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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 그리고 다르마와 카르마

힌두교의 대표신 중 하나인 비슈누를 모시는 사원
▲ 트리밴드럼의 상징 스리 빠드마나바스와미 사원 힌두교의 대표신 중 하나인 비슈누를 모시는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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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힌두교를 이끄는 종파 중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종파가 비슈누 종파이다. 특히 남인도의 대다수 사람들은 우주의 수호자이자 유지자인 비슈누 신을 숭배한다. 비슈누 신은 수백만 신도들에 의해 인격화된 최고의 신이다. 남인도의 고도 트리밴드럼에는 비슈누 신을 모시는 스리 빠드마나바스와미 라는 힌두 사원이 있다.

사원의 동쪽에 위치한 고푸람으로 외벽의 조각이 특히 예술적이다
▲ 스리 빠드마나바스와미 사원의 흰색 고푸람 사원의 동쪽에 위치한 고푸람으로 외벽의 조각이 특히 예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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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원은 웅장한 높이로 위압감을 주는 흰색 고푸람이 유명하다. 가까이 가 보면 세월의 흔적으로 빛이 바래긴 했지만 찬란하고 화려했던 힌두문화를 자세히 볼 수 있다.

카주라호의 힌두사원을 연상시키는 고푸람 외벽의 야한 조각상
 카주라호의 힌두사원을 연상시키는 고푸람 외벽의 야한 조각상
ⓒ 김철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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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는 '인도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인도 사람들과 이방인에 대한 구분으로 인도 사람들은 자기들을 힌두라고 불렀다. 힌두교에 수 많은 신들이 존재하는 것도 이에 기인한다. 인도는 2천 개가 넘는 방언과 각기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각 지방 고유의 독특한 신념체계(신으로 표현할 수 있다)를 가진 인도. 그것을 아우르고 통합해 부른 말이 바로 '힌두'인 것이다. 그래서 이방인은 절대 힌두교도가 될 수 없다. 오직 인도사람으로 태어나야 힌두교도가 될 수 있다.

사원에 들어가는 힌두 신자들은 인도의 전통복장을 착용해야만 한다
▲ 힌두사원의 출입구 사원에 들어가는 힌두 신자들은 인도의 전통복장을 착용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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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법전으로 성문화 된 종교가 아닌 수 많은 신념체계의 집합 힌두교. 그래서 다신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쉽게 볼 수 있지만, 실제로 힌두교도들은 자기가 모시는 신만을 숭배한다. 그래서 힌두교의 신 또는 신념체계는 신도의 수 만큼 많을 수 있다.

이마의 선명한 표식이 사제의 카스트를 설명한다
▲ 신자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브라만 사제 이마의 선명한 표식이 사제의 카스트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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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신과 신자들의 매개역할을 하는 브라만을 중심으로 힌두사회의 질서를 유지한다. 브라만은 힌두 사회의 사제 계급을 총칭하는 말이다. 이들은 사원에서 행해지는 각종 힌두 의식을 집도하고 공동체를 이끈다. 오늘날 브라만의 대부분은 사회 각 분야에서 인도를 위한 직업에 널리 퍼져 있지만 원래는 사제 계급이었다. 인도 사람들은 이들 브라만에게 충성을 바치고 브라만을 위하여 자기 계급에 맞는 봉사를 한다. 오천 년 힌두 사회는 그렇게 영속되었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책을 읽는 여인과 셀프 카메라로 이리저리 장난을 치는 소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 사원의 입장 시간을 기다리는 힌두 교인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책을 읽는 여인과 셀프 카메라로 이리저리 장난을 치는 소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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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 또는 힌두의식의 주된 목적은 가족의 평화와 안녕이다. 인도 사람들은 가정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인도 사람들은 신에게 무엇인가 갈구하거나 맹세를 할 때면 항상 신전을 찾는다.

우측에 비슈누 신에게 바칠 정성스런 선물이 보인다. 힌두 신자들은 자신들의 삶은 자신들이 기부하는 선물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다.
▲ 사원의 출입 순서를 기다리는 힌두교인 가족 우측에 비슈누 신에게 바칠 정성스런 선물이 보인다. 힌두 신자들은 자신들의 삶은 자신들이 기부하는 선물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다.
ⓒ 김철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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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면 그들은 신에게 바칠 성물을 정성껏 준비하곤 한다.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들이 준비한 음식을 신이 먹는다고 생각하는 인도 사람들은 주로 곡식이나 과일, 그리고 달콤한 설탕 등을 신에게 바친다.

