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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말도 있지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던 남녀가 만나 살아가면서 싸움을 하지 않고 살아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육아와 시집 문제,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원치 않게 부딪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쉽지 않은 부부싸움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화해의 기술을 신혼부부, 결혼10년차 부부, 28년차 부부의 삶을 통해 들여다 봤습니다. [편집자말]
강화도 고려산의 진달래 동산을 배경으로 한 컷, 우리 부부의 모습이다.
 강화도 고려산의 진달래 동산을 배경으로 한 컷, 우리 부부의 모습이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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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란 글자에 점 하나 찍으면 '남'이라 잖은가? 가깝지만 멀고, 먼 것 같으면서도 제일 가까운 사이, 부부란 참 묘한 사이다. 예전에 어른들이 "니들도 나이 먹어봐라. 다 친구처럼 정으로 사는 게 부부란다"라고 판에 박힌 말들을 조언이랍시고 해줄 때는 "그런 게 어디 있느냐. 이렇게 알콩달콩 좋은데 무슨 소리냐"고 속으로 코웃음을 쳤더랬다.

어언 28년 동안 살 비비고 살다보니, 그때 어른들의 너스레가 공언(空言)만은 아니란 게 지금의 부부에 대한 내 생각이다. 부부 사이가 처음에는 장작불 같다. 그러다 숯불이 되더니만, 세월의 덫에 걸려 짚불로 변하고, 결혼생활 30여년을 바라보는 지금은 하나의 작은 촛불이 되었다.

부부싸움 안한다던 친구, 이혼은 왜?

혹 지나던 바람 한 오라기 날아와 촛불을 끄면 어쩌나 하는 심정이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그리 쉬 촛불이 꺼지지 않고 여전히 불타고 있다는 거다. 그 빛이 사위지 않아 '가족'이라는 이름의 정원에 '가정'이라는 꽃을 피우고 있으니 행복하다. 아마 내가 들인 공과 아내가 들인 공이 작은 촛불 하나 밝힐 만은 한가 보다.

"부부싸움? 우린 그런 거 안 키워."

야무지게 도리질을 하던 친구 생각이 난다. 누가 봐도 안 싸울 것 같은 부부였다. 그러나 몇 해 전 이혼하고 말았다. 안 싸우는 부부가 왜 이혼을 했을까? 지금 생각해도 그게 이해가 안 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늘 싸우며 토닥거리는 부부보다 안 싸운다고 장담하는 부부가 더 위험하다.

그건 아마 싸우며 정든다는 말이 맞기 때문인가 보다. 부부야말로 정말 싸우면서 정 드는 사이다. 대부분 30여년을 딴 세상에서 살다가 만났는데 의견이 같을 수가 없다. 내가 맛있다고 하는 반찬이 아내에겐 짜다. 내가 들큼하다며 꺼리는 반찬이 아내에겐 맛있다. 그건 순전히 각자의 어머니들께서 길들여놓은 맛이다. 반찬 하나만 해도 이런데 부부생활이 그리 만만하겠는가. 그러니 당연히 다투게 된다.

미처 몰랐다, 고부 사이에서 남자란...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중에 한 장면. 부부사이는 싸우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지만 어떻게 화해하느냐의 기술이 더 필요하다. 지금이 첫 부부싸움 때라면, 어머니에게 가서 어머니 편을 들고, 아내에게 가서는 아내 편을 들었을 텐데.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중에 한 장면. 부부사이는 싸우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지만 어떻게 화해하느냐의 기술이 더 필요하다. 지금이 첫 부부싸움 때라면, 어머니에게 가서 어머니 편을 들고, 아내에게 가서는 아내 편을 들었을 텐데.
ⓒ 삼호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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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한 달을 갓 넘겼을 때 일이라고 기억된다. 좀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 아내가 궁색하게 살림을 하는 시어머니의 눈에는 아끼지 않는 헤픈 며느리였나 보다. 아내가 음식 남은 것을 뜨물통에 넣었을 때의 일이다. 얼마나 어머니가 역정을 내시던지.

"넌 그리 살림을 헤프게 해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 아껴야 살지. 없는 살림에 그렇게 마구 버려서 어떻게 하냐?"
"……"

그냥 거기까지만 하셨어도 괜찮은데, 지나던 고양이가 아내가 뜨물통에 넣다 흘린 음식물 찌꺼기를 먹었던 모양이다. 이어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에구, 말 못하는 고양이만도 못허니 원!"
"??"

여자는 남자하기 나름인데. 난 그때 그런 기술이 없었던 남자라, 글쎄 이러고 말았다.

