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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하나님, 저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노원구에 사는 김대성입니다. 동생을 꼭 가지고 싶어요. 남자 동생이요. 남자들끼리는 통하는 게 있거든요. 여자 동생도 예쁜데... 어쨌든 동생이 무지 무지 무지 갖고 싶어요. 아! 하느님 부처님, 작년에는 종교적으로 인간적으로 너무 하신 거 알죠? 이번에는 동생을 꼭 주세요. 관세음보살, 아멘, 오케이!"-170쪽, '콧구멍이 벌렁벌렁' 몇 토막

 

아시테지(ASSTTJ)? 아시테지가 무엇일까? 아시테지는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를 말한다. 아시테지는 인류가 지니고 있는 보편적 표현양식인 연극을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존엄성과 문화에 따른 권리를 그들 자신과 어른들이 함께 깨닫게 함으로써 세계 속 어린이, 세계 속 청소년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주는 단체다.  

 

아시테지는 꿈을 먹으며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연극이야말로 평등과 평화, 인종 사이에 놓인 갈등을 화합으로 이끌어주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스스로 배우고 알게 한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연극을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들 꿈과 정서를 쌍무지개처럼 찬란하게 내걸겠다는 것이다.

 

시가 밥도 술도 되지 못하듯이 연극 또한 춥고 배고픈 작업이다. 하지만 이들은 어린이와 청소년들 가슴에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제 스스로 싹 트고 자랄 수 있을 때까지 그 춥고 배고픈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천민자본주의가 판을 치는 요즈음 이러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있는 이들에게 힘찬 박수 한번 보내자.   

 

 

세계 명작 아닌 우리 창작품으로 올려지는 어린이 연극

 

"우리 어린이 연극이 본격적으로 출발한 것은 1970년대 말, 80년대 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 어린이 연극이 보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연극을 만드는 첫 단계인 이야기틀(희곡)을 제대로 갖춰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올려지고 있는 의미 있는 작품들을 모아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책 머리말' 몇 토막

 

아시테지 한국본부가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 연극의 주춧돌을 놓는 창작 희곡집 <콧구멍이 벌렁벌렁>(도서출판 예감)을 펴냈다. 아시테지 창작 희곡선 1집으로 나온 이 책은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한국본부가 그동안 무대에서 올려진 어린이 청소년 연극, 그 연극을 꾸려온 이야기틀이다.

 

설용수 동화작가가 쓴 '치카추카 동물병원', '만득 깨비 꼬깨비', 배요섭 극작가 겸 연출가가 쓴 '하륵 이야기', 김우경 원작을 극단 문화모임 광대가 극작한 '수일이와 수일이', 윤조병 극작가 겸 연출가와 박영주 아동청소년극 전공 대학생이 공동 극작한 '콧구멍이 벌렁벌렁' 등이 그것.

 

송인현 아시테지한국본부 이사장은 "우리 어린이 청소년 연극은 그동안 세계 명작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을 아무런 비판 없이 무대에 올렸으며,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이라는 말로 '사치와 허영'을 조장하던 무대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고 말한다. 송 이사장은 이어 "지금은 어린이 연극을 만드는 집단들의 치열한 고민과 열정으로 창작작품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치과 두려워하는 어린이 위한 창작극

 

곰아, 아기곰아. 빨리 가서 이를 닦아라.

치카치카 추키추키 초키초키

이를 닦아서 나쁜 벌레를 물리치자.

치카치카 추키추키 초키초키

3분 동안 닦자. 구석구석 닦자.-28쪽, '치카추카 동물병원' 몇 토막

 

설용수 동화작가 쓴 어린이 창작 희곡 '치카추카 동물병원'은 치통으로 고생하면서도 치과병원을 두려워하는 어린이와 어른을 위한 이야기다. 이 희곡에 나오는 배우는 의사와 아기용, 곰, 천사, 악마, 염소, 간호사다. 이야기 머리는 아기용이 유치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이빨이 모두 빠지는 병에 걸린 줄 알고 음식을 거부하다가 동물병원 앞에서 쓰러진다.

 

동물병원 의사는 치료기기를 무서워하는 아기용에게 치실을 이용하여 흔들리는 유치를 빼서 까치를 통해 이빨요정에게 보낸다. 그때 문이 거칠게 열리면서 치통으로 고생하는 어른 곰이 턱과 머리에 온통 붕대를 감고 나타난다. 어른이지만 치과를 무서워하는 곰에게 의사는 스스로 개발한 '안 아파' 치료약으로 통증을 가라앉히는데...

 

설용수는 "이 작품은 무대 한 쪽에 아주 커다란 치아 모형을 설치하여 충치가 치아를 갉아먹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보여준다"며 "충치가 어떻게 생기며 어떻게 이를 갉아먹고 그 결과가 어떤지를 알려줘 어린이들이 충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실천을 돕기 위함에 있다. 등장인물을 동물로 의인화시켜 어린이들이 치과에 친근감을 느끼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도깨비 이야기 통해 어린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는다

 

찾아야 해. 찾아야 해.

