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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두개의 봉우리에 둘러 싸인 청량산 청량사
▲ 봉화 청량산 열 두개의 봉우리에 둘러 싸인 청량산 청량사
ⓒ 이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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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 청량산 입구에 첫발을 디뎠을 때, 무심코 마흔 살짜리 늙은 소와 노쇠한 할아버지간의 운명적 이야기를 다룬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생각났다.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청량산 가파른 길을 온몸으로 고행하듯 기어오르시던 할아버지의 숭고한 등반이 떠올랐다. 노심초사 뒤를 따르던 할머니의 마른 헛기침이 생각났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이미 체념한 듯 허파 속에 묵혀놓았던 숨을 거칠게 뱉어내던 할머니의 한탄스런 독백이 아련하게 들려오는 듯했다.

마치 시루떡 편의 단면처럼 층층이 선 절벽 아래로 낙동강 상류의 푸른 물은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절벽은 편평했던 땅이 내려앉고 갈라져 계곡을 이룬 것 같은 구조곡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층의 오묘한 단층작용에 의한 절리의 형성은 거대한 예술적 암벽인 듯했다. 흔히 볼 수 없었던 풍경이었다. 언뜻 그 절벽의 골을 따라 사시사철 무수히 흐르고 굽이쳐갔을 살아있는 물의 역사와 생명성(生命性)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강물을 바라보며 생명 탄생의 역사, 다시 말해 전 지구적 역사에서 생명의 기원을 가능케 했던 물이 가진 위대한 창조성에 대해 더듬어 보았다. 끊임없이 흐르고 흐르며 세상을 침식시켜 다듬고, 운반하며 쌓아 새로운 변화와 개혁의 터전을 만들어 내고 있는 물이 가진 진보적 자연성을 사유해 볼 수 있었다. 그저 어줍잖은 상상이었다.

청량산 매표소를 지나 오른쪽에 청량폭포가 있다.
▲ 청량폭포 청량산 매표소를 지나 오른쪽에 청량폭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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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대교를 건너 매표소 출입구를 스쳐 지나며 오른쪽 산 아래 시원하게 물줄기를 떨어뜨리는 청량폭포를 볼 수 있었다. 폭포는 청량산을 찾아온 여름날의 방문객들을 반갑게 환영하는 표정처럼 보였다. 그래서인지 첫인상에 대한 느낌은 사뭇 상쾌하고 괜찮은 편이었다. 뭔지 모르지만 막연한 긍정적 기대감을 갖게 하는 탄산음료가 쏟아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보통의 세상에선 무엇보다 사물이나 대상이 가진 첫인상의 이미지가 그 대상에 대한 호감, 비호감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이미지를 인상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인공적으로 가공하고 꾸민다. 게다가 다분히 표면적이고 충동유발적인 치장의 몸짓으로 과장하기까지도 한다는데, 청량산의 청량폭포는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과도한 수량(水量)으로 요란하게 떨어지고 있지도 않았고, 지나치게 크고 장대해서 평범한 친근감을 상실케 하지도 않았다. 뭐랄까, 적당한 신선함이랄까? 특별하지 않아 보이는 편안한 소박함이랄까...

청량산의 청량사로 들어가는 첫 관문인 일주문이 묵직하고 듬직하게 서 있는 모습
▲ 청량사 일주문 청량산의 청량사로 들어가는 첫 관문인 일주문이 묵직하고 듬직하게 서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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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의 주인공 최씨 할아버지가 할머니와 함께 힘겹게 올랐던 청량사 가파른 오르막길
▲ 가파른 길 워낭소리의 주인공 최씨 할아버지가 할머니와 함께 힘겹게 올랐던 청량사 가파른 오르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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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학정 삼거리에서 왼쪽 방향으로 청량사를 향해 비탈진 산길을 올랐다. 시멘트 콘크리트로 포장된 오르막은 심하게 가파른 급경사였다. 정기적인 산행으로 단련된 강건한 다리와 허파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면 중간 중간 몇 번은 쉬어야 했고, 숨을 헐떡거려야만 했다. 이 땅 온 구석구석의 산을 두루 돌아본 것은 아니지만, 이 곳 청량사로 오르는 산길은 유독 경사가 급하고 험했다. 마치 누군가 "짧고 굵게 확~! 개운하게 땀 좀 빼고 올라오시오!"라며 입산 통과의례를 시키는 기분이 들었다.

