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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의회에서 국회의원들이 폭력을 이용해 미디어법을 처리한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수준 이하의 행동에 그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독일 의회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독일 라인란트팔트주 뮐하임 쾨얼리히에서 사는 쾨터 미셀(45), 장은숙(45) 부부가 이구동성으로 한말이다. 이들 부부는 외동딸 쾨터 하나(12) 양과 함께 휴가차 한국에 머무르고 있다. 미셀과 부인 장씨는 독일건설농업환경노동조합에서 전임자로 활동하면서 노동법원 노동명예판사직을 수행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한국의 노동운동과 독일의 노동운동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독일은 완전한 산별체제 노동조합입니다. 한국은 기업별 노동조합이지요. 150여년의 역사를 가진 독일의 산별노조는 사업주에서 돈을 지원 받은 것이 없고, 전임자 인건비를 비롯해 활동비용을 모두 조합 자체에서 해결을 합니다. 그래서 사용자로부터 재정으로서의 독립성과 활동의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지요. 한국 같은 기업별 체제에서는 노조 전임자 인건비 등을 사용자 측에서 부담하고 있는 것과 사뭇 다릅니다. 바로 기업별 노조의 한계입니다. 한국의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제대로 된 산별노조를 만드는데 혼신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독일은 노동운동을 할 수 있는 근거를 헌법에 명시한 '단결권' 외에 어떤 법이나 규정으로 정하지 않고 있다. 첨예한 대립적 사안인 경우 판례를 준용하고 있다.

 

"한국은 헌법 외에도 노동법,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등 노동자를 규제하는 많은 법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독일은 노사가 단체협약을 맺어 노동부 장관에게 허가를 받으면 곧 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닙니다. 한국처럼 정부가 나서 최저임금을 제한 한다든지, 임금 가이드라인을 설정한다든지 등의 그런 일은 없습니다. 이런 사안은 노사단체협약으로 맺을 사항이고 정부가 일체 개입을 하지 않습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이들 부부가 맡고 있는 노동법원 노동명예판사가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한국은 노동법원이 없지요. 정부 기구인 중앙노동위원회나 지방노동위원회가 그 역할을 맡거나 더 억울하면 일반법원에 소를 제기해 판결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독일은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부당해고, 체불임금 등 노사문제를 노동법원에서 결정을 합니다. 재판에 들어가기 전에 직업판사에 의해 화해절차를 거칩니다. 만약 화해가 안 될 경우 재판을 진행하게 되지요. 재판 진행과정에서도 화해를 위해 노력합니다. 화해가 되면 그 자체가 법적 효력을 지닙니다. 하지만 화해가 안 돼 재판에 들어가면 배심원인 직업판사, 사측명예판사, 노측명예판사 등 세 사람이 논의해 다수결로 결정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일반법원의 명예배심원과 노동법원의 명예배심원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일반법원 명예배심원은 의견만 개진을 합니다. 하지만 노동법원에서는 명예배심원이 직업판사와 함께 판결해 참여하고 동일한 결정권을 행사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우리 비정규직 문제로 화두를 돌렸다.

 

"독일에서는 특별한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에 대한 정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인식된 정규직을 정의하는 방식은 한 사용자 밑에서 전일근로를 하면서 근로기간이 정해지지 않는 노동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는 국가 책임지는 사회보험제도의 혜택을 받고 있지요. 하지만 월평균 400유로 이하를 받은 가정주부 등 과소근로자는 사회보험혜택을 받지 못합니다. 임금생활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편 통해 사회보험이 가입돼 있기도 하구요. 굳이 이들을 얘기하라면 비정규직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해결방법도 제시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든, 사용자든 현행 비정규직법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을 엄격하게 적용해 처벌해야 합니다. 비정규직으로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한다는 조항 때문에 그 이전에 해고를 시키는 사용자들을 처벌해야 합니다. 그리고 해고를 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끈기가 필요합니다. 적극적인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행사해야 함부로 해고되는 일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2일 국회에서 재벌의 신문과 방송 겸영을 합법화한 미디어법에 대해 "한쪽 방향으로 여론을 몰아갈 수 있는 조작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라면서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장씨는 쌍용자동차노조 쟁의 행위 보도를 불법으로 규정한 한 보수신문의 보도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며칠 전 한 보수신문을 보니 쌍용자동차노조의 투쟁을 불법으로 규정했습니다. 노동자들이 합법 파업이라고 하고 있는 데 언론이 사용자 측에 편승한 것과 같이 '불법으로 규정'해 기사를 쓰고 있는 것은 잘못된 보도입니다. 노동조합은 합법이라고 하고, 사용자는 불법이라면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데, 언론이 한쪽을 불법으로 규정하면 말이 안 되는 것이지요. 재판에 서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감히 불법이라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미셀부부의 인터뷰를 끝까지 곁에 지켜보았던 딸 하나가 한국에 와 가장 인상적인 문화현상과 맛있는 음식을 꼬집기도 했다.

 

"민속촌과 한옥마을이 가장 인상에 남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왕갈비 맛이 일품입니다. 어머니의 고향 언어인 한국말을 못해 안타깝습니다. 특히 한국어에는 존댓말이 있어, 언어에도 차이가 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코블렌쯔시에 있는 막스 폰 라우어 긴나지움(학교) 7학년에 재학 중인 괴터 하나 양의 괴터는 아버지의 성을, 이름은 어머니의 모국어인 한국어로 지었다.

 

이들 가족은 현재 장씨의 친정인 인천시 주안동에 머물고 있다. 오는 8월 1일 휴가를 마치고 독일로 향한다. 장씨는 독일 노동문제 전문가로 한국중앙노동위원회와 노동연구원의 의뢰로 독일의 노동법원, 사회보험, 노사관계 등의 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미셀은 독일의 16개주 중 헷센주 독일건설농업환경노동조합에서, 장씨는 라인란트팔트주 독일건설농업환경노동조합에서 각각 전임상근자로 활동하고 있다.


태그:#독일 건설농업환경노동조합, # 괴터 미셀, # 장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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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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