"이 사람아, 그런 걸 그렇게 버리면 어떡해. 어머니 말씀이 맞아."
"뭐가 어머니가 맞아요? 먹을 수 없는 음식찌꺼기 버렸다고 고양이만도 못하다니? 그게 맞는 말이에요? 그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할 말씀이에요?"

헤픈 게 맞는단 말인가, 고양이만도 못 한 게 맞는단 말인가. 아뿔싸! 이젠 수습이 안 되는 차원까지 이르렀다. 우리는 한참을 티격태격했다. 아내는 방안에 들어와 '엉엉' 울었다. 어머니께서 외출하신 다음 날, 아내는 이내 가방을 싸들고 친정으로 가버렸다. 그때에야 그게 바로 그 유명한 '고부갈등'이란 걸 알았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 그렇게 묘하고, 신비하고, 멀고, 고단하고, 암울하고, 신기하고, 씁쓸하고, 짭짤한 거리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그 사이에 던져진 남편이란 남자, 그렇게 뻘쭘하고, 싱겁고, 쓸모없고, 쓰잘데기 없는 남자인 줄 그때야 알았다.

며칠이 지난 날, 못 이기는 척하고 처가로 달려가 살살 달래 아내를 데려오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벌써 28년 전 얘기라니. 이후에도 이런저런 의견충돌이 있었고, 우리부부는 그럴 때마다 소위 '부부싸움'이란 걸 했다. 이젠 그 진한 부부싸움의 횟수조차도 헤아리기가 힘들다.

보따리 몇 번 싸던 아내 마음을 돌린 비결

그러나 다투는 게 문제가 아니라 다툰 이후가 더 문제라는 걸 터득하는 데는 꽤 긴 시간이 흘렀다. 부부사이는 싸우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지만 어떻게 화해하느냐의 기술이 더 필요하다. 지금이 첫 부부싸움 때라면, 어머니에게 가서 어머니 편을 들고, 아내에게 가서는 아내 편을 들었을 텐데.

몇 번 보따리를 쌌던 아내도 아무리 부부싸움을 해도 언제부턴가는 보따리를 싸 친정으로 달려가는 일은 없어졌다. 일단 화가 나 부부싸움을 하고 나면 침실을 벗어나 서재에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나도 언제부턴가는 침실을 벗어나지 않는다. 나름대로 쉽게 화를 푸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우리부부 같은 경우 대부분은 나의 급한 성질머리 때문에 부부싸움이 벌어지는지라, 화해도 성질이 한 풀 꺾인 내 측에서 먼저 시도한다. 온갖 교태(?)를 부린다. '사랑한다. 난 아무리 싸워도 당신밖에 없다. 난 싸워도 당신이 제일 예쁘다. 내가 죽을죄를 졌다. 주님도 용서해 줬는데 용서해 줘야 하지 않겠느냐?' 등등의 언어가 내가 내뱉는 언어들이다.

어찌 나만 잘못하겠는가? 하지만 난 일단 화해의 일선에 나섰으면 무조건 잘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무조건 껴안는다. 물론 아내의 뿌리침이 매섭다. 그래도 껴안을 수 있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반면 아내는 '난 싸우면 죽이도록 밉다. 싸웠는데 뭐가 사랑이냐? 사랑한다면 싸울 거리를 만들지 말라. 난 주님이 아니다' 등등의 언어로 여전히 쏘아붙인다. 하지만 이러는 사이 우리 둘은 그 싸움의 늪에서 나온다. 나는 금방, 아내는 서서히.

싸움의 흔적이 사랑의 흔적으로 바뀌려면... 붙어있어라

가정 전문 저술가인 더글라스 윌슨(Douglas Wilson)은 결혼 초에 부부가 하나 되기 위한 가정규칙을 만들어 실천했는데, 그 결과 가정에서의 많은 충돌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규칙 중에 첫 규칙은 이렇다.

"부부사이에 발생한 문제가 해결되기까지는 부부가 떨어져 있지 않는다."

그런데 이 원리는 이미 성경에 제시된 원리다. 성경 고린도전서 7장 5절은 이렇게 충고한다.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좀 다른 의미를 담은 말씀이지만 난 철저히 이 규칙을 지킨다. 아무리 과한 부부싸움을 한 경우에라도 따로 방을 쓰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대화가 되고, 싸움의 흔적이 사랑의 흔적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일단 떨어지면 다가가기 힘드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보기 싫어도 함께 있어라' 이게 우리의 부부싸움 화해 비결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앤조이 세종뉴스 등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부부싸움,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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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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