어금니를 꽉 문 채 거의 쉬지 않고 오르막을 올랐다. 초록의 나무들로 덥힌 그늘진 산길이었지만, 여러 개 봉우리 속에 둘러싸여 오목하게 파인 골짜기라선지 한 여름의 꿉꿉한 습도와 기온은 고스란히 그 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래서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입 속은 텁텁하게 말라 단내를 풍기며 뒹구는 훈련병처럼 칼칼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가며 간신이 청량사로 향하는 언덕에서 티벳의 고승 같은 풍모를 지닌 늙은 소의 주인이자 친구인 최원균 할아버지가 다시 생각났다. 지팡이에 의존해 불편한 한쪽 다리를 질질 끌듯 하며 기어이 청량사에 올랐던 악착같은 그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자식이자 친구나 다름없던 늙은 소의 죽음을 아무런 표정 없이 애도하던 그 노인이 품은 윤회의 정서를 되새겨 보았다. 생각해보면, 노인은 거친 수염과 깊게 패인 주름진 얼굴을 하고 있었고, 간혹 초점 없는 눈동자를 허공에 멈추어 몽롱한 회상을 하는 것 같았었다. 노인의 슬픔은 늦은 가을날 오후 스러져 가는 희미한 노을처럼 한 없이 깊고 처량했었다.  

청량사의 대웅전인 유리보전
▲ 유리보전 청량사의 대웅전인 유리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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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보전(琉璃寶殿) 돌계단 아래 앉아 찐득찐득한 땀을 바람결에 말리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청량사 유리보전 앞 오층석탑을 향해 몇 번이나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던 할머니의 간절한 염원이 아련한 영상으로 파랗게 펼쳐진 하늘에 나타나는 듯했다. 어엿한 식구였던 늙은 소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할머니의 무릎과 허리와 머리에는 한 점의 티끌도 보이지 않을 만큼 맑고 깨끗한 혼신의 정성이 담겨져 있었던 것 같았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

구닥다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요를 흥얼거리며 늙은 소와 남편 사이에 밧줄처럼 굵고, 질긴 연으로 맺어진 인간과 짐승 사이의 공존의 정을 질투하셨을지 모를 할머니의 애증과 외로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흙으로 돌아간 늙은 소의 흔적과 기억을 더듬으며 절망하고 있을지 모를 노쇠한 남편을 걱정하는 여필종부(女必從夫) 아내로서의 운명에 대해서도 헤아려 볼 수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늙고 병들어 죽은 소의 극락왕생을 간절히 빌었던  오층석탑
▲ 청량사 오층석탑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늙고 병들어 죽은 소의 극락왕생을 간절히 빌었던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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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을 앞에 두고 간절히 절을 하는 아낙네와 무심한 사내
▲ 청량사 오층석탑 탑을 앞에 두고 간절히 절을 하는 아낙네와 무심한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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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층석탑이 눈앞에 바로 보이는 고송(古松)의 둘레돌에 앉아 하염없이 탑을 바라보았다. 탑을 뚫어져라 쳐다보니 탑이 뭐라고 응답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할머니의 넋두리 섞인 하얀 독백과 할아버지의 허탈한 인생무상의 상념이 구름처럼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자꾸만 눈앞에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잔영이 아른거리며 나타났다. 늙고 쇠잔한 몸을 이끌고 할아버지와 함께 아지랑이 가물가물 피어오르는 들녘을 수행자처럼 걷고 있는 누렁이 소의 모습이 파노라마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갔다.

