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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구는 돌고, 계절의 순환은 어김이 없나 보다. 재일 동포 문인들이 도쿄에서 계절마다 발간하는 <종소리> 38호를 받은 지 엊그제 같은데, 오늘 아침 2009년 여름 호인 <종소리> 39호를 강원 산골에서 받았다. 이번 호는 노무현 대통령 추모 특집으로 엮었다. 숱한 주옥같은 시 여러 수 가운데 권두시 '아침이슬' 하나만 소개한다.

 

   아 침 이 슬

 

  -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김 지 영

 

  이른 새벽 산길을 걸으며

  고통과 고뇌 투명한 아침이슬로 정화하고

  기약 없이 떠나가신 님

 

  당신께서는

  지켜드리지 못해 미안하다는 죄책감을

  우리 뇌리에 아프게 새겨놓고

  영영 다시 못 올 길을 가셨습니다

 

  권력의 야비한 칼날과

  보복정치의 뭇매를 맞고

  도덕성도 인격도 갈기갈기 찢겨진

  당신은

  당신이 지켜온 소중한 사랑도 명예도

  뒤돌아보지 않고

  한 조각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가난한 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고

  평범한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 되는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하여 정열을 불태웠던

  당신은

  진정 우리의 대통령이었습니다.

 

  내가 다녀오면 더 많은 사람이 분단선을 넘고

  마침내 금단의 선도 차츰 지워지리라 며

  당당하게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던 그날

  우리는

  남과 북이 오순도순 더불어 살며

  눈부신 햇살에 눈뜨는 평화로운 아침을

  꿈꾸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휘몰아치는 광풍에

  우리의 피와 땀으로 뚫린 길이

  막히고 있습니다

  산과 산을  자유로이 넘나들던 산새들의 날개조차

  하늘을 뒤덮는 먹구름에 움츠려들고 있습니다

 

  부정부패가 판치고

  권위주의와 폭력이 난무하고 잇습니다

  국민의 기본권은 박탈되고

  민주주의는 뒷걸음질을 하고 있습니다

  소외계층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한 무리 부자들만 배부르게 잘 사는,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나라

  이것이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당신께서는

  아무도 원망하지 말라고 하셨으나

  우리는 원망하려 합니다

  사랑과 희망과 평화를

  증오와 절망과 폭력으로 바꾸는 위정자들을

 

  님은 가셨으나

  우리는 당신을 떠나보내지 않았습니다

  짐들었던 우리의 가슴을 일깨워

  스스로 지켜야할 가치가 무엇인가

  눈뜨게 한 당신을

  마음 속 깊숙이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새기며

  이제 눈물을 거두고

  님을 잃은 아픔과 슬픔과 좌절감을

  희망과 용기와 정의의 분노로

  승화시키려 합니다

 

  당신의 올곧은 삶의 자세를 배우며

  당신께서 걸어온 인간적인 삶과

  당신께서 이루려고 하신

  당신께서 이루지 못했던

  당신께서 꿈꾸셨던

  화합과 소통으로 사랑이 넘치고

  보통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신나는 세상을 향하여

  손에 손을 잡고

  힘차게 나아가려 합니다

 

  당신은 가셨으나

  당신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영롱한 아침이슬처럼

  우리의 가슴과 가슴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당신은

  정말 행복하신 분입니다

 

 


태그:#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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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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