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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노사가 77일 만에 구조조정안에 합의하고 극적으로 타결을 이룬 6일 밤 경기도 평택역 앞에서 쌍용차 도장공장 점거 농성을 벌인 노동자들 중 단순참가자로 귀가조치된 노조원이 아내와 가족을 만나 기뻐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노사가 77일 만에 구조조정안에 합의하고 극적으로 타결을 이룬 6일 밤 경기도 평택역 앞에서 쌍용차 도장공장 점거 농성을 벌인 노동자들 중 단순참가자로 귀가조치된 노조원이 아내와 가족을 만나 기뻐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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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일째 극한 대립을 해온 쌍용자동차 노사가 극적인 합의를 이뤄냈습니다. 정리해고자의 48%를…."

6일 오후 1시 45분께 평택역에서 쌍용자동차로 가던 택시 라디오에서 속보를 전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년째 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는 택시기사 박두선씨는 반색하는 것도 잠시 곧 '끌끌' 혀를 찼다. 그는 "그나마 크게 다친 사람 없이 끝나서 다행이긴 한데…"라며 말을 이었다. 그의 말투는 조심스러웠다.

"기자시니까 나보다 더 잘 알겠지만 쌍용차가 과연 살아날 수 있을까요? 서로 합의를 봤으니 이제 곧 차를 만들어 내긴 하겠죠. 근데 소비자들이 사주느냐가 문제잖아요. 그동안 쌍용차 이미지가 많이 안 좋아진 것이 사실이라 예전만큼 팔리겠느냐는 거예요. 어쨌든 정상화가 돼야 우리 같은 사람도 먹고 사는 게 좀 풀리긴 할 텐데…."

쌍용차 노사의 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진 이날 평택의 거리에는 안도와 기대, 그리고 우려가 교차했다.

평택 지역의 최대 현안이었던 쌍용차 사태가 해결 국면으로 접어든 것은 다행이라며 환영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쌍용차가 회생해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현실론'도 만만치 않았다. 시민들이 한 자리에 모여 토론을 한다면 그 열기는 이날 하루 종일 내리쬐던 뙤약볕만큼이나 뜨거울 것이었다.

안도와 기대, 우려가 교차했던 평택의 하루

쌍용차 후문 쪽 송탄동에 거주하는 최아무개(56)씨는 "어제 쌍용차 사람들이 전부 도장공장안으로 몰려 들어가서 사고 위험이 크다는 보도가 나오니까 가슴이 벌렁벌렁했는데 다행"이라면서도 "끝내려면 좀 일찍 끝냈어야지 회사나 노조나 다들 큰 손해를 봐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시내에서 만난 김연수(36)씨는 "쌍용차가 살아나려면 정부든 은행이든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극한의 노사 폭력 사태를 본 국민들이 그런 자금을 투입하는 데 동의를 해줄까 의문"이라며 "앞으로 노사가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고 밝혔다.

일부 시민들은 쌍용차를 중국 자본에 팔아넘긴 정부 책임론을 거론하기도 했다. 2004년 7월 당시 참여정부는 경영이 부실해진 쌍용차를 중국 최대 국영자동차 업체인 상하이자동차(SAIC)에 매각했다. 노조 등은 '기술 유출', '먹튀 자본' 문제 등을 거론하며 독자 생존을 외쳤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쌍용차 후문 쪽 송탄동 일대의 식당들. 이곳 주민들은 쌍용차 파업이 시작되고 나서 그 여파를 피부로 직접 겪었다.
 쌍용차 후문 쪽 송탄동 일대의 식당들. 이곳 주민들은 쌍용차 파업이 시작되고 나서 그 여파를 피부로 직접 겪었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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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려는 현실이 됐다. 상하이차는 약속했던 투자를 이행하지 않았고 기술만 쏙 빼갔다. 회사의 경영은 5년 만에 다시 파국을 맞았고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에 맞서 공장을 점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평택역 앞에서 자영업을 하는 이아무개(48)씨는 정부와 경영진의 책임 회피를 강하게 질타했다.

"개인적으로는 정리해고는 어쩔 수 없다고 봐요. 회사가 망하는데 어떻게 직원들을 다 끌어안고 갑니까. 그래도 예의는 지켜야죠. 중국놈들이 기술만 가지고 튀었는데 매각을 결정한 정부 관료들 중에 책임 있는 말, 사과 한마디 한 사람 있나요? 경영진도 마찬가지에요. 고통을 분담하는 게 아니라 떠 넘기잖아요. 지금 정부도 이번 사태가 단순히 쌍용차 노사만의 문제가 아닌데 입을 싹 씻어버리고…."

