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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속의 섬, 일명 모세의 기적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는 남편의 말에 반신반의하며 함께 가는 길...도로 한 가운데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야자수 나무들이 도열해 있다. 이국적인 풍경이다. 여기가 우리나라인가 외국인가. 월드컵 경기장과 이마트를 다시 거쳐 법환동으로 간다. 바다가 보인다.

 

해안도로 쪽으로 가니 법환포구가 나온다. 바닷가에 텐트치고 여럿이 모여 있는 주민한테 서건도 위치를 물었다. 사거리에서 좌회전, 300미터 정도가면 서건도가 있다 한다. 지척이다. 비닐 하우스 단지가 나오고 우측에 작은 표시판이 보인다. 차 타고 3분도 채 안되는 거리에서 서건도가 나온다.

 

서건도의 '서건'은 제주 말로 '썩은'이란 뜻이다. 예전에는 그래서 '써근섬'이라 불려졌으나 지금은 서근도라 부른다. 서귀포시 강정동 산 1번지에 위치한 서건도는 면적 1만3367㎡이다. 탐라국시대에는 사람들이 이곳에 거주했으며 조선 초기에는 이곳 해변에 새포방호소와 수전소, 그리고 변수연대 등 방어유적이 있었다고 한다.

 

 

바다 갈라짐 현상은 해저지형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남서 섬 해안과 같이 해저지형이 복잡하고 조차가 큰 지역에서 볼 수 있으며, 보름이나 그믐에 규모가 특히 크다고 한다. 너무 기대가 컸던 것일까. 모세의 기적 현장을 방불케 하는 곳이라더니 막상 와서 보니 얼핏 본 내 눈엔 거저 그랬다.

 

내륙지방에서 자란 사람들이야 신기하기도 하겠지만 차라리 내 고향 바닷가보다 못하다 생각하며 바닷가로 내려섰다. 썰물 때면 섬과 섬을 있는 바닷길이 난다더니 섬 속의 작은 섬을 이어주는 물길은 길이가 짧고 널찍해서 신기하다는 느낌이 드는 정도는 아니었다.

 

마침 썰물 때라 크고 작은 바위들과 자갈돌 깔린 바다 밑이 드러나 있었다. 우리 두 사람 외에도 가족으로 보이는 몇 명의 사람들이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다. 남편은 바닥이 드러난 바닷가 자갈길을 걸어 멀리까지 걸어 나갔다.

 

바다를 건너 갈 생각을 않고 땡볕 아래 서 있는 나를 향해 손짓하면서 빨리 오라고 재촉했다. 나는 전혀 흥미롭지 않았고 건너가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다. 남편의 손짓, 그리고 나를 불러대는 목소리를 들으며 하는 수 없이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자갈돌 걷다보면 큰 바위들도 있었다. 남편은 여기서 고동이라도 잡겠다고 저만치 걸어가서 바위틈을 살피고 있었지만 물이 계속 드나드는 이곳엔 그 흔한 바다풀 하나 보이지 않았고 바닷물은 깨끗했다. 바위에, 돌에 어쩌다 붙어 있는 것은 아주 작은 고동이었다.

 

자꾸만 손짓하는 남편에게 다가갔다. 섬 속의 섬에 닿았다. 섬 입구엔 해녀동상이 서 있었다. 그늘진 곳이라 그럴까. 왠지 더럭 겁이 났다. 섬에 발을 들여놓기도 싫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내 손을 이끌었다. 서건도 산책로를 따라 걸어보잔다.

 

이미 오후 시간이고 잡풀이 무성한 이곳 서건도에서 인위적인 사람 손길이 닿은 곳이란 바닥에 깔린 나무 바닥과 전망대 뿐 함부로 웃자란 풀들이 한기가 돌도록 으슥한 느낌이었다. 이 작은 섬에 들어올 때 올레 길을 걷는 사람인지 홀로 먼저 들어왔다가 저만치 걸어가는 한 사람을 보았을 뿐 아무도 없는 그늘진 섬이었다.

 

나는 산책로를 따라 끝까지 걷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돌아가고 싶었다. 남편은 손을 이끌며 걸어보자 한다. 무성한 풀들과 나무들 사이 길로 걸어가니 길 끝에는 망망대해, 원시의 바다가 펼쳐져 있다. 바닷길에선 느끼지 못했던 풍광이다. 숨은 비경이었다.

 

탁 트인 바다, 깊고 짙은 쪽빛 바다가 시퍼렇게 살아 꿈틀대는 바다, 오염이 전혀 없는 날 선 바다 빛이다. 시퍼렇게 깨어있어 오싹하도록 살아 꿈틀거리는 바다였다. 새파란 바다 빛에 반해 기암괴석이 솟아있는 바위 끝으로 한두 발 내딛자 남편은 내 팔을 안으로 끌어들였다.

 

다시 돌아 나오는 그늘진 숲길, 얼른 이곳을 돌아 나가고 싶었다. 다시 온 길로 섬 속의 섬 서건도를 한바퀴 돌아 나왔다. 남편은 그런 내 마음은 알지도 못하고 '여보, 여기서 도시락 먹고 앉아 놀아도 되겠다'며 한 술 더 뜬다. 나는 그냥 고갯짓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오싹한 기분을 떨쳐내며 다시 섬 속의 섬을 나와 바닷길을 걸었다. 크고 작은 바위들과 잔돌이 섞여 있는 길이었다. 아직 밀물 때는 아닌가 보다. 넓은 돌길을 걸어가며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아차, 나도 모르게 깜짝할 사이에 그만 바위들 위로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앞으로 고꾸라졌던 나는 울퉁불퉁 바위들 위에 몸을 비틀대며 길게 뻗으면서도 충격을 줄이기 위해 왼팔과 오른팔 순으로 뻗었다. 맨 마지막으로 얼굴이 앞으로 넘어지면서 앞에 있던 바위에 나도 모르게 턱을 '콰당! 찍고 말았다.

