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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빛뜰 마을'에서 김상현 선생과 보낸 하룻밤은 나에게 많은 화두를 던져주었다. 이제까지 농촌은 도시의 보조자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에서 벗어나 농촌이 건전한 정신을 가지고 잘 살아야 도시도 잘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예를 들자면, 지방소도시들은 요즘 관광산업의 일환으로 콘도, 스키장, 골프장, 워터파크 등의 경쟁적 유치와 명분 없는 축제로 난리다. 하지만 대기업이 들어와 장사를 하고 나면 그 수입은 전부 다시 도시로 돌아가고 농촌엔 쓰레기와 오수만 남을 뿐이다. 이런 지역개발과 축제는 지역민들에게 아무런 행복도 소득도 안겨주지 못하는 절름발이 사업일 뿐이다.

 

그러나 사고를 전환하여 농촌에 농업체험장과 생태공원, 산책로, 민박 등을 활성화하여 도시인들이 진짜 사람답게 사는 농촌의 모습을 느끼고 배우면서도 농민들에게는 소득으로 전화되어 다시 찾고 싶은 시골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배웠다.

                      

특히, 소양호 둘레 400KM를 잇는 산책로인 '수레 길'을 만들겠다는 김 선생의 계획과 아침에 산책을 하면 1년 더 살 수 있다는 획기적인 가치제안을 한 '1011 1년 길'의 경우 대단한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산책과 감자 점심을 마친 우리 가족은 김 선생 부부에게 인사를 드리고 남이(南怡)섬으로 이동했다. 북산면에서 1시간을 넘게 차를 달려 당도한 남이섬은 생각보다 멀었다.

                         

섬은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에 있지만, 길은 가평 쪽에서 접근이 가능한 관계로 돈은 가평이 전부 벌어갈 것 같아 보이는 남이섬 전용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입장권을 구입했다. 어른 2명에 아이 한 명, 2만 원이다. 이곳에서 배를 3~4분 정도 타고 섬으로 들어간다.

 

남이섬 주차장의 주차비는 1일 4천 원을 받는데, 섬에서 숙박을 하거나 식사를 할 계획이 없다면 인근 식당에 주차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보통 가족단위식사를 하는 조건이면 주차비는 무료이기 때문이다.

                

남이섬은 원래는 홍수 때에만 섬으로 고립되었으나, 청평댐의 건설로 완전한 섬을 이루게 된다. 조선 세조 때 병조판서를 지내다 유자광의 모함으로 역적으로 몰려 28살에 요절한 남이장군의 묘소로 추정되는 돌무덤이 있는 것에 연유하여 남이섬이라 부르게 되었다. 

 

총면적은 14여만 평에 이르며, 하중도 가운데에서는 큰 섬이다. 넓은 잔디밭과 둘레에 밤나무 숲이 무성하고, 별장, 방갈로, 수영장, 갤러리, 전시관, 안데르센 홀, 유니세프 홀, 박물관 등의 시설이 잘 정비되어 있으며, 운치 있는 숲길이 좋다.

        

1970~80년대에는 젊음의 상징인 '강변가요제'가 열렸고, 80년대에는 영화 '겨울나그네' 의 촬영무대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한류 드라마 '겨울연가'로 더 유명해지면서 추억에 젖은 40~50대 중년층에서부터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젊은 연인들, 한류에 취한 외국인들까지 다양하게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런 남이섬이 지난 2006년 3월, '나미나라공화국(Naminara Republic)'으로 독립선언을 했다. 관광 마케팅 기법 중에 하나인 국가개념 표방으로 특수 관광지로서의 독자적인 외교와 문화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래서 인지 일본에 대사관을 내었다는 현수막이 입구에 걸려있다.

           

나미나라공화국은 인기드라마의 후광에 힘입어 세계적 규모의 국제행사 유치와 실행을 통하여 문화와 자연환경이 어우러진 복합문화관광휴양지로의 도약을 시작한 듯하다.

 

나미나라는 꿈을 잃어가고 있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참신한 문화적 충격을 주고, 한국관광문화를 리드해 가기 위해 동화나라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여행자와 어린들에게 진정한 꿈의 의미를 나누자는 뜻이라고 한다.

        

아울러 공화국은 내각책임제를 적용하고 있으며. 여권과 화폐, 우표, 전화카드도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인지 내가 찾은 남이섬에는 남이장군이 계시지 않았다. 사실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남이장군의 묘는 경기도기념물 제13호로 지정된,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에 있는 남이장군 묘이다.

 

역모로 죽은 남이장군의 장례를 지낼 사람이 없어, 백성들은 비슷한 시체를 뿔뿔이 갈라 3곳에 장사를 지내게 된다. 따라서 실제로 남이가 어디에 묻혔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남이섬에도 남이가 묻혔다는 전설이 있는 돌무더기가 있다.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는 돌무덤 위의 돌을 함부로 가져가면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왔다. 섬을 유원지로 개발하면서 돌무더기 위에 흙을 덮어 봉분을 만들어 지금은 그 둘레가 잘 치장되어있다.

      

섬에 입장한 우리 가족은 크게 섬을 한 바퀴 돌았다. 밤나무길, 자작나무길, 잣나무길, 메타세콰이어길 등을 전부 걸었다. 집사람은 주로 사진을 찍고 나는 연우랑 산책을 하다가 어린이용 전동자동차를 30분에 9천 원의 사용료를 물고 빌려 섬을 일주했다. 연우가 자동차 운전에 재미를 느껴서인지 내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섬을 둘러볼 수 있어 좋았다.

          

연우가 무척 좋아하기는 했지만, 내가 느낀 남이섬은 정말 고요함과 아늑함이 좋았던 예전의 남이섬과는 다른 나미나라공화국이었다. 각종 재활용 자재를 이용하여 동화나라를 만들었다는 환상의 섬 나미나라, 나에겐 남이는 어디 가고 나미만 남아있는 쓸쓸하고 허무한 공화국 일 뿐이었다. 나는 이곳을 집사람이랑 연우랑 그냥 걷고 타고 놀았다. 그저 아무생각도 없이.

       

우리 가족은 2시간 넘게 남이섬을 둘러보고는 서울로 돌아가자는 결정을 했다. 어린 연우는 전동자동차를 좀 더 타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피곤했다.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는 핑계를 대고 배를 타는 곳으로 향했다.

         

나오는 길에 남이섬에 왔으면, 남이장군 묘소에는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도를 살펴보니 선착장 인근에 묘소가 있어 찾아 갔다. 사진을 한 장 찍고, 연우랑 간단하게 묵념을 하고 돌아 나왔다. 출구 인근의 매점에서 연우랑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서 맛있게 먹고, 집사람은 커피를 한 잔 했다.

       

배를 타고 나와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서, 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서울 가는 길도 온통 주차장이다. 이러다간 저녁 10시나 되어야 집에 당도할 것 같다. 쓸쓸한 관광지 남의 나라(?)에서 보낸 오후시간 때문인지 차는 밀리고 더욱 피곤하다. 

     


태그:#춘천 남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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