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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사 가는 길

트럭을 타고 비로사로 향하는 회원들
 트럭을 타고 비로사로 향하는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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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비로사를 사전 답사하면서 주지스님에게 10시 반쯤 비로사 입구에 도착한다고 약속을 했는데 시간이 벌써 10시45분이다. 비로사로 전화를 걸어 일정이 늦어지고 있음을 알리고 양해를 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급하고 초조하다. 희방사역에서 비로사까지 30분은 걸리니 11시15분은 되어야 도착할 수 있다.

비로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니 벌써 차가 와서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10인승 봉고차다. 이거 참 난감하다. 그렇다면 차가 너댓 번은 왔다 갔다 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우리 젊은 사람들은 걸어가고 나이든 분 먼저 태우기로 한다. 걸어서 20분은 잡아야 하는 거리다. 가다 보니 비로사에 갔다 내려오는 봉고차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조금 있다 뒤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트럭이 한 대 올라온다.

차의 뒤 짐칸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이들을 자세히 보니 우리 회원들이다. 그들 모두 즐거운 표정으로 우리에게 손짓을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국립공원 관리공단 차인데 마침 비로사까지 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봉고차 운행 횟수가 두 번은 줄어들었다. 이렇게 답사를 다니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추억이 생기곤 한다. 솔직히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트럭을 타 볼 수 있겠는가!

거기다 스님의 설법에 감동까지

적광전에서 강론을 하는 성공스님
 적광전에서 강론을 하는 성공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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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온 회원들은 일부 문화유산을 보고 늦게 온 회원들은 바로 적광전으로 올라간다. 늦게 도착한 회원들이 일주문 계단을 올라 적광전에 자리하니 시간은 벌써 11시30분이다. 예정보다 한 15분 정도 늦었다. 세 방향의 법당 문을 모두 여니 밖으로부터 시원한 바람이 불어 들어온다. 주지인 성공스님이 법문을 위해 불단 앞에 선다. 흰 모시로 시원하게 옷을 해 입었다. 한 마디로 멋쟁이 스님이다. 주장자를 대신해 대나무 죽비를 하나 들었다.

스님은 먼저 비로사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비로사는 의상대사의 제자인 진정(眞定)스님이 창건했다고 한다. 신라 말에는 진공대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선풍을 드높였고, 고려 인종 때에는 부처의 치아사리를 봉안하기도 했다고 한다. 고려 말에는 환암 혼수 스님이 비로사를 중창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와서 복전 스님이 비로사에서 화엄경을 강의했고, 임진왜란 때는 승군의 훈련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비로사 일주문에서 바라 본 소백산 비로봉
 비로사 일주문에서 바라 본 소백산 비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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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성공스님은 이 절의 창건주 진정스님의 효심과 그 어머니의 불심을 기가 막히게 감동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 효선(孝善)」편에 '진정사(眞定師 효선쌍미(孝善雙美)'라는 제목으로 전해진다. 이 제목을 쉽게 풀어 설명하면 '진정대사의 효도와 선행이 둘 다 아름답다'가 된다. 그러나 내용을 알고 보니 스님의 효심보다 어머님의 불심이 더 훌륭하다.

자료에 따르면 진정스님은 의상대사의 10대 제자다. 의상이 화엄종을 전하기 위해 전국에 많은 사찰을 창건한다. 그 중 하나가 봉황산 부석사다. 또 의상대사는 화엄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수많은 제자를 양성한다. 이들 중 가장 뛰어난 제자를 아성(亞聖)이라 불렀는데, 그 중 한 분이 진정대사이다. 

진정사 효선쌍미

비로사 장항아리
 비로사 장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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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인(俗人) 시절 진정대사는 태백산에서 의상대사가 설법한다는 소리를 듣고 사모하는 마음이 생긴다. 아들이 어머니께 다음과 같이 말한다. "효도를 마친 뒤에 의상법사에게 가서 머리 깎고 도를 배우겠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불법은 만나기 어렵고 인생은 너무나 빠른 것이니 효도를 마친 후라면 또한 늦지 않겠느냐. 그러니 어찌 내 죽기 전에 네가 불도를 아는 것만 하겠느냐. 주저하지 말고 빨리 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씀하신다.

이에 진정은 다음과 같이 반문한다. "어머님 만년에 오직 제가 옆에 있을 뿐이온데 어찌 버리고 출가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는 "네가 나 때문에 출가를 못한다면 나를 지옥에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비록 생전에 삼뢰칠정(三牢七鼎)으로 나를 봉양하더라도 어찌 가히 효도가 되겠느냐. 나는 의식을 남의 문간에서 얻더라도 또한 가히 천수를 누릴 것이니 꼭 내게 효도를 하고자 하면 떠나도록 해라"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어머니는 집에 있는 쌀자루를 모두 털어 밥을 지었다. 모두 일곱 되로 한 되는 아들에게 먹이고 나머지 여섯 되는 싸가지고 떠날 것을 재촉한다. 진정은 흐느껴 울면서 그 밥을 받지 않으려고 했다. 아들은 세 번을 사양했으나 어머니는 세 번을 권했다고 한다.

