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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운대 여름 휴가철 풍경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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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은 날씨가 이상하다. 8월이 되었지만 아침과 밤이 되면 싸늘하다. 여름이면 한창 더워야 할 낮 12시에서 오후 3시 사이에도 그리 덥지 않았다. 선풍기와 에어콘을 달고 살아야 할 여름에 그것이 없어도 살말하지 않은가.

날씨가 견디지 못할 정도로 덥지 않아 이번 여름에는 작년과 달리 계곡, 바다와 같은 곳에 가고 싶다는 충동이 덜했다. 덥지 않은 날씨에 찬물에 샤워하면 느끼는 오싹한 기분일 들 정도였다. 그래서 이번 여름에는 8월이 되었지만 한 번도 피서를 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뉴스에서는 휴가철이라 서울 도심에 있는 인구가 많이 빠져나가고 있다고 보도한다. 처음 뉴스를 보았을 때는 서울이라고 전국적인 날씨와 다르지 않을 텐데 왜 이리 휴가를 많이 가려고 하는 걸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부산 사람은 거의 찾지 않는 해운대

날씨가 그리 덥지 않아 피서를 가고 있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피서를 즐기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5일 부산에서 서울 사람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피서를 오는 해운대에 가서 피서 풍경을 구경하러 갔다.

해운대 가는 버스를 타고 하차를 하는데 왠지 낯선 서울말이 들려왔다.

"야 여기가 해운대 맞니? 바다랑 도시랑 이렇게 가깝게 있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애."
"나도 야. 이야 정말 멋있다!"

서울 사람이 해운대에 많이 놀러온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가는 곳마다 서울말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오히려 내가 지금 서울에 놀러 온 기분이 들었다. 역시 부산 사람은 여름에 해운대에 놀러 가지 않는다는 말이 틀린 이야기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21세기 마차 '신데렐라 꽃마차'

해운대 도시 거리에 운행되고 있는 신데렐라 마차
 해운대 도시 거리에 운행되고 있는 신데렐라 마차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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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백사장으로 가는 길에 여기 저기 여름 물품을 파는 곳이 많았다. 햇빛을 가려주는 모자, 수영복, 튜브, 헤나(문신) 등 여름용 물품을 팔기 위한 상인들이 즐비했다. 이런 풍경이야 다른 피서지에 가도 볼 수 있는 것들이라 관심을 가지지 않고 빨리 지나갔다.

백사장을 빨리 보고 싶어 빠르게 걷고 있는데 말소리가 들렸다. 설마 이런 도심에 말이 있겠나 싶어 그냥 게임 소리인 줄 알고 무시하고 가던 길을 갔다. 갑자기 도로 모퉁이에서 진짜 말이 튀어 나왔다. '신데렐라 꽃마차'라는 간판을 달고 관광객을 태운 마부가 해운대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21세기에 그것도 부산에 마차가 있는 게 참 신기했다.

백사장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닷물에 해수욕하는 사람, 피부를 검게 썬텐하는 사람, 많은 사람들 속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 파라솔 대여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 구급 구조원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해운대 백사장에서 피서를 즐기고 있었다.

백사장 중간에는 아주 큰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매년 여름만 되면 해운대 바다 축제라고 해서 가수들이 와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시민들이 직접 참가한 장기자랑이 열리기도 했다. 올해에는 특이하게 매직페스티벌이 해운대 백사장에서 열리는 것 같았다. 마침 내가 갔던 날이 개막식이 열리는 날이라 리허설을 하느라 분주했다.

백사장에 사람이 너무 많고 햇볕이 너무 따가워서 그늘이 있는 백사장 바로 뒤쪽으로 가보았다. 관광객들이 샤워 할 수 있는 샤워실과 화장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따가운 햇살을 피하며 술과 바다 음식을 맛 볼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풍경보다 더 이색적인 풍경은 부산시소방본부에서 안전한 휴가를 보내기 위한 공익 광고가 소방본부 대형 버스 옆면에 VTR을 설치하여 상영되고 있었다. 백사장에서 보았던 119구조대 보트나 비상구조대원들이야 다른 휴양지에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소방본부의 공익광고 버스는 어느 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버스가 아니다. 한편으로는 재밌었지만 해운대에 얼마나 사고가 많이 나길래 이렇게까지 꼭 해야 하는지 씁쓸하기도 했다.

백사장 뒤에는 관광객들의 편의 시설뿐만 아니라 산책로도 있었다. 백사장에서는 젋은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산책로에는 노인 분들이 많았다. 옹기종기 모여 장기를 두는 할아버지들, 풀 밭에 누워 낫잠을 청하는 사람들 등 뜨거운 햇살을 피해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냉커피 탱크를 매고 다니는 사나이

냉커피 탱크 물통을 매고 다니는 남자 아르바이트생과 카드 광고 팜플렛을 나누어 주는 여자 아르바이트생
 냉커피 탱크 물통을 매고 다니는 남자 아르바이트생과 카드 광고 팜플렛을 나누어 주는 여자 아르바이트생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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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은행에서는 은행 광고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생들이 아주 큰 물통을 매고 사람들에게 냉커피를 무료로 나누어 주고 있었다. 남자 아르바이트생은 큰 물통을 등에 매고, 물통과 연결된 물총으로 커피를 종이컵에 쏘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그리고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여자 아르바이트생은 모 은행 카드에 대해 팜플렛을 나누어 주며 카드에 대해 설명을 했다.

무거운 커피 물통을 매고 있는 남자 아르바이트생의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더운 여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 큰 물통을 들고 다니는 아르바이트생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그리고 여성 아르바이트생 또한 하루종일 관광객들 앞에서 웃어가며 은행 카드에 설명을 하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깨끗한 쓰레기통 주변, 하지만 새벽이 되면 더러워 지는 해운대.
 깨끗한 쓰레기통 주변, 하지만 새벽이 되면 더러워 지는 해운대.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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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오마이 엄지뉴스에서 "처참한 해운대, 부끄럽습니다"라는 제목의 사진이 올라왔다.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로 백사장이 가득찬 모습이 인터넷에 올라온 것이다. 이 사진을 보고 낮에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서 쓰레기 통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낮에는 청소하시는 분들이 따로 있어서인지 쓰레기통 주변이 너무나 깔끔했다. 너무 깨끗한 것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청소를 하시는 분이 따로 있어 깨끗한 해운대가 아니라 관광객들 스스로 관광지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깔끔하게 쓰레기 처리를 할 수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서지 구경은 사람 구경

해수욕도 하지 않았는데 해운대를 갔다 오고 나니 너무나 피곤했다. 피서지를 구경하면서 피서객들처럼 나도 시원함을 느끼려고 했는데 오히려 피로만 안고 온 것이다. 시원한 바다 대신 사람 구경만 실컷 하고 온 기분이다.

우리 사회의 피서는 일상의 피로를 풀기 위한 피서인지 의문이 든다. 많은 인파 속에서 숨 막히는 더위를 보내는 것이 더위를 날려버리는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있다. 하지만 도시의 일상 속에 많은 사람들과 숨 막히는 일상을 살고 있는데 굳이 피서지까지 와서 쉬지 못하는 휴가를 보낼 필요가 있을까? 오지랖이 넓은 고민이지만 피로를 푸는 시원한 피서에 대해서 다 같이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태그:#피서, #휴가, #해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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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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