 

별이 번쩍 하는 것 같은 갑작스런 충격이 아래턱을 가격했다. 순간, 턱에 불이 번쩍하는 것 같았고 온 몸에 찌르르 전기가 통하는 것 같았다. 이어서 온 몸에 통증이 몰려왔다. 일어설 수도 없었다. 겨우 낑낑대며 눈을 들어보니 바위에 피가 튀어 묻어 있었다.

 

어디서 나는 것일까. 붉고 선연한 피였다. 턱의 통증은 엄청났다. 나는 그대로 엎어진 채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바위 이곳저곳에 드러누운 나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바위들 위에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엎드려 있었다.

 

몇 개의 바위 위에 길게 뻗어 누운 내 몸은 다리와 팔, 그리고 턱에 가해진 충격과 통증 때문에 엎어진 채 신음하며 끙끙댔다. 옆에 다가온 남편은 "여보 괜찮아?!"라고 겨우 한마디 했다. 나는 그대로 누워 낑낑거렸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남편은 "내가 어떻게 해 줘야해?!"하며 난감해 했다.

 

남편이 일으켜 세우려 해 보았지만 나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 몸이 심각한 상처나 고장이 난 것 같았다. 겨우 몸을 서서히 움직여 보았다. 남편의 부축으로 일어섰다. 쓰라린 통증이 느껴지는 곳을 보았다. 왼쪽 손 손가락마다 중간 마디가 바위에 까져서 피가 흐르고 있었고 팔엔 길고 깊게 할퀸 듯한 상처가 나 있었다.

 

바위에 살이 깎여 나간 것이다. 오른쪽 손가락엔 피가 났고 무릎 바로 아래 뼈는 바위에 부딪쳤는지 시퍼렇게 멍이 들어 부어올랐다. 나는 턱을 감싸 쥐고 있었다. 심각한 상처일까 봐 손을 뗄 수도 없었다. 턱뼈가 부러지거나 함몰되거나 금이 갔거나 한 줄 알았다. 남편은 내 손으로 감싸 쥔 턱을 그의 손으로  떼냈다.

 

턱에는 피멍이 들긴 했지만 피는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내 턱에 가해진 엄청난 충격에 의해 욱신거리고 아팠다. 점점 표가 날 정도로 뼈는 부어올랐다. 겨우 바닷가를 벗어나 차에 올랐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아팠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다.

 

병원에 가길 싫어하는 내 입으로 나는 남편한테 병원에 가야겠다고 했다. 물어 물어서 차를 달려 찾아간 병원을 절뚝거리면서 들어갔다. 창구에서 접수를 하고 잠시 기다렸다. 턱이 제발 별일 없기를 바라면서 나는 내 턱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앉아있었다.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범사에 감사 합니다'는 기도가 나왔다. 곧 내 차례가 왔다. 젊은 의사선생은 내 몸의 상태와 다친 이유에 대해 듣더니 괜찮다고 별 것 아니라고 했다. 충격을 받아서 그렇지 괜찮을 거라고 했다. 주여 감사합니다.

 

의사의 진찰 후 치료실로 들어가 주사를 엄살을 떨며 주사를 두 대씩이나 맞았다. 주사까지 맞았으니 더 절뚝거리며 치료실로 들어가 소독과 함께 치료를 받았다. 다친 상처가 치료할 때마다 아파서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만한 걸로 정말 다행이었다.

 

오른쪽 다리에도 왼손 마디마디와 팔뚝에도 붕대를 감고 턱 밑엔 치료 후 반창고를 붙인 내 모습이란...정말 혼자 보기 아까울 만큼 우스꽝스러웠다. 겨우 치료를 마치고 절뚝거리며 밖으로 나오자 온데 붕대를 감은 내 모습을 보며 남편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미묘한 표정으로 짓더니 그래도 내 꼴이 우스운지 픽~웃었다.

 

나도 그때서야 웃음이 나왔다. 병원 옆에서 약을 타고 절뚝절뚝 차에 올랐다. 아직도 바위에 넘어지면서 받았던 쇼크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나는 야영장으로 돌아오자마자 텐트 안에 들어와 쓰러져 누웠다. 하루 동안의 피로가, 아니 서건도에서 넘어져서 받은 쇼크와 통증으로 얼마나 놀랬는지 몸에 기력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다시는 여행을 하고 싶지 않았다. 집에 가고 싶었다. 온 몸에 성한 곳 없는 것처럼 욱신거리고 아파 끙끙거리며 힘들게 그러나 깊이 잠이 들었다. 손과 팔에 붕대를 감고 몇 날을 지내야 했던 나는 붕대를 감고 있는 날 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했다. 이렇게 지저분한 모습으로 돌아다녀야 했던 나는 집에 돌아와서 며칠간은 남편이 씻어 주어야 했다.

 

*찾아가는 길: 12번 도로 이용, 중문지나 서귀포 방향으로 가다가 하원동에서 우회전해 들어가면 된다. 풍림 콘도에서 법환 방향으로 약 2km가면 비닐하우스 단지 나오고 우측에 표시판이 보인다.


태그:#서건도, #제주, #서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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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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