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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PD의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순정만화적인 정서를 근간으로 한다. 그가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주목받기 시작한 <태릉선수촌>이 그러했고,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극대화되었다. 현실에서 과연 존재할까 싶은 예쁘고 아름다운 가상의 공간, 동심의 정서를 간직한 순수한 캐릭터들은 순정만화에서 실사로 튀어나온 이윤정표 판타지 월드를 구성하는 중심축이다.

 

동성애, 남매간의 사랑 등 자칫 자극적으로 비칠 수 있는 소재들도 순정만화의 세계속에서 자연스럽게 순화된다. 이윤정의 드라마들은 이러한 민감한 소재들을 섹슈얼리티와 자극적 갈등 구도를 부각시키는 기존 통속극의 선정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순수성' 그 자체에 집중한다.

 

대부분의 순정만화들이 그러하듯, 이윤정의 드라마는 어떤 사건이 벌어지느냐보다는 인물들의 감정이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집중한다. 결국 드라마가 주목하는 것은, 일생에 두 번다시 돌아오지않을 '청춘'과 '사랑'의 소중함에 대한 예찬이다. 이윤정표 드라마에 호불호가 엇갈리는 것은 그 판타지 월드속 인물들의 정서에 얼마나 몰입하고 공감할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하지만 <트리플>에서는 이런 장점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못했다. 오히려 확실한 중심라인과 사건들이 없는 산만한 전개, 일상적 리얼리티의 부재라는 이윤정표 드라마의 약점들만 극명하게 드러난 작품이었다.

 

<트리플>에서는 피겨 스케이팅과 광고업계의 이야기라는 두 가지 무대가 등장한다. 전혀 다른 두 분야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주인공 이정재와 이복동생인 민효린, 그리고 그의 아내인 이하나로 이어지는 삼각관계다.

 

<트리플>은 서로 연관성이 떨어지는 소재와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설득력있게 풀어내는데 실패했다. 이윤정의 전작인 <커피프린스 1호점>이나 올시즌 상반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꽃보다 남자>와의 가장 큰 차이는, 시청자들이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을 만한 세계관과 캐릭터를 창조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트리플>은 무엇보다 캐릭터의 매력이 불확실했다. <트리플>의 러브라인이 실패한 이유는, 캐릭터가 설득력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태(윤계상)과 하루(민효린)의 구애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일방통행이고, 사랑을 받는 쪽인 신활(이정재)와 수인(이하나)는 내내 자신의 진심에 대하여 확신이 없이 오락가락하는 우유부단한 인물들로 등장한다.

 

<꽃남>의 구준표(이민호)나 <커프>의 한결(공유)은 모든 것을 갖춘 백마탄 왕자이면서 자신의 사랑에 대한 주관이 확실한 캐릭터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반면 '저런 남자와 사귀어보고 싶다'는 여심을 자극하는 한결이나 구준표와 달리, 신활(이정재)은 하루(민효린)와 수인(이하나)이 왜 그렇게 절절한 구애를 펼치는지 선뜻 캐릭터의 매력에 공감이 가지 않는 인물이었다. 윤계상이 연기한 현태는 순수한 감정을 빙자한 '스토커'에 가까웠고, 이선균의 해윤은 전작 <커프>의 자기복제에 불과했다.

 

<트리플>은 남매간의 사랑과, 친구의 아내를 유혹하는 남자라는 설정 등으로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았는데, 정작 실제로 살펴보면 사건 전개를 위하여 갈등 자체를 부각시키거나, 애정 묘사 등에서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장면은 거의 없었다. 막장 컨셉트를 흥행공식으로 삼으려는 드라마가 아니었음에도 막장이라는 딱지가 붙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그나마 진짜 막장드라마처럼 욕먹으면서 시청률이 좋았던 것도 아니다.) 시청자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채 그들만의 감정선을 강요하는 '이기적인 러브라인'에 있었다.

 

순정만화적인 드라마의 인기비결은 시청자들의 동경할만한 가상세계를 얼마나 설득력있게 표현하느냐에 달렸다. 그러나 <트리플>에는 시청자를 몰입시킬 만한 요소가 부족했다. 광고업계나 피겨스케이팅의 세계에 대한 묘사는 수박 걽핡기처럼 단편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그나마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모래알처럼 파편화되어 따로 논다.

 

그속에서는 청춘의 열정이 빚어내는 치열함이나 고민이 느껴지지를 않는다. 등장인물들은 내내 뻔한 삼각관계와 감정놀음에만 연연하며 제자리걸음을 반복할뿐, 그안에 현실의 고민은 없다. 결국에는 펼쳐놓은 러브라인을 정리하는데도 급급했던 스토리는, 피겨스케이팅의 화려한 비주얼이나 청춘들의 열정적인 땀방울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하고 어설픈 봉합으로 막을 내리고 만다.

 

<트리플>의 실패는 단지 시청률 경쟁에서만의 참패만이 아니라, 최근 트렌디 드라마들이 지향하는 '순정만화적인 감수성'의 허상을 보여준 결과다. <커프>와 <꽃남>의 성공이 안겨준 부담감 혹은 지나친 교만은 <트리플>의 시행착오를 통하여 대중성과의 소통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남겼다.

 

<트리플>은 드라마가 보여주고자하는 세계관과 시청자들의 생각하는 현실적인 잣대 사이에서 균형을 찾지못하고, 전개구성과 캐릭터 묘사에서부터 오해를 불러일으키며 대중과의 교감에 실패했다. 드라마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판타지였지만, 역설적으로 그 판타지에 설득력을 더하는 것은, 오히려 일상적 리얼리티와 개연성에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보여준 것이 <트리플>이 남긴 교훈이다.


태그:#드라마, #트리플, #이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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