비슈누 교리의 가장 큰 특징이 남편과 아내의 사랑, 신과 신도의 사랑과 같은 사랑이다. 비슈누는 지상에 나타날 때마다 매번 그의 아내 락슈미와 동행한다.
▲ 부인의 얼굴에 붙은 티끌을 떼어 주는 자상한 남편 비슈누 교리의 가장 큰 특징이 남편과 아내의 사랑, 신과 신도의 사랑과 같은 사랑이다. 비슈누는 지상에 나타날 때마다 매번 그의 아내 락슈미와 동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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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는 집단으로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 다른 종교와 달리 힌두교에는 설교도 없다. 오직 신과의 눈맞춤 '다르샨'이 있을뿐이다. 신자들은 '내가 신을 보고, 신이 나를 보는' 다르샨을 경험하기 위해 신을 찾는다. 다르샨을 경험한 이들은 영적 믿음을 얻어 집으로 돌아간다.

사원 앞에서 방송 녹화를 하는 트리밴드럼의 지역방송 직원들
 사원 앞에서 방송 녹화를 하는 트리밴드럼의 지역방송 직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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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를 지배하는 주요한 논제는 '다르마'와 '카르마'다. 다르마는 일종의 '의무'를 말하는 것이며, '카르마'는 '업', 즉 '행위'를 일컫는 것이다. 즉 현생의 카스트(계급)는 전생의 카르마에 의하여 결정되며, 인간은 내세의 행복을 위해 현생의 의무인 다르마를 성실히 수행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장사꾼은 최고의 장사꾼으로, 운전사는 최고의 운전사로, 방송인은 최고의 방송인으로 말이다. 한마디로 전 국민의 프로페셔널화를 요구하는 것이 힌두교의 다르마다.

진지한 표정으로 사원을 설명하는 리포터. 저 멀리 선글라스를 쓴 멋쟁이 릭샤왈라가 이 광경을 지켜본다.
 진지한 표정으로 사원을 설명하는 리포터. 저 멀리 선글라스를 쓴 멋쟁이 릭샤왈라가 이 광경을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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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람들은 인도인들이 숙명론적인 '업' 즉 '카르마'를 팔자로 받아들여 도무지 인생의 변화를 도모하지 않는다고 말을 하는데, 이것은 '다르마'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말이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장비로 최선을 다하는 인도의 방송인들. 힌두교인들은 자기가 요청받은 것이 무엇이든간에 주어진 카스트나 직업 안에서 그것을 성실히 수행함으로 양심적인 힌두교도로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 촬영에 열심인 방송국 직원들 상대적으로 열악한 장비로 최선을 다하는 인도의 방송인들. 힌두교인들은 자기가 요청받은 것이 무엇이든간에 주어진 카스트나 직업 안에서 그것을 성실히 수행함으로 양심적인 힌두교도로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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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사람들도 세상 그 어느 곳에 사는 사람들 못지 않게 자기 인생에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자기가 모시는 신에게 정성을 다 하는 것이고 신이 자기에게 내린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만일 장사의 신을 모시는 인도인은 최고의 이윤을 남기기 위해 그 어떤 일도 서슴지 않을 것이며, 도둑의 신을 모시는 도둑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고의 도둑이 되는 것이 자기의 다르마를 다 하는 것이다. 그 도둑은 당연히 죄책감을 가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힌두, 이슬람과의 숙명적 동거

트리밴드럼에 위치한 분홍색의 예쁜 이슬람 사원
 트리밴드럼에 위치한 분홍색의 예쁜 이슬람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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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전체 인구의 약 13%를 차지하고 있는 이슬람. 결국 이민족의 침입으로 북부에는 인도 최대의 이슬람 왕조인 무굴제국이 탄생하게 된다. 이후 이슬람은 힌두교와 많은 갈등을 주고 받으며 인도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게 된다.

핸드폰 게임에 열중한 소녀가 엄마의 거친 손놀림에 신경질을 부리고 있다. 소녀는 머리단장보다 핸드폰 게임이 더 재미있나 보다.
▲ 사원에 들어가기 전 머리를 단장하는 모녀 핸드폰 게임에 열중한 소녀가 엄마의 거친 손놀림에 신경질을 부리고 있다. 소녀는 머리단장보다 핸드폰 게임이 더 재미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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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밴드럼에도 힌두 사원에서 멀지않은 곳에 분홍빛의 아름다운 이슬람 사원이 있다. 1947년 인도의 독립과 함께 인도에서 분리되는 북부의 이슬람 국가 파키스탄과 달리 남인도의 이슬람 문화는 북부만큼 딱딱하고 원리주의적이지 않다.

