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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장마는 예년에 비해 길다. 언제나 끝나려나? 좀 지겹다. 소강상태를 틈 타 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밭작물이 시들시들하다. 장마 통에 물기를 잔뜩 먹었을 터인데, 따가운 햇볕에는 견디기 힘든 상황인 것 같다. 어디 작물뿐일까! 사람도 지치기는 매한가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한낮에는 햇볕이 따가워 일하기도 힘들다.

 

이웃집 할머니가 밭일을 마치고 우리 집에 들렀다. 일에 지친 기색이 역력하시다. 할머니 표정에서 농촌마을의 고단한 삶이 느껴진다.

 

"날이 왜 이렇게 푹푹 찌지! 시원한 물 있으면 한 사발 주면 좋겠네!"

 

아내가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꺼내온다. 나는 밭에서 누렇게 잘 익은 참외를 따왔다. 할머니가 달게 잡수신다. "이제 살 것 같네!"를 연신 대뇌신다. 몸에서 생기를 되찾는 것 같다.

 

다닥다닥 붙어 달린 토마토

 

할머니는 우리 집에 들르면 텃밭을 시찰하신다. 오늘은 토마토가 화제이다.

 

"올핸 토마토가 장마통에도 무사하네!"

"아녜요. 저번 비바람에 지주가 쓰러지고 난리였지요. 공이 많이 들어간 걸요."

"뭐든 공 안들이면 되는 감! 그래도 올핸 양반이야."

"많이 달려 요즘은 입이 심심하지 않은 걸요."

 

토마토가 숱하게 달렸다. 가지에 올망졸망 붙은 빨간 방울토마토가 꽃이 피어난 것처럼 소담하다. 달린 무게 때문에 열매가 땅에 끌렸다. 주먹만한 찰토마토도 잎 뒤에 다닥다닥 숨었다. 부끄러움을 타는 새색시마냥 얼굴이 붉다.

 

잘 익은 토마토에 생채기가 난 것을 보고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찬다.

 

"식구 적은 집에 토마토가 넘치니 날 짐승들도 냠냠하는구먼!"

"고 녀석들 어떻게 익은 줄 알고 생채기를 내는지! 영물이에요."

"말랑말랑한 것을 찾는 것은 사람보다 더 잘 안다니까!"

 

비둘기 녀석들의 심보가 얄밉다. 날카로운 부리로 콕콕 찍어 예쁜 단장을 한 얼굴에 상처를 냈다. 속상하다. 그래도 죄다 망가뜨리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먹을 만큼만 먹고 주인 몫은 남겨놓은 조화는 뭘까? 녀석들도 염치는 있는 모양이다.

 

방울토마토 하나를 입에 넣으며 할머니가 맛있다는 표정을 지으신다.

 

"이렇게 금방 따먹는 맛, 도회지 사람들은 모를 거야! 이 맛에 힘들어도 농사짓는 거지?"

 

그렇다. 할머니 말마따나 손수 가꾼 밭에서 거둬먹는 토마토 맛이 시장에서 사먹는 것과는 딴판일 것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토마토는 좀 덜 익은 것을 따서 거래한다고 한다. 다 익은 것을 내놓으면 유통기간 동안 아무래도 물러져 상품가치가 떨어진다.

 

그러고 보면 고단하기는 해도 농사꾼이 가장 좋은 것을 먹는다. 우리 토마토밭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토마토... 늘렁감, 일년감, 땅감

 

아내가 소쿠리에 토마토를 따기 시작한다. 얼굴에는 즐거움이 묻어나 있다.

 

우리는 토마토를 넉넉히 심었다. 찰토마토 열 그루, 방울토마토 열 그루가 잘 자랐다. 5월 초순에 옮겨 심은 게 사람 키만큼 훌쩍 커 지금은 한창 붉은 열매를 선사하고 있다. 올해는 키가 너무 커 처음 박은 지주를 이어주었다.

 

여리디 여린 작은 모종을 심고나자 금세 고개를 푹 숙였다. 지주를 세워 묶어주자 며칠 지나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키가 자라면서 곁가지를 치기 시작하였다. 토마토는 겨드랑이에 생기는 곁순을 보이는 데로 잘라 주어야한다. 그래야 튼실한 열매를 기대한다.

 

찰토마토, 방울토마토가 한 소쿠리다. 할머니께 조금 건네자 한사코 손사래를 친다. 할머니 밭에도 토마토가 지천이란다.

 

아내가 할머니께 질문을 던진다.

 

"할머니, 늘렁감이란 말 들어봤어요?"

"늘렁감이 뭐야? 토마토 말하는 거야?"

"우리 고향 전라도에선 예전에 그렇게 불렀지요!"

"거기선 그렇게 불렀나? 여긴 토마토를 일년감이라고도 했는데."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전라도 사투리로 토마토를 '늘렁감'이라 했다. 늘렁늘렁 씹힌다하여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토마토는 '일년감'이라고도 하고, '땅감'이라고 했다. 토마토는 땅에서 나는 한해살이 채소인데다 모양이 감과 비슷하다하여 나온 말일 것이다.

 

토마토는 그냥 먹고, 재워먹고, 갈아먹고

 

아내와 나는 토마토를 무척 좋아한다. 요새 토마토가 넘쳐나니 우리는 입에 토마토를 달고 산다. 밭에서 일을 하다가도 토마토를 따서 먹으면 갈증도 해소하고, 속도 든든하다.

 

영양덩어리인 토마토는 피로회복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알칼리성 식품에다 소화도 잘 된다. 그래서 고기를 먹은 뒤 후식으로 먹으면 중화효과가 훌륭하다고 한다. 소화기계통의 암을 예방하는데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중년 남성에게는 전립선 기능을 향상시키고, 여성에게는 골다공증 예방에 좋다는 주장도 있다. 또 치매를 예방하는 데 좋다고 한다.

 

아내가 소담스럽게 생긴 토마토 꼭지를 하나하나 딴다. 흐르는 물에 씻어 놓으니 윤기가 흐른다.

 

"당신, 찰토마토는 뭐할 거야?"

"꿀에 재워두고, 또 믹서에 갈아먹죠! 방울토마토는 그냥 먹고!"

 

토마토는 설탕에 재워두면 밋밋한 맛에 달콤한 맛이 더해진다. 그런데 토마토와 설탕은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영양 손실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내는 토마토를 나박나박 썰어 꿀에 재워 냉장고에 보관해먹는다. 시원하고 달리단 맛이 아주 일품이다. 꿀에 재워둔 토마토에서 국물이 생기면 그 물을 따라 마신다. 그야말로 꿀맛이다.

 

주방에서 믹서가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아내가 토마토를 가는 모양이다. 믹서에 갈면 텁텁한 토마토 음료가 된다. 여기에 꿀을 몇 숟가락에 넣어 휘저으면 색다른 맛이 난다.

 

아내가 쟁반에 방울토마토, 꿀에 재워둔 토마토, 토마토주스를 담아왔다. 뭐부터 먹을까? 어떤 것을 먹어도 맛이 있을 것 같다. 더위에 지친 여름에 자연의 맛으로 토마토만한 것이 있을까 싶다.


태그:#토마토, #찰토마토, #방울토마토, #늘렁감, #일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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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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