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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한 번, 전국 지역대학에 있는 영문과 학생들이 모여 교수님과의 간담회, 장기 자랑 등 수련회를 개최하고 있다.
▲ 방송대 영문과 전국 수련회 1년에 한 번, 전국 지역대학에 있는 영문과 학생들이 모여 교수님과의 간담회, 장기 자랑 등 수련회를 개최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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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일적이고 제도권적인 울타리를 벗어나 드디어 만나게 된 나의 93년도 새내기 대학시절.
인천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진 대전에서의 자유분방한 생활이었기에 더욱 설레고도 불안하여 두렵기까지 하였던 나의 청춘시절은 그렇게 나로 하여금 사회와의 첫 만남을 이어주었다.

각 지역에서 입학한 새내기 친구들, 선배들, 지인들을 만날 때 마다 '아, 세상은 참 어렵기만하고 재미없는 곳은 아니었구나'하며 좋은 인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기에 바빴고 틀 안에 갇혀서 순진한 척 하였던 잠재된 나의 의식은 각성으로 바뀌며 사회적 존재로서의 책임감과 무게감을 차츰 인지하게 되었다.

새내기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선배들과 함께했던 처음 모꼬지. 마냥 기쁘고 그저 웃음만 나왔던 그 때의 추억은 지금도 속리산을 가는 날이면 항상 그날의 많은 에피소드와 소소한 사건 등의 그리움으로 엷은 미소를 안겨다 준다.

너무나 여리고 순진했던 나였기에 통성명과 자기소개를 하면서 어찌나 얼굴이 화끈거렸던지 떨리는 목소리를 주체 못해 맥주병을 통째로 들이키며 본의 아닌 엽기적인 행동과 이후 벌어진 되새김질로 인해 영원히 잊지 못할 눈도장을 찍은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웠었다.  

이후 더욱 친밀함이 보태진 관계의 미학에 의해 한 달이 멀다하고 여기저기 모꼬지를 쫓아다니면서 술과 사람과 자연과 인연과 연인의 레파토리로 많은 청춘영화의 주인공이 되었던 기억에 '대학은 졸업하지만 모꼬지의 추억은 영원히 남는다'라는 자족의 명언도 적어놓았다.

대학으로 다시 돌아가 설레임을 안고 모꼬지의 추억속으로

12개 지역대학에서 참석한 학생들은 시간을 쪼개 호흡을 마치며 준비한 팀별 장기자랑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 각 지역대학의 장기 자랑 12개 지역대학에서 참석한 학생들은 시간을 쪼개 호흡을 마치며 준비한 팀별 장기자랑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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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흐르고, 가족사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으며, 직장인의 모진 굴레와 사회의 갖은 편견과 왜곡을 지켜보면서 어느덧 30대 중반이 된 지금, 나는 다시 그 행복의 순수함을 상징했던 모꼬지의 추억 여행을 새롭게 다녀오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3년 전, 10여 년간 물질과 현실의 안정을 주었던 조직의 울타리를 박차고 나와 자유로운 영혼으로 맘껏 나의 인생을 그리며 살다가 작년 방송대 영문과에 다시 편입학하여 정녕 내가 하고 싶은 인문학의 진정성을 배워보고자 그 지긋지긋한 공부와의 동거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졸업당해년도에 들어온 엊그제 '전국 방송대 영문과 수련회'에 큰 맘 먹고 참가를 결심, 모꼬지의 추억을 떠올리며 너무나도 아련하고 좋은 추억을 만들고 왔다.

멀게는 제주지역을 포함하여 전국 지역에서 모인 5백여 명의 직장인, 주부 학생들과 방송대 본대 조교와 교수님들, 각종 장기자랑에서 수상한 인기 연예인 뺨치는 지인들이 모여 무박2일간의 화려하지 않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운 추억의 모꼬지를 진행하였다.

전날 비바람과 폭풍우가 몰아쳐서 수련회가 취소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밤을 지새웠고 마치 초등학교 시절, '제발 비만 오지 마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았다.

기도발이 약간 먹히긴 했는지 다행이 비는 오지 않았고 바람이 많이 불긴 하였지만 짐을 싸고 나름 제일 폼 나는 옷을 갈아입고 수련회 가는 관광버스에 여러 동기, 후배님들과 대부도 장소로 출발하였다.

출발한 버스는 채5분도 지나지 않아 노래방기계와 화려한 불꽃들이 넘실거리는 우정의 무대로 변신하였고 각자 마음속에 품어왔던 신나고, 애잔하고, 구슬픈 노래향연을 맘껏 펼쳐 놓았다.(예전 관광버스의 아줌마부대는 절대 아니었음을 강조함.)

1시간이 지나 대부도 근처에 도착했지만 버스 기사분이 위치를 모르는 바람에 왔다 갔다만 3번을 지루하게 왕복하면서 해질 무렵 가까스로 수련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련원에 도착하자마자 동기분들과 함께 운동을 하면서 땀을 흘리며 맑은 공기에 흠뻑 젖었다.
▲ 축구도 하고, 족구도 하고.. 수련원에 도착하자마자 동기분들과 함께 운동을 하면서 땀을 흘리며 맑은 공기에 흠뻑 젖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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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에 품어있기에 맑은 공기가 머릿속을 깨끗하게 청소해주었고 전국에서 온 남녀노소 각계각층의 학생들은 지역학교의 티를 예쁘게 맞추어 입고 사진촬영을 하며 자유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함께 버스를 타고 온 학우들과 방 배정을 마치고 예쁜 색동옷을 입힌 인조잔디구장으로 나가 족구와 축구 등을 하면서 비 오듯 땀을 흘리니 예전 수업 시간 빼먹으며 선배들과 막걸리 내기 족구 시합을 했던 기억이 떠올라 잠시 추억에 잠기기도 하였다.

