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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군 소원면에 위치한 의항해수욕장이 지난 16일 개장했다. 의항해수욕장은 지난해 기름유출사고의 여파로 해수욕장 개장을 단념해야만 했다.
▲ 1년 만에 문을 열다 충남 태안군 소원면에 위치한 의항해수욕장이 지난 16일 개장했다. 의항해수욕장은 지난해 기름유출사고의 여파로 해수욕장 개장을 단념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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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재앙에 해수욕장 개장 단념하다

1년 전의 일이다. 하룻밤 사이에 밀려온 검은 재앙은 그해 이 지역 주민들에게 '해수욕장 개장 단념'이라는 극단적인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옆 동네가 줄을 이어 개장식을 갖고 다양한 행사를 개최했다. 충남도와 태안군도 해수욕장 개장을 선언하며 피서객 유치에 나섰지만, 단 두 곳만은 그럴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섣부르게 개장했다가 유출된 기름에 의한 2차 피해가 발생하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최대 해수욕장을 보유한 충남 태안군내 32개 해수욕장 가운데 지난해 기름유출사고로 부득이하게 개장을 하지 않은 곳은 태안군 소원면 의항 해수욕장과 구름포 해수욕장뿐이다.

시골 어촌마을 주민들의 소득이라야 뻔하다. 가족들이 겨우  먹을 만큼의 농사와 조업을 통해 남긴 이익, 그리고 여름철 피서객들을 상대로 벌어들인 수익. 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조업 이익은 2007년 발생한 기름유출사고로 조업이 중단되면서 오히려 마이너스가 됐다.

그렇다면 관광효과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것마저도 포기했다. 워낙 알려지지 않은 곳이어서 그 흔한 펜션 하나 없고 공중화장실 등 편의시설도 없어 피서철이 되어도 찾아오는 관광객이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살림하는 데 보탬은 됐다. 그래도 '개장 포기'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지난 16일 힘들게 1년을 기다려 올해 마침내 문을 연 태안군 소원면 의항해수욕장과 구름포 해수욕장을 찾아갔다.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한지 1년 6개월이 지난 태안은 예전의 모습으로 다시 되돌아가고 있다. 허나 아직도 곳곳에 기름유출사고의 흔적을 쉽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 기름유출사고의 흔적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한지 1년 6개월이 지난 태안은 예전의 모습으로 다시 되돌아가고 있다. 허나 아직도 곳곳에 기름유출사고의 흔적을 쉽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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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기름, 일리포에서 만리포 거쳐 태안군 전체로 확산

의항해수욕장과 구름포 해수욕장은 지난 2007년 기름유출사고의 직격타를 맞았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기름유출사고 당시 가장 먼저 기름이 유입된 곳은 구름포 해수욕장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이 의항해수욕장이었다.

만리포, 천리포 해수욕장이라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백리포, 십리포, 일리포 등도 존재한다. 이 가운데 백리포를 제외한 십리포, 일리포의 또 다른 이름이 의항해수욕장과 구름포 해수욕장이다.

어떤 연유에서 이런 이름이 지어졌는지 알지 못하나 유출된 기름은 그렇게 일리포에서 만리포를 거쳐 태안군 일대 해안가를 모두 덮쳤다.

휘파람 소리가 울려퍼지던 그곳에서는 물속과 물위를 오르락 내리던 해녀들이 있었다.
▲ 저게 뭐지? 휘파람 소리가 울려퍼지던 그곳에서는 물속과 물위를 오르락 내리던 해녀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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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포·의항 해수욕장, 1년 만에 문을 열다

태안에서 만리포 해수욕장으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가다 만리포해수욕장을 목전에 두고 표지판의 안내대로 우측으로 뚫린 도로를 달리다 산으로 난 고불고불한 도로를 지나면 만날 수 있는 의항해수욕장. 이곳은 산 중턱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다움을 넘어 환상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곳이다.

지난 16일 의항해수욕장은 개장식을 가졌다. 말이 개장식이지 유명한 다른 해수욕장과 달리 화려한 개장식 행사는 없었다. 그저 동네사람들이 모여앉아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 전부였다.

의항해수욕장 이생규 번영회장은 "조그마한 해수욕장이어서 거창하게 개장식을 갖지는 않는다. 그래도 올해는 작년에 개장하지 못한 기대감은 갖고 있다"며 "주민들끼리 모여서 손님들에게 친절하자, 바가지 요금 받지 말자고 서로 단단히 약속했다"고 말했다.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해수욕장에서 바지락을 캐고 있는 부부.
▲ 바지락 캐는 부부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해수욕장에서 바지락을 캐고 있는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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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의항해수욕장, 다시 일어서다

해안가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황금빛 모래의 백사장과 쪽빛 바닷물은 123만 자원봉사자의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듯 그렇게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기름유출사고로 인한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백사장의 자갈이다. 지난해 모래사장에 스며든 기름을 제거하기 위해 트랙터와 굴착기 등을 이용해 밭갈이 작업을 하면서 모래층에 숨겨져 있던 수많은 자갈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한편으로는 생태계가 회복한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래사장에는 고동이 힘겨워 보이는 걸음을 딛고 있었으며, 다른 한쪽에 뭐그리 바쁜지 게들이 잰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또, 해안가 한켠에는 전통어로 방식인 독살이 만들어져 있었고 사람들이 바지락을 캐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 분들에게 슬며시 다가가 말을 붙이는 순간 기자는 화들짝 놀랐다. 먼발치에서 볼 때는 두 사람 모두 창이 긴 모자를 쓰고 몸뻬 바지를 입고 있어 당연히 아낙네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굵은 남자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이것저것 물어보니 지역 주민은 아니고 지인의 소개로 부부가 나들이를 오게 됐고 인근 상가에서 바지락을 먹을 만큼 캘 수 있다는 소리에 얼른 장비를 챙겨서 나왔다고 한다.