이씨는 답답한 듯 가슴을 쳤다. 그러면서 그는 "이게 대한민국 국민들의 불행"이라고 씁쓸해 했다.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고... 이게 대한민국 국민들의 불행"

의견들은 다양했지만 그래도 접점은 있었다. 평택을 위해서 "어쨌든 쌍용차가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쌍용차 사태의 피해를 직접 피부로 느낀 쌍용차 주변 상인들의 바람에는 절박함이 묻어났다.

이날 저녁 7시께 쌍용차 후문 쪽 송탄동과 칠원동에 있는 식당들은 저녁식사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한산한 모습이었다. 송탄동 주민센터 맞은 편에 있는 한 해물탕집은 손님 없이 '사장님' 남아무개(53)씨만이 홀로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예전에는 여기가 '쌍용식당'이라고 불릴 정도로 쌍용차 사람들이 많이 찾았지. 아침이면 야근 끝나고 나온 사람들이 동태탕 같은 걸로 아침식사하고 퇴근하고 그랬는데 쌍용차가 저렇게 돼버리고 나서 매출이 3분의 1, 아니 5분의 1이나 될려나 몰라. 그래서 일하는 아줌마도 다 내보내고 이러고 있는 거요."

남 사장은 "오늘 잘 해결됐다고 해서 한숨을 놓기는 했지만 당장 좋아지기야 하겠느냐"며 "그래도 예전처럼 쌍용차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로 식당 안이 왁자지껄해지는 날이 오긴 오겠지?"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호프집 장사 준비로 바쁜 손을 놀리던 노기홍(43)씨도 기대 반 걱정 반이다. 노씨의 가게는 매출이 30%가 줄었다. 팔려고 들여오는 생맥주 양도 줄어 그는 이날 공급처로부터 6만5000원 어치를 받았다.

그는 "냉정하게 말해 쌍용차의 문제는 생산이 아니라 소비"라며 "노사가 합의를 한 것이 기쁜 소식이긴 하지만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려운 시기라 솔직히 예전처럼 회복이 될지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도 "기대는 된다"고 덧붙였다.

쌍용자동차 근처 삼익아파트에 걸린 현수막. 힘을 내야할 아빠들은 지금 둘로 나뉘어 있다.
 쌍용자동차 근처 삼익아파트에 걸린 현수막. 힘을 내야할 아빠들은 지금 둘로 나뉘어 있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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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로 갈라진 이웃 사촌... 갈길 먼 쌍용차

전문가들조차 반신반의하는 쌍용차의 회생 가능성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극한으로 치달았던 쌍용차 노동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간에 깊게 패인 감정의 골을 메우는 일이다. 

쌍용차 공장에서 얼마 떨어져있지 않은 동삭동 삼익사이버아파트와 현대아파트, 그리고 칠원동의 동광아파트 등은 쌍용차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단지다.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노동자들은 이번 사태가 벌어지기 전만 해도 이들은 직장 동료이자 이웃 사촌이었다.

하지만 77일간 해고자와 비해고자로 나뉘어 싸우면서 상황은 변했다. 비해고자들과 해고자들을 서로를 향해 볼트와 너트를 날려 몸을 다치게 했고 "회사를 망하게 하는 주범", "암적인 존재들"이란 극언을 날려 마음을 다치게 했다.

삼익아파트에 거주하는 한 주민(50)은 "우리 단지만 해도 통로 하나에 쌍용차 가족이 3~4세대는 될 텐데 앞으로 서먹서먹해서 인사나 제대로 나누겠느냐"며 "다른 아파트 주민들도 쉬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서아무개(42)씨는 "쌍용차가 저렇게 되면서 아무래도 주민들이 말 조심을 하는 분위기"라며 "해고자로 분류되신 분들은 집을 내놓고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어둠이 깔릴 무렵, 삼익아파트 입구에는 "쌍용의 발전, 가정 경제 발전, 아빠 힘 내세요"라고 적힌 입주민 일동 명의의 현수막이 펄럭였다. 하지만 힘을 내야할 '아빠'들은 둘로 나뉘어 있다. 77일 만에 이룬 쌍용차 노사의 극적인 합의, 그것은 사태 해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태그:#쌍용차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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