불법을 찾아 떠나는 젊은이
 불법을 찾아 떠나는 젊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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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은 어머니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 길을 떠나 3일 만에 태백산으로 의상대사를 찾아간다. 그는 머리를 깎고 의상대사의 제자가 되면서 진정이라는 법명을 받는다. 진정은 3년 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고 7일 동안 선정(禪定)에 들었다고 한다. 이것을 혹자는 슬픔을 씻고 추모한 것이라 하고, 선정에 들어 어머니 사시는 곳을 관찰하였다 하고, 어머니의 명복을 빈 것이라고 했다.

선정을 마친 후 진정은 의상스님에게 결과를 고하니 의상스님은 제자 3000명을 이끌고 소백산 추동(錐洞)으로 들어가 『화엄경』을 90일 동안 강의했다. 강론이 다 끝난 후 진정스님의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는 이미 하늘나라에 환생했다."

여기서 말하는 추동이 바로 비로사 골짜기이다. 진정스님이 이 골짜기에 절을 창건하니 이 절이 바로 비로사라는 것이다. 또 이때 행한 강론의 요지를 의상스님의 제자인 지통이 가려 뽑아 두 권의 책으로 내게 되는데 그것이『추동기(錐洞記)』이다. 『추동기』는 의상스님의 화엄학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저서 중 하나이다.

적광전의 두 부처님

적광전의 두 부처님
 적광전의 두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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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광전 안에는 두 부처님이 강론을 듣는 우리를 바라보고 계신다. 우리가 보기에 왼쪽에 계신 분은 아미타부처님이고 오른쪽에 계신 분은 비로자나부처님이다. 일반적으로 법당에는 세 분 부처님이 모셔진다. 이 법당이 적광전이라면 비로자나부처님과 석가모니부처님 그리고 노사나부처님을 모시는 게 맞다. 그렇다면 부처님을 옮겨온 것이 맞다. 이 법당이 옛날부터 적광전이었다면 아미타부처님이 옮겨온 것이고, 극락전이었다면 비로자나부처님이 옮겨온 것이다.

왼쪽의 아미타부처님은 시선이 아래쪽을 향하고 있고, 비로자나부처님은 시선이 똑바로 앞을 향하고 있다. 아미타부처님이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은 우리 중생들을 구제해 극락에 보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비로나자부처님의 시선이야 늘 먼 곳을 바라보면서 우리에게 지혜를 가르쳐 준다.

성공스님은 이 두 분 부처님이 모두 돌부처라고 한다. 그런데 돌에서 좋지 않은 성분이 피어 나와 이를 닦아 내고 그 위에 석고를 바른 다음 개금을 했다고 한다. 그 바람에 석불이 금불처럼 변했다는 것이다. 언젠가 돌에서 피어나는 석화를 없애는 기술이 발견되면, 다시 석불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절도 역시 사람이 만든다

진공대사보법탑비
 진공대사보법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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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스님이 비로사에 온 것이 1991년이라고 하니 올해로 벌써 19년째다. 그동안 절을 일으키기 위해 무진 애를 쓴 것 같다. 절집이고 문화재고 온통 폐허에 가까웠던 것을 이제는 당간지주고, 진공대사탑비고 당우고 하나같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 진공대사탑비의 깨진 부분은 불사를 하면서 경내 땅 속에서 발견, 복원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진공대사탑비의 훼손된 부분은 같은 재질의 돌로 갖다 맞췄는데 조만간 제 것을 갖다 맞출 수 있다니 그날이 기다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로사에는 아직 할 일이 많다. 우선 적광전 앞에 있는 엉터리 탑이다. 성공스님도 얘기하듯이 둘 또는 셋의 탑재와 부도재를 쌓아올려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다. 낯낯의 부재를 보면 조각기법이 대단히 우수하다. 특히 안상의 조각이나 사자상 조각은 정말 정교하고 아름답다. 이들이 제자리를 찾을 때 제대로 된 탑과 부도가 비로사에도 생겨날 것이다.

문제가 많은 탑
 문제가 많은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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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진공대사보법탑비 주변에 있는 석재들도 제대로 수습이 되어야 할 것 같다. 특히 광배의 일부로 보이는 돌조각들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어 아쉬웠다. 깨진 파편 속 두 기의 화불은 거의 완전한 모습이다. 옆에 있는 돌에서도 앙련(仰蓮)과 불꽃무늬가 확인된다. 그나마 최근 작업을 통해 이들 석재 옆에 주춧돌을 모아놓은 것만도 다행이다. 언젠가 이들에게도 생명이 불어넣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태그:#소백산 비로사, #진정대사 , #진공대사, #성공스님, #적광전의 두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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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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