이곳 바닷가가 작고 아담하며, 그리고 조용해 맘에 든다던 몸뻬 입은 아저씨는 "근데 바지락이 너무 작네요. 이렇게 빈 껍데기만 있는 것도 많고. 칼국수에 넣을 만큼만 잡아가랍니다"라는 말을 하고는 다시 바지락 캐기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훼방꾼 노릇을 그만두려는 순간, 어디선가 '휘~휘~'하는 휘파람소리가 들려왔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좀처럼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낼 수 없던 그 때. 희미하게 검은 물체가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가까워 보이는 갯바위에 올라 카메라의 '줌' 기능을 이용해 관찰해 보니 그 검은 물체의 정체는 바로 해녀였다. 검은 잠수복을 입고 얼굴에는 수경을 쓴 해녀들이 수중에서 해산물 채취작업을 하다가 숨을 쉬기 위해서 그렇게 물속과 위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던 것. 휘파람소리는 해녀들이 가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나는 소리였다.

문득 주변을 살펴보니 어선들이 바다에 많이 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당시 낚시배라고 생각한 배들 대부분이 이렇게 해녀들의 작업을 도와주기 위해 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일부 어선은 낚시배로 이용되고 있기도 했다.

충남 태안군 소원면에 위치한 구름포 해수욕장. 아름다운 경치로 구름도 쉬어가는 곳이란 뜻을 갖고 있다.
▲ 구름포 해수욕장 충남 태안군 소원면에 위치한 구름포 해수욕장. 아름다운 경치로 구름도 쉬어가는 곳이란 뜻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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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도 쉬었다가는 곳, 구름포해수욕장

의항해수욕장에서도 다시 산을 하나 더 넘어야 갈 수 있는 구름포 해수욕장. 앞서 언급했듯이 구름포 해수욕장의 또 다른 이름은 일리포 해수욕장이다.

구름포 해수욕장의 이름에 관한 유래에 관해서 김낙준 번영회장은 "다른 곳에서는 없는 구름이 이곳 하늘에서는 어김없이 생기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다"며 "이런 연유로 구름도 쉬어갈 만큼 아름다운 해수욕장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구름포 해수욕장으로 오는 길에도 역시 기름유출사고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울퉁불퉁한 도로 옆에 사고 당시 피해지역 곳곳에 수없이 걸려있던 현수막이 아직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며, 태안에서만 볼 수 있는 방제복 입은 허수아비가 작은 밭을 지키고 있었다. 또, 산기슭에는 차량 통제를 위한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구름포 해안가 자갈에는 비이상적으로 증식한 파래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허나 이외에는 검은 악몽을 기억해낼 만한 것은 없는 다시 깨끗해진 예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오히려 의항해수욕장 같이 해안가에 즐비하던 자갈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김낙준 번영회장은 "이곳은 일 년이면 수십 센티미터씩 모래가 쌓이는 곳이어서 다른 곳보다 금방 모래사장으로 변해갔다"고 설명했다.

의항해수욕장에서는 휘파람 소리를 듣게 된 반면 구름포해수욕장에서는 노랫소리를 듣게됐다. 태안군에 위치한 대부분의 해수욕장이 그렇듯 이곳도 해안가 근처에 솔밭이 조성돼 있는데 그곳에서 양희은씨의 대표곡인 '아침이슬'이 들려오고 있었다.

또 다시 노랫소리에 이끌려 찾아간 그곳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지인의 소개로 회사 직원들과 함께 오게 되었다는 통기타를 멋들어지게 치던 아저씨는 "이렇게 좋은 곳이 있다는 것을 왜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여름이 다가기 전 꼭 다시 한 번 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충남 태안군 소원면에 위치한 의항해수욕장.
▲ 의항해수욕장 충남 태안군 소원면에 위치한 의항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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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악몽 씻고 다시 희망을 품길 기대하며...

피서철을 앞두고 올해 구름포해수욕장에는 공중화장실이 신축됐다. 주민들도 마음을 새롭게 다졌다. 김낙준 번영회장은 "유명해수욕장처럼 화려하고 편의시설도 다양하지는 않지만 그곳들이 갖지 못한 아늑함과 편안함을 느끼기에는 제격"이라며 "주민들도 최대한 피서객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의항해수욕장과 구름포해수욕장의 지역주민들은 123만 자원봉사자에게 보답하는 차원에서도 불친절, 바가지요금을 근절하고 피서객들이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기억하고 싶고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만들겠다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여름철이면 어김없이 불거지는 문제가 불친절, 바가지요금으로 인해 불편을 겪는 피서객의 이야기다. 특히 태안군은 지난해 조사결과 전년대비 14%에 해당하는 관광객이 다녀간 것으로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불친절, 바가지요금에 대한 민원은 좀처럼 사그러들지 않았다.

지난해 발생한 민원을 살펴보면 대개 태안을 향한 섭섭한 마음이다. 사고 당시 기름제거 작업에 동참한 자원봉사자인데 휴가차 다시 찾았는데 불친절했다거나 태안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가족들과 찾아왔는데 음식도 형편없고 불친절했다는 것이다.

부디 올해부터라도 123만 자원봉사자와 태안을 걱정하고 관심 있게 지켜봐주는 전국민을 생각해서라도 지역주민들이 보다 친절한 마인드로 상냥하게 관광객들을 맞아주길 기대한다. 더불어 바가지요금은 유출된 기름보다 더욱 태안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인식하길 바란다.   


태그:#태안, #기름유출사고, #의항해수욕장, #구름포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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