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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는 논길을 따라 매일 아침저녁으로 자전거 운동을 하신다. 20년만에 자전거의 진가를 재발견하신 아버지.
 아버지는 논길을 따라 매일 아침저녁으로 자전거 운동을 하신다. 20년만에 자전거의 진가를 재발견하신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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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자전거를 짐자전거와 신사용으로만 나누던 시절이 있었지요. 바퀴 굵은 MTB가 나올 줄을 누가 알았겠어요? 우리 시골에서는 주로 '무식한' 짐자전거를 많이 탔지요. 시내에 좀 사는 아이들은 신사용 자전거를 탔구요. 좀더 발전한 케이스는 5~6단 기어를 신사용 자전거에 부착하는, 당시에는 '획기적인' 장치도 있었구요.

시골 아버지도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니셨습니다. 논에 물대러 갈 때는 삽을 페달 사이에 기막히게 가로로 끼워 타고 다니시곤 했지요. 누구나 그런 추억은 있을 겁니다. 그러다가 오토바이, 트럭 등이 나왔고 이제는 시골의 70, 80 어르신 내외도 휴대폰을 갖고 계시는 그런 시대가 됐습니다.

아버지와 자전거는 그런 추억 속 그림인 줄만 알았습니다. 80년대 말부터 오토바이를 타시면서 그 후 약 20년 동안 자전거 타시는 모습을 통 볼 수가 없었거든요. 시골 집에 자전거도 없거니와 있다 하더라도 쓸 일이 없었던 것이죠.

그러다가 지난해 막내 동생이 시골집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아침 저녁으로 운동이나 하라고 자전거 한 대를 사준 적이 있습니다. 예상 외 지출이니 부담이 되는 거죠. 그런데 처음에 몇 번 타다가 동생은 거의 포기를 했더군요. 아침저녁으로 운동하는 게 사실 쉽지는 않거든요. 그동안 시골 가면 제가 사준 새 자전거가 비 맞아 녹이 스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웠습니다. 괜히 사줬다 싶기도 했구요.

 20년전에는 자전거에 삽을 꽂고 논일을 보러 다니셨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20년전에는 자전거에 삽을 꽂고 논일을 보러 다니셨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 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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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길, 냇가 뚝방길 따라 아버지는 달린다, 운동 된다며 무척 흡족해 하신다

그런데 이번에 시골 가서 아버지께서 그 자전거를 타시는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올해 72세 적지 않은 연세입니다. 평생 농사일만 하시느라 허리 한번 펴기 힘들 정도로 사시사철 농사일에 묻혀 사시는 분이죠. 그런데 자전거로 운동을 시작하신 겁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논길을 따라 냇가 뚝방길을 돌아 약 3~4km 씩 자전거를 타십니다. 새벽에 소 여물해주고 나서 6시 반경과 저녁때 역시 소여물 주고 나서 7시부터 한바퀴 '나름 자전거 도로'를 따라 운동을 하십니다. 검은 고무신 신고 말이죠.

처음에는 다리, 허벅지 등이 많이 아파 힘들었다 하시더군요. 계속 타다 보니 다리에 힘도 생기고 몸도 가뿐하다고 하십니다. 전에는 일하고 자면 끙끙 앓는 소리 했는데 자전거 탄 이후로는 가뿐하게 일어난다고요.

자전거 기어 변경할 줄 몰라 멈춰 서서 손으로 기어 옮기는 아버지

그런데 참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데요. 아버지는 그동안 앞뒤 바퀴 기어를 조정할 줄 모르셨던 겁니다. 핸들 손잡이에 기어 조정하는 게 붙어 있는데 그게 그냥 자전거 손잡이인 줄 알았지 기어 조정 레버인지는 전혀 몰랐던 겁니다. 그래서 아랫집 아저씨(거의 팔순)와 의논하면서(?) 앞 뒷바퀴 기어를 쪼그리고 앉아 손으로 옮겼다고 하시네요. 또 안장이 높아서 조정해보려고 시도도 해봤는데 무조건 공구로 풀려고만 했으니 조정이 안 되는 거지요. 요즘 자전거는 손으로 안장 높이를 조정하지 않습니까?

20년 동안 자전거 기능이 얼마나 최첨단화 됐습니까? 단순한 이동수단 혹은 스포츠 레저를 넘어 '자전거 산업'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 규모가 커져가고 있지요. 이런 시대적 변화와 트렌드를 시골 어른들은 당연히 따라가지 못한 겁니다. 새로운 변화에 대한 경험이 없으니 모르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요.

그래서 이번에 안장 조정하는 것이나 앞뒤 기어 조정하는 것을 자세히 알려드렸습니다. 알려드린 대로 자전거를 타보시더니 언덕길도 가뜬히 올라갈 수 있다며 매우 흡족해하며 신기해 하시더군요. 아침저녁으로 운동도 많이 할 수 있어 좋다고 하시구요.

20년만에 자전거 '재발견' 하신 아버지, 자전거는 어떤 의미일까?

아버지에게 있어 자전거는 복장과 장비 제대로 갖춰 타는 젊은이들처럼 전문적인 레포츠, 여가 활용수단은 아닙니다. 고작 논길, 뚝방길이나 달리는 정도의 취미, 운동입니다. 하지만 또 한편 아버지에게 있어 자전거는 새로운 삶의 '재미'나 '재발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자전거 존재는 알고 계셨으니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최초 경험 때와는 그 차원이 다르므로 거창하게 '재발견'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 여생에 있어 대단히 큰 것을 안겨드렸다고 해야 할까요? 굳이 표현하자면 그렇습니다.

제 지인 중에 40대 가장이 있는데 자전거를 못탑니다. 한번도 타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타려고 시도조차 안하고 세살배기 딸이 태워달라고 졸라도 못태워주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는데 올해 72세 아버지의 '자전거 사랑' 모습을 보면서 왜 그리 그 지인 생각이 나는지요?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아니, 남녀노소 굳이 구분할 것 없이 나름대로의 현실에 맞는 취미나 자신만의 생활을 갖고 그것에 매력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 참 뿌듯한 일 아닐까요?

아버지 보면서 느낀 것입니다.

 핸들 손잡이에 기어 조정 레버가 숨어 있을 줄 아버지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세월이 아버지를 비껴가지 못한 것이다.
 핸들 손잡이에 기어 조정 레버가 숨어 있을 줄 아버지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세월이 아버지를 비껴가지 못한 것이다.
ⓒ 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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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저녁으로 이 길을 자전거 타고 다니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난다.
 아침저녁으로 이 길을 자전거 타고 다니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난다.
ⓒ 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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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 함께 올립니다.



#아버지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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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통과 대화를 좋아하는 새롬이아빠 윤태(문)입니다. 현재 4차원 놀이터 관리소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착한노예를 만드는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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