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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요오~~" 괴조음(怪鳥音)과 엄지손가락으로 코끝을 튕기는 그 독특한 제스처까지 이소룡(李小龍)의 몸짓과 음성 하나하나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여전히 하나의 문화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1970년대 초 죽의장막에 둘러싸인 중국을 대신하여 서양인에게 먼저 중국무술의 위대한 계승자로서 쿵푸(功夫)를 알리고 동양의 이미지를 새롭게 각인시켰던 이소룡은 그래서 중국인들에게 더욱 각별하고 관우(關羽)와 악비(岳飛)에 못지않은 위대한 영웅으로 자리 잡고 있다.

1978년 개혁개방의 기치 하에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덩샤오핑의 실용주의는 이소룡의 절권도(截拳道) 철학과 여러 면에서 닮아 있다. 수단과 방법 가릴 것 없이 국민을 행복하게만 하면 된다는 중국식 마키아벨리즘이 흑묘백묘론식 실용주의라면 이소룡의 무술 역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실전에서 싸워 이길 수 있는, 그야말로 물 불 안 가리는 마키아벨리즘 무술이다.

괴음과 함께 준비 동작 없이 바로 공격에 들어가는 이소룡의 매력은 지금 봐도 매력적이다.
▲ 영화 <용쟁호투> 속의 이소룡 괴음과 함께 준비 동작 없이 바로 공격에 들어가는 이소룡의 매력은 지금 봐도 매력적이다.
ⓒ <용쟁호투> 영화제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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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대형(唐山大兄)><정무문(精武門)><맹룡과강(猛龍過江)>, 용쟁호투(龍爭虎鬪)> 4편의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소룡의 완벽한 근육과 무예, 절대적인 카리스마는 할리우드는 물론 전 세계의 관객을 그의 팬으로 만들기에 충분했으며 그를 패러디한 다양한 콘텐츠로 재생산되어 유행을 지나 가히 고전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이를 만하다.

1973년 7월 20일, 갑작스런 32살 이소룡의 젊은 죽음은 그래서 더욱 세인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였으며 그의 사인을 둘러싼 논란은 약물 과민반응설, 살해설, 자살설, 복상사설 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세간에 화제를 몰고 왔다.

중화민족주의의 강화를 위해 '영웅 만들기'에 눈에 불을 켠 중국이 세계적으로 통하는 아이콘인 이소룡을 가만히 둘 리 없다. 2008년 드라마 <이소룡전기(李小龍傳奇)>를 제작 방영한 데 이어 올해는 사망 36주년 기념 이소룡소장품 전시회를 홍콩에서 열었다.

그리고 2010년 11월 27일, 탄생 70주년에 맞춰 영화 <이소룡> 3부작(홍콩에서의 소년기, 미국에서의 청년기, 영화배우시기)을 개봉하겠다며 촬영 계획을 발표했다.

영화 <뮬란><쿵후팬더> 등 중국적인 문화원류들이 할리우드에 선점되어 콘텐츠로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 어쩔 수 없는 무력감과 자괴감을 갖고 있던 중국영화계에서 이소룡아이콘을 선점하여 상품화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읽힌다.

'이소룡은 모든 중국인의 자랑이며 영원히 죽지 않는다(李小龙是全球华人的骄傲, 永远不会死)!'는 중국 네티즌의 반응처럼 이소룡은 세대와 국경을 뛰어넘는 이월적 가치를 지니고 영원히 죽지 않는 살아 있는 전설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유작이 된 <사망유희(死亡游戱)>를 미완으로 남기고 홀연히 세상을 뜬 이소룡! 어쩌면 그는 자신의 미완의 영화를 남겨진 사람들의 추억과 끊임없는 재생산으로 완성하려고 처음부터 기획하였는지도 모르겠다.


태그:#이소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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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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