귀하고 흔하고, 추하고 아름답고,

환하고 어두운 것을 우리가 찾아야 해.

그래야 엄니 눈도 고칠 수 있어.-97쪽, '만득 깨비 꼬깨비' 몇 토막

 

'만득깨비 꼬깨비'에 나오는 배우는 만득과 깨비, 꼬깨비, 어머니, 도깨비 나라 임금 및 신하들, 마을 사람들이다. 40살이지만 결혼을 하지 못한 남자 만득은 힘은 세지만 행동은 굼뜨다. 깨비는 600살 된 남자 도깨비다. 꼬깨비는 아이로 변신하여 만득과 여러 가지 게임을 하는 꼬마 도깨비다. 어머니는 70세로 앞을 보지 못한다. 

 

이야기는 노총각 만득이 술에 취해 보름달이 환하게 뜬 산 속을 걷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때 만득 눈에 띄지 않게 사람으로 변신한 도깨비가 만득에게 싸움을 건다. 하지만 만득이 이기는 바람에 도깨비는 그만 몽당빗자루가 되고 만다. 다음 날 만득은 산에 올라갔다가 몽당빗자루를 발견하고, 손에 들고 내려온다.  

 

사람에게 싸움을 걸었다가 진 도깨비는 낮에는 몽당빗자루가 되고, 밤이 되어야 도깨비가 될 수 있다. 밤이 되어 도깨비로 돌아온 깨비는 만득에게 도깨비나라로 가자고 조른다. 만득은 어머니의 보이지 않는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대리 만득을 집에 남기고 깨비를 따라 마침내 도깨비나라에 도착하는데...

 

 

코 가루 긁을 때 미륵불 코가 벌렁벌렁해야 해

 

금동자 / 부처님 콧가루가 필요하다고?

대성 / 네.

은동자 / 그게 왜 필요해? 넌 아직 아이 낳을 때도 안됐는데.

대성 / 그게......

옥동자 / 요렇게 어린애가 온 적은 처음이다.

대성 / 잘못했어요.-187쪽, '콧구멍이 벌렁벌렁' 몇 토막

 

극작가 겸 연출가 윤조병과 아동청소년극을 전공하는 대학생 박영주가 함께 쓴 '콧구멍이 벌렁벌렁'은 동생이 필요한 대성이가 금동자 은동자 옥동자의 도움을 입어 부처님 코 가루를 긁어내 마침내 동생 셋을 한꺼번에 얻는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동생 셋은 금동자, 은동자, 옥동자의 화신이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은 초등학교 저학년 남자아이 대성과 아기 돼지 달봉이, 대성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빠, 금동자, 은동자, 옥동자란 세 동자들이다. 남자 동생을 가지고 싶었던 외아들 대성은 어머니에게 동생 하나 낳아달라고 온갖 수다를 떨지만 여의치 않자 하느님과 부처님에게 동생을 달라고 기도한다.

 

그러던 중 수락산 산장에 있는 할아버지를 따라 수락산 곳곳을 둘러보며 수락산에 얽힌 이야기와 바위, 암자 등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다. 이어 내원 암자에 도착해 할아버지로부터 내원 암지 법당 뒤에 서 있는 키 큰 미륵불에게 동생을 하나 낳아달라고 빈 뒤 그 미륵불 코 가루를 긁어 엄마 베개 밑에 두면 동생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콧구멍이 벌렁벌렁>은 그동안 세계 명작이나 외국 동화 등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어린이 청소년 연극을 우리 전래동화와 창작극으로 한 단계 끌어올리는 씨줄과 날줄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감정과 속내를 지니고 있는지 은근슬쩍 엿볼 수 있다.  

 

김우경은 1989년 '부산문화방송 신인 문예상'에 동화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작품집으로는 <머피와 두칠이>, <풀빛일기>, <우리아파트>가 있다. 배요섭은 1970년 서울 정릉에서 태어났으며, 주요 작품으로 '하륵이야기' '노래하듯이 햄림' '그림자 그림자' 등이 있다.

 

설용수는 2002년 서울세계아동청소년연극제에서 '교실귀신'을 공연했으며, 동화집 <아기민들레의 꿈>, 동시집 <가을햇살은 왜 짧아지는가>를 펴냈다. 윤조병은 서울어린이연극상 심사위원, 서울공연예술제 심사위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등을 맡았으며, 펴낸 책으로는  <희곡창작의 길잡이> 등 많이 있다. 박영주는 한국종합예술학교 연극원 연기과 아동청소년극 전공 3학년이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콧구멍이 벌렁벌렁

김우경 외 지음, 예감출판(2009)


태그:#콧구멍이 벌렁벌렁,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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