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두루 경험하는 일이지만, 중국음식점에 가면 자장면을 시켜먹을지 짬뽕을 시켜먹을지 고민할 때가 있다. 그런데 하루를 시작하는 택시기사들과 애주가들의 아침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해장국집에서도 비슷한 일을 자주 겪는다.

 ‘콩나물국밥’하고 ‘아욱국’만 파는 일출옥. 50대 아내와 60대 남편이 함께 만들어내는 음식은 무척 깔끔하고 맛깔스럽습니다.
‘콩나물국밥’하고 ‘아욱국’만 파는 일출옥. 50대 아내와 60대 남편이 함께 만들어내는 음식은 무척 깔끔하고 맛깔스럽습니다. ⓒ 조종안

군산시 월명산 아래에 있는 동국사에서 부둣가를 바라보고 2백여 미터쯤 걸어가면 이름난 해장국집 간판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길모퉁이에 있는 '일출옥'은 갈 때마다 '아욱국'을 시켜먹을지 '콩나물국밥'을 시켜먹을지 한참을 고민하다 결정한다.

메뉴판에 백반이나 찌개 종류는 없고, 4000원씩 하는 아욱국과 콩나물국밥만 있으니까, 쉽게 선택해서 먹을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뒤집어 말하면 음식들이 그만큼 맛있다는 얘기가 되겠는데, 반찬도 주인아주머니만큼이나 깔끔하고 맛깔스럽게 나온다.

일출옥은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생선국집 주인이 깍두기를 담가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손맛이 좋은 '주방장 겸 사장'인 아내와 새벽시장에서 아욱과 콩나물 등 각종 채소와 새우를 사다가 다듬어서 주방에 조달하는 '영업상무' 남편이 새벽 4시부터 오후 4시까지 손님을 받는다.

부부가 콩나물국으로 유명한 전주도 몇 차례 다녀오고, 시내 식당들도 둘러보면서 콩나물국밥집을 개업하고, 연구와 실패를 거듭하다가 2년 전에는 군산에서 처음으로 아욱국을 내놓으면서 점차 손님이 늘었다고 한다. 요즘에는 이웃집 단골 중에 발길을 돌린 사람이 많아 미안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해장국집 화장실은 대부분 남녀가 함께 사용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일출옥'은 출입문에 '여성전용', '남성전용'이라는 안내판을 붙여놓았다. 주인이 얼마나 깔끔하고 손님을 예우하는가를 보여주는 증표로 보였다. '그 집을 알려면 화장실부터 가보라'는 옛 어른들 말씀이 떠올라서다.

인기가 더해가는 '일출옥' 아욱국 

일출옥이 손님과 음식에 쏟는 정성은 놀라울 정도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젓갈 하나에도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콩나물국밥을 시키든 아욱국을 시키든 깍두기와 배추김치는 기본으로 나온다. 그런데 콩나물국밥에는 오징어젓에 풋고추, 아욱국에는 조개젓에 장아찌가 제격이라서 상을 다르게 차린다고 한다. 장아찌도 여름에는 양파장아찌, 가을부터는 무장아찌를 내놓는다고 하니까 말이다. 

 일출옥 콩나물국. 한 그릇을 비워도 더 먹고 싶어지는데요. 향긋한 청양고춧가루를 조금 넣으면 얼큰하고 시원한 맛을 더해줍니다.
일출옥 콩나물국. 한 그릇을 비워도 더 먹고 싶어지는데요. 향긋한 청양고춧가루를 조금 넣으면 얼큰하고 시원한 맛을 더해줍니다. ⓒ 조종안

국물이 뜨거우면서도 시원하고 얼큰한 콩나물국밥은 우리나라 해장국을 대표한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싶다. 그만큼 유명해서 전국에 널리 퍼져 있다는 의미도 담겨 있는데, 화학조미료를 사용하는 식당이 많은 요즘에는 옛날 어머니 손맛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해서 오늘은 아욱국을 중심으로 얘기를 엮어가려고 한다.

가을 전어가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는 음식'이라면, 가을 아욱국은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가족끼리만 먹는 음식'으로 소문나 있다. 그런데 소문과 달리 사계절 아무 때나 먹어도 개운하고 고소한 제 맛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내년이나 내후년쯤에는 체인점을 낼 계획을 세울 정도로 일출옥 아욱국이 갈수록 손님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중간 새우(중화)가 들어간 일출옥 아욱국. 구수한 된장 맛과 새우의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입에서 하모니를 이룹니다.
중간 새우(중화)가 들어간 일출옥 아욱국. 구수한 된장 맛과 새우의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입에서 하모니를 이룹니다. ⓒ 조종안

마른 새우와 멸치로 만든 육수에 구수한 된장을 풀어서 끓인 일출옥 아욱국은 먹고 나면 입안이 개운한 것은 물론,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속이 편하고, 소화가 될 때까지 부담이 없어서 좋다. 특히 건더기가 많아 입이 심심하지 않으며, 국이나 밥을 더 달라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한 그릇 내올 정도로 퍼주는 인심이 좋은데, 야박스러운 것 같아 돈을 받지 못한다고.  