언니는 손톱을 색연필로 빨갛게 색칠했다. 처음엔 봉숭아 물을 들인 줄 알았다.
▲ 사원 앞에서 장난치는 자매 언니는 손톱을 색연필로 빨갛게 색칠했다. 처음엔 봉숭아 물을 들인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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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인도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방어기제의 하나일 수 있지만, 그 사람들은 다른 힌두교도들과 곧잘 어울리며 잘 살아간다. 또한 힌두 사회에서 자기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생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 공동체 한 가운데 위치한 이슬람 사원은 마을 사람들의 집회 장소이며, 예배 장소이고, 어린이들의 놀이터다.

사원 앞에서 기도 준비를 하는 이슬람 신자
 사원 앞에서 기도 준비를 하는 이슬람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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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도에 자연스럽게 정착한 이슬람에 대하여는 많은 의견이 분분 하지만 그 중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유일신을 중심으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고 외치는 이교의 교리에 낮은 카스트나 그보다도 못한 계급집단에 소속된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사원을 청소하는 이슬람 신자
 사원을 청소하는 이슬람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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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의 업에 의하여 이생이 결정되는 윤회의 사슬 속에서, 제대로 된 직업을 선택할 수 없는 낮은 카스트 주민들과 그마저도 낄 수 없는 불가촉천민들. 그들에게 "신 앞의 평등"이라는 짧은 문장은 고단한 이생의 업을 소멸시키고, 그들의 상처받은 영원을 구원하는 한 줄기 빛이었다. 그들은 주저없이 알라를 선택했다.

성원의 출입구를 지키는 이슬람 신자
 성원의 출입구를 지키는 이슬람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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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독립 이후 최근까지도 브라만을 정점으로 구성된 불평등한 카스트 제도에 반하여 불가촉천민들이 집단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하거나, 불교도로 개종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났다.

실제로 트리밴드럼이 속한 케랄라주에서 한 지역에서 불가촉천민들은 목에 방울을 달고 다녀야 하기도 했다. 브라만들은 방울소리가 들리면 집으로 숨거나 눈을 가리곤 했다. 천민들은 오염의 원천이고 부정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페즈(이슬람 모자)를 쓰고, 염소 세 마리를 모는 소년의 모습에서 이 곳이 이슬람 마을임을 쉽게 알 수 있다.
▲ 이슬람 마을을 걸어가는 소년 페즈(이슬람 모자)를 쓰고, 염소 세 마리를 모는 소년의 모습에서 이 곳이 이슬람 마을임을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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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는 카스트제도. 확실한 신분의 선을 그음으로 기득권인 브라만 지배의 정당성을 합리화 시킬 수는 있었지만, 그로 인해 억압받던 많은 사람들은 개종의 길을 택하게 되었다. 어느덧 이슬람은 인도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종교로 성장을 하게 되었고, 날마다 신을 만나야 직성이 풀리는 인도 사람들의 삶에 위안과 화평을 주는 종교가 되었다.  

버스 맨 뒷자리는 언제나 개구쟁이들의 몫. 사진 찍는 필자를 버스 안의 개구장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 스쿨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아이들 버스 맨 뒷자리는 언제나 개구쟁이들의 몫. 사진 찍는 필자를 버스 안의 개구장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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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버스가 멈춰섰다. 뒷자리에 앉은 천진한 아이들의 표정이 천진하기만 하다. 하지만 저 아이들도 분명 각자의 카스트가 다를 터. 그들이 앞으로 겪어야 할 자기 정체성의 혼란을 생각하니 갑자기 우울한 기분이 든다.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채 인도의 뼈대가 되어온 카스트 제도. 어쩌면 그것의 수정과 보완이 앞으로 인도가 해결해야 할 가장 커다란 숙제인지도 모른다.

개구쟁이들을 싣고 저 멀리 떠나가는 스쿨버스
 개구쟁이들을 싣고 저 멀리 떠나가는 스쿨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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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사람들은 '힌두' 안에 모든 것을 포용해 왔지만, 이슬람은 결코 '힌두'안에 용해되지 않았다. '힌두' 안에서 편한 삶을 살 수 없었던 사람들이 과감하게 '힌두'를 버린 것이다. 불편하지만 숙명적인 힌두와 이슬람의 동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덧붙이는 글 | '2009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



태그:#트리밴드럼, #남인도, #인도, #케랄라, #힌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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