절집에 와서 영화를 생각하고, 영화를 생각하며 절집을 느끼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다니 새로웠다. 평소 의도하여 해보지 않은 짓이었지만, 색다른 사색과 우연한 감상의 계기가 되었으니 무척 다행스럽다.

영화 워낭소리에 등장하는 장면
▲ 할아버지와 소 영화 워낭소리에 등장하는 장면
ⓒ 영화사 스튜디오 느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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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보다 소를 사랑한 늙은 할아버지, 그를 남편으로 둔 할머니의 운명적 삶과 인연, 소를 흙으로 떠나보낸 후 그리움에 찾아왔던 이 곳 청량사. 가만히 생각해보면 청량사로 오르는 가파른 경사의 산길은 나름의 의미심장한 깨달음을 배우게 하는 명상과 수행의 길이었다. 가슴에 묻어 두었던 애틋한 연모의 대상과 만나기 위해 몸과 마음속의 지저분한 찌꺼기를 모조리 땀으로 배설하고 나서야만 오르게 되는 청정한 염원의 통로였다.        

약사여래불을 모신 유리보전(대웅전)에 올라 마루에 엉덩이를 걸치고 주저앉아 멀리 앞산을 바라보고 주위 사방을 둘러보니 청량산의 자태가 새삼 예사롭지 않음을 감상할 수 있었다. 기암절벽의 열 두 봉우리들이 청량사의 주위를 연꽃처럼 둥글게 감싸고 있는 지형으로도 보였고, 마치 아늑한 새의 둥지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천천히 보면 볼수록 그 아름다움이 커지고 깊어지는 감흥이 있었다. 이 곳 청량산 연화봉 한 가운데서 머리를 식히고 마음을 열어 향긋한 탄산음료 같은 오묘한 기운을 마시고 채우니 왠지 모르게 몸과 마음이 훨훨 가벼워지는 듯했다.

유리보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한 다포계 기둥양식으로 지어진 절집이었다. 아담한 보살이었다. 청량사 유리보전의 편액은 고려시대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 곳에 머물렀을 때 친필로 쓴 것이라고 한다.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고찰 청량사는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를 억압했던 주자학자들에 의해 피폐해져 지금은 유리보전과 부속건물인 응진전만이 남아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하지만 푸른 녹음이 무성한 기암절벽의 품에 안겨 청아한 산 새 소리와 바람소리에 어우러져 고요하게 덕을 쌓고 있으니 그 자체로 평화롭게 보였다. 게다가 이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사이다와 같은 한 모금의 맑은 위로와 평안을 선물하고 있으니 그 존재의 의미는 넉넉하고도 충분해 보였다.

유리보전에서 왼쪽에 있는 부속건물들과 항아리 장독대가 가지런한 장대를 감상했다.
▲ 유리보전에서 본 청량사 부속건물들과 장대 유리보전에서 왼쪽에 있는 부속건물들과 항아리 장독대가 가지런한 장대를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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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내려오기에 앞서 유리보전 마루에 앉아 가볍게 쉼 호흡을 했다. 석축 돌계단 아래로 내려와 둥근 석조 안으로 졸졸 흐르는 약수를 작은 바가지에 반 쯤 떠서 마셨다. 잠시라도 한 여름의 더위를 잊게 해주는 듯, 생활의 잡념을 잊도록 시원하게 마음을 닦아주는 듯, 세심(洗心)의 약수는 너그러웠다. 아무도 모르게 흐뭇한 만족의 미소가 수줍게 피어날 무렵, 유리보전 오른쪽 추녀 밑에 걸린 물고기 풍경이 바람에 날려 영롱한 소리로 딸랑딸랑 울었다. 마치 워낭소리처럼 울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8월 2일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태그:#봉화 청량산, #봉화 청량사, #워낭소리, #청량사 유리보전, #청량사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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