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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연재는 기사와는 다르게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필자는 고민 끝에 강조하고는 싶지만 다소 무겁고 고리타분한 '낙안군'이라는 소재 옆에 그것을 희석시켜 줄 현대적 의미의 '스쿠터'라는 것을 연재 속으로 끄집어 들였다.

 

그런데 독자에게 선보이기도 전에 벌써 주위에서는 걱정의 목소리가 들린다. "'두툼한 바퀴, 미끈하게 빠진 몸매, 둔탁한 굉음소리의 멋진 스쿠터'를 기대할 텐데 촌티 흐르는 중고 스쿠터가 그 자리를 대신하면 역사얘기와 더불어 더욱 칙칙해질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다.

 

보는 눈은 같은지 필자가 봐도 좀 그렇긴 하다. 연재를 살려보겠다는 일념으로 출연시킨 스쿠터가 오히려 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까지 덜컥 내려앉는다. 엔진 성능이야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니까 다행이지만 오랜 세월의 흔적을 몽땅 뒤집어써 바랜 색깔하며 장바구니, 짐칸 등은 한 마디로 예상한 그림은 아니다.

 

"그냥 낙안군 101가지 이야기"로 할 걸 괜히 흥밋거리를 가미한다고 '스쿠터'를 집어넣었다가 낭패 아닌 낭패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엎질러진 물, 비록 낡고 볼품은 없지만 작년 자전거에 비하면 양반이요, 낙안군 101가지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동반자다.

 

더구나 많은 사람 중에서도 뜻에 적극 호응해주고 기꺼이 자신이 타던 스쿠터까지 내 준 후원인의 마음을 생각하면 귀 얇게 흔들릴 문제는 아닌 듯싶다. 엄격히 따지면 그냥 스쿠터 타고 돌아본다고 했을 뿐 최신식 스쿠터 타고 돌아본다고 안했으니 필자가 독자의 실망감을 책임져야 할 이유는 적을 듯싶다.

 

아무튼, 지난 26일, 스쿠터와 첫 대면을 하고 시험운행도 해 볼 겸 동네를 몇 바퀴 돌아봤다. 외모가 좀 누추해서 그렇지 전혀 손색없는 힘을 자랑하고 있었다. 곧바로 앞으로 101가지 얘기의 소재가 될 낙안군을 가장 넓게 보기 위해 금전산 중턱으로 향했다.

 

옛 낙안군의 중심지역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있고 남쪽으로는 벌교포구와 여자만이 맞닿아있는 분지와 같은 형태다. 그 안에 옛 치소였던 낙안읍성이 있고 그 주위는 넓은 들판인데 10년도 넘은 일이지만 애국가를 연주할 때 배경화면으로 나왔었다고 아직도 주민들이 자랑거리로 삼고 있는 곳이다.

 

지금은 보성군으로 편입됐지만 벌교지역도 훤히 보일 정도로 가깝고 내려다보면 이렇듯 평온한데 세 곳으로 쪼개놓고 한 형제나 다름없는 지역민들을 인근 시, 군으로 분산 수용시켜놨다는 것은 역사적 의문이다.

 

물론 일제강점기 때는 이 지역이 항일정신이 강하고 동학운동이 심해 벌교를 침략의 거점도시로 만들면서 강제 분산 시켰다고 하는데 입장 바꿔 생각하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지만 해방 이후에도 지금까지 지역민의 고통은 뒤로한 채 100년 넘게 아무런 고민 없이 그냥 방치해 놓은 것은 동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사실, 필자도 이 지역에 와서 최초로 가진 의문점은 이런 것들이었다, "왜 이 사람들은 불편하게 30킬로미터씩이나 떨어진 순천과 보성과 고흥에 나가서 행정 일을 볼까?", "왜 낙안, 벌교, 동강 사람들은 순천 보성 고흥에 나가면 촌놈이라는 등, 지명 뒤에 '놈'이라는 글자가 붙을까?", "왜 이 지역은 몰락하고 있는데 누구하나 제대로 신경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까?" 

 

이후, 얻은 해답은 바로 '낙안군 폐군'이었다. "아하, 집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30킬로미터씩이나 떨어진 곳에 가서 셋방살이를 하고 있구나", "아하, 남의집살이 하고 있으니 주인 애들이 놈이라고 깔보고 있구나", "역시, 셋방 사는 사람들에게 가족처럼 신경이나 관심을 써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리구나" 하는 생각들이었다.

 

이번 연재의 '낙안군 101가지의 이야기'는 그런 불합리를 맞춰보는 퍼즐과도 같다. 101년 전까지 한 조상을 모시던 한 가족인 낙안, 벌교, 동강 등이 지금은 순천시 낙안으로, 보성군 벌교로, 고흥군 동강으로 남의 식구가 돼 있는 현실을 현대에 와서 다시 돌려 맞춰 보면 맞아 떨어지는 색깔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는 '생각의 101가지 모음집'이다.

 

지난 1908년 10월 15일 칙령 제72호에 의한 '낙안군 폐군 사건'은 이 지역 한(恨)의 시작이었고 10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한(恨)은 살아 움직이고 있다. 낙안의 금전산 중턱에서 연재 시작의 첫 발걸음을 떼면서 "왜 지금까지 치유되지 않고 있는지"를 고민하는 건 필자의 몫이며 팔자다. 다만, 얼떨결에 출연해서 괜히 핀잔맞고 있는 중고 스쿠터는 심히 유감이다.

 

아무튼 기대감에 부응치 못하고 분위기 어색한 '스쿠터'를 등장시켜 향후 독자 감소는 필연적이겠지만 필자도 이런 칙칙한 분위기를 연출하지 않기 위해 연재 기획 단계에서 스쿠터 앞에 '최신식'이라는 단어를 달아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었다는 점만은 알아주길 바라는 심정이다.

 

누군들 명색이 취재하러 다니면서 '개장사 아저씨' 같다는 얘기를 듣고 싶겠는가? 하지만 기왕 이렇게 된 이상 독자께서는 겉모습에 휘둘리지 말고 "낙안군이 뭔가?"라는 내용 속으로만 빨려 들어왔으면 하고 부탁을 드리고 싶다.

 

낙안군과 낙안군 폐군(廢郡)
현재의 순천시 외서면을 비롯해 낙안면, 별량면 일부, 보성군 벌교읍 그리고 고흥군 동강면, 대서면 일부의 땅은 옛 낙안군이었다. 하지만 101년 전인 지난 1908년 10월 15일, 일제는 항일투쟁무력화, 동학혁명진원지분산, 침략거점도시화를 위해 낙안군 자체를 없애버리고 주민들을 인근 지역 세곳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덧붙이는 글 | [09-003]예고: 빼앗긴 낙안군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낙안군, #스쿠터, #남도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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