명 중에서 813명이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송 변호사는 "숨을 헐떡거렸다는 것도 연행의 근거가 된다"고 전했다. 길을 가던 시민이 경찰 진압에 겁먹고 도망친 뒤 앉아서 숨을 고르다가 잡혀간다는 것이다. "불법집회에 참가하지 않았는데 왜 달아났냐"는 것이 경찰 측 논리다.

 

숨 헐떡거린 것도 집회 참석의 증거?

 

경찰서에서 권씨가 느낀 감정은 공포심와 수치심·분노였다. 텅 빈 유치장에 혼자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것이 너무 창피해서 동생이 면회 오는 것도 말렸다. 집에 돌아와서도 갇혀 있는 듯한 마음에 창문을 다 열어놓고 지냈다. 경찰들만 보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감정을 더 표출하는 쪽으로 성격도 바뀌었다고 한다.

 

권씨는 되도록 빨리 이같은 기억을 잊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약식 기소되면서 사건은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권씨는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마음 먹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을 찾아갔다. 벌금 150만원의 문제는 아니었다.

 

"한 일주일 정말 고민했어요. 그냥 벌금 내고 말아? 그런데 내가 아무 잘못도 없는데 왜 피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억울한 혐의를 벗고 싶었어요."

 

그 뒤 권씨는 송 변호사를 만나고 증인들을 모으고 여섯 차례 법원에 나갔다. 다행히 권씨는 직장에 다니지 않아 소송 준비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당시 현장에 있던 동생과 친구도 흔쾌히 증인으로 나서주었다. 그는 "상황이 더 어려운 사람이었다면 십중팔구 중도에 포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권씨는 국가를 상대로 한 싸움에서 무죄 판결까지 기대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 11일 이광우 판사는 "권씨의 범죄사실에 대한 증명이 없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이긴 사람은 그뿐이 아니다. '촛불집회'와 관련돼 기소된 다른 피고인들도 최근 잇달아 무죄판결을 받았다. 경찰과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무죄판결이 나온 뒤 권씨는 친구들과 축하하는 자리를 열었다. 그러나 판결 소식을 접한 그의 감정은 복잡하다. 왜 이런 싸움을 해야 했나 슬프기도 했고, 증인이 있어서 다행이다 싶기도 했고, 다 끝났다 싶어서 홀가분하다가도 시원섭섭하기도 했다.

 

아직도 또렷한 유치장의 기억... '참여 시민'은 이렇게 탄생한다

 

권씨는 사건을 여기서 끝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는 "죄없는 사람을 연행하고 몇 달 동안 괴롭힌 정부가 사과 한 마디 없다는 것이 너무 화난다"고 말했다. 그래서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고민 중이다.

 

이에 대해 송영섭 변호사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패소할 경우 경찰의 무리한 연행에 힘을 실어주는 판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불법체포에 따른 국가 위자료를 받으려면 수사기관의 고의과실을 입증해야 한다.

 

권씨는 "좀 더 상황을 알아보겠다"면서 "어떻게든 이런 문제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유치장에 무기력하게 앉아 있던 자신의 모습이 너무 바보 같아서, 더 이상 움츠러들거나 도망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권씨는 사회와 정치에 관심이 많아졌다. 집회에도 진짜로 나가기 시작했다. 연행의 공포 때문에 무서웠지만,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집회뿐만 아니라 미디어악법 반대집회에도 참석했다. 그의 관심사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었다. 권씨는 "경찰과 검찰이 나를 '참여하는 시민'으로 만들고 있다"면서 밝게 웃었다.


태그:#촛불 무죄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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