아욱은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먹었던 여름 채소인데, 요즘에는 하우스 재배로 철을 가리지 않고 맛볼 수 있다. 특히 어렸을 때 초여름이 되면 어머니와 누님이 끓여주었던 아욱국 맛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때는 벌레 먹은 아욱으로 끓여도 맛있었다.

쌀장사를 하던 어머니가 아욱국을 끓여 바람이 잘 통하는 찬장 밑에 놓고 나가시면, 학교에 다녀와 보리밥을 말아 열무김치와 함께 먹던 기억이 새롭다. 어른이 되어서는 생각날 때마다 아내에게 부탁해서 끓여 먹었는데, 작년 이맘때 일출옥에 들렀다가 손님이 아욱국을 시켜먹는 걸 보니까 나도 모르게 입맛이 당겼다.

주인아주머니에게 콩나물국밥은 먹고 나면 더 먹고 싶은 생각이 들고, 아욱국은 개운하기가 그만인데 자랑할 만한 비법이나 재료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한마디로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어리둥절했다. 자신의 음식 솜씨를 뽐낼 것으로 알았는데 조미료 얘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화학조미료가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언론에 오르내렸다. 그런데 우리는 음식에 넣으면 달착지근한 맛을 내는 조미료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주머니는 우리 전통 입맛을 찾으면서 건강도 챙기려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단골이 될 것이기 때문에 고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인아주머니의 당찬 포부

'일출옥' 간판을 처음 봤을 때는 느낌이 이상했다. '째보선창'을 낀 고향동네 '금암동'이 일제강점기에 '일출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연을 아주머니에게 설명했더니, 처음 듣는 얘기라며 "계모임에서 동해안에 놀러 갔다 오다가 해가 떠오르는 장관을 보고 '일출옥'으로 정했어요"라며 활짝 웃었다.

 주방장 겸 사장인 일출옥 아주머니. 12년 전 감자탕을 할 때부터 단골로 다녔는데요. 피부도 곱고 늘씬해서 농구나 배구선수 출신으로 알았습니다.
주방장 겸 사장인 일출옥 아주머니. 12년 전 감자탕을 할 때부터 단골로 다녔는데요. 피부도 곱고 늘씬해서 농구나 배구선수 출신으로 알았습니다. ⓒ 조종안

고향이 충청도 시골이라서 고생했겠다고 했더니, 막내로 태어나 고생을 모르고 자랐다고 했다. 손맛이 좋은데 어머니에게 배웠느냐고 물으니까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은 분이 아니었어요. 그냥 먹고 살려고 이름난 식당을 돌아다니면서 시행착오를 겪다 보니까 좋아진 것 같은데, 알아주는 손님이 많아 고생한 보람을 느껴요"라며 흐뭇해 했다.

콩나물국밥에 양념으로 넣어 먹는 고춧가루도 장에서 사오는 게 아니라, 직접 청양 고추를 사서 씨와 함께 빻아 내놓기 때문에 향이 좋고, 매워도 개운한 맛이 난다며 테이블 위의 양념 고춧가루에 대해서도 자신 있게 설명했다.

군산 손님들 입맛이 까다로워서 단골손님을 잡기가 어려웠을 거라고 했더니 손을 살래살래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처음 개업하고 2년 정도는 콩나물국밥만 했는데 마음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몰라요. 앞집은 새벽마다 손님들이 길가에까지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우리 가게는 텅 비어 있었거든요. 그렇게 기다리면서도 쳐다보지도 않으니까 더 속상했어요. 생활도 성실하고 연기력도 인정받았는데 출연 섭외도 들어오지 않고, 시청자에게도 외면당하고 자살하는 신인탤런트가 생각났어요. 그래도 제 손맛에 자신을 갖고 참고 버티었어요."

"한 그릇에 3천 원씩 하던 2년 전에는 손님을 잡으려고 명절에도 장사했거든요. 그런데 그날 하루에만 800그릇을 팔았어요. 그렇게 손님이 많을 줄 모르고 문을 열었지요. 어쩔 수 없이 식구들을 동원해서 일곱이 장사를 했는데, 아마 밥값을 받지 못한 손님도 많았을 거예요."(웃음)

처음 개업했을 때는 화장도 하고 옷도 깨끗이 입고 있었는데, 주변에서 밥장사할 사람이 아니라며 한 달도 못 갈 것이라고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는 택시 기사는 물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차를 타고 오거나 단골 직장인들도 많이 늘었다는 주인아주머니는 콩나물국밥이 뒷받침하는 아욱국으로 승부를 걸겠다며 포부를 당차게 밝혔다.

 ‘영업상무’ 남편이 아욱을 다듬고 있네요. 얌전하게 다듬은 아욱은 내일 손님을 위해 주방으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영업상무’ 남편이 아욱을 다듬고 있네요. 얌전하게 다듬은 아욱은 내일 손님을 위해 주방으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 조종안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와 '한겨레필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일출옥#아욱국#콩나물국밥#해장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