이후 저녁식사를 마치고 대강당에 모인 전국 지역 학생들과 인사를 하며 어깨도 주물러주고 단체 놀이도 배우고 오락퀴즈도 풀면서 처음 만나는 어색함을 풀면서 수련회의 포문을 열게 되었다.

이어 잘생기고 아름다운 교수님들의 등장으로 강당은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고 온라인 학습강의로만 접했던 멋지고 훌륭하신 담당과목 교수님들을 직접 마주하면서 강의계획, 평가, 성적분포, 학습방법, 애로사항 등 솔직하고 격이 없는 대화를 오고 갔으며 학습과정상 불편사항과 고충, 개선점들을 제안하여 소통부재에 있었던 학생들의 답답함을 해소시켜주었다.

영국문학사, 영미희곡, 영어회화 등 영문학 교수님들께서 모두 참석하여서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나누며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 방송대 영문과 담당 교수님들 영국문학사, 영미희곡, 영어회화 등 영문학 교수님들께서 모두 참석하여서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나누며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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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교수님들과의 질의응답시간만을 기다려왔다는 듯이 제주지역대표로 홀로 참석한 중년 학우의 학습 고충을 답변하는 대표 교수님은 "이렇게 심각하고 어이없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전혀 몰라서 안타깝고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어렵게 참석하여 질의한 문제에 대해 담당 학과장에게 진정성 있는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하자 모든 학우들이 일제히 환호성과 고마움의 박수를 아끼지 않는 훈훈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이후 학회장 인사 및 영어스피치 경연대회 수상자와 노래자랑 금상 수상자의 축하 공연을 마치고 드디어 학수고대했던 하이라이트, 각 지역별 장기자랑이 명품mc의 진행으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때로는 솔로로, 때로는 단체로, 어떤 지역은 노래로, 어떤 지역은 댄스와 연극 등으로 몇 일동안 함께 동고동락하며 준비했던 숨은 끼와 신명나는 마당을 주저함이 없이 펼쳐보였고, 아이와 손잡고 나온 할머니도 신나게 춤을 추고, 교수님들의 공연에는 학생들이 백댄서로 받쳐주며 영문과의 하나 되는 단합과 단결의 힘을 마지막 남은 열정까지 아끼지 않을 정도였다.

특히 지방에서 한 아이의 엄마로 주부와 학생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학우는 멋진 추억의 팝송을 마치고 '사랑하는 남편에게 너무나 못해주고 부담만 끼치는 것아 미안하다.'며 울먹이자 군인인 남편은 '직업상 오히려 더 잘해주지 못하고 무관심한 나를 이해해줘서 고맙다.'고 눈물의 세레나데를 표현하여 행사장에 가득 모인 학우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하였다.

이날 장기자랑 영예의 대상은 울산 지역에서 공연한 단체 댄스 퍼포먼스팀이 참여하였고, '이번 수련회를 통해 함께 연습도 하고 호흡도 맞춰가면서 대상까지 차지하게 되어 더욱 발전하는 울산지역대학 영문과로 거듭나겠다.'며 고마움의 인사로 화답하였다.

장장 5시간에 걸친 화려한 잔치마당을 마치고 각 지역대학 숙소에서 벌어진 2차 이야기 풀이에서는 교수님과 허심탄회하게 술잔을 기울이면서 인간적인 이야기와 일상생활에서의 애로점을 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따뜻한 시간이 이어졌다.

이야기 풀이가 늦게 시작한지라 아침해맞이 시간까지 술자리는 이어졌고, 함께 한 사람들과 다시 취중 족구를 하면서 술기운을 땀으로 날리며 이날의 모꼬지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우리네 모꼬지의 추억은 시대의 아픈 현실을 토로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운동권 후배를 양성하는 하나의 통과의례였을 거라는 모습도 보이겠지만 그 시절 함께 가는 고난한 길 위에서 순수함과 열정으로 전국을 떠돌아다녔던 그 낭만의 추억과 밤샘의 이야기들은 아마도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와 또 다른 누군가의 아련한 그리움으로 재현되리라는 영구반복의 재생 테이프가 아닌가 싶어진다.

이제 반 학기만을 남기고 방송대 또한 이별이 되겠지만 다시 마음을 설레게 하고 새롭게 떠났던 전국 영문과 모꼬지의 추억을 가슴에 담고 인생의 또 다른 순수성의 회귀를 꿈꾸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그려본다.

인천지역대학 영문과 주최로 열린 이날 공연에서 영어 원어 영극을 멋있게보여주었던 연극팀 단원들
▲ 영문과 인천지역대학 연극 공연팀 인천지역대학 영문과 주최로 열린 이날 공연에서 영어 원어 영극을 멋있게보여주었던 연극팀 단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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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인 남편과 주부 학생인 부인의 애틋한 사랑 표현으로 행사장을 울먹이게 했던 행복한 부부.
▲ 부부간의 애틋한 정을 확인해 준 아름다운 커플 군인인 남편과 주부 학생인 부인의 애틋한 사랑 표현으로 행사장을 울먹이게 했던 행복한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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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수련회는 가족단위로 함께한 학생이 많아 어린아이들의 귀엽고 깜찍한 공연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 팝송 중창을 멋있게 선보인 지역팀의 예쁜 어린 참가단원 이날 수련회는 가족단위로 함께한 학생이 많아 어린아이들의 귀엽고 깜찍한 공연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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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점수도 보탬이 되고자 장기자랑하는 무대의 팀원들에게 열렬한 함성과 환호를 보내주고 있다.
▲ 각 지역팀이 장기자랑을 하면 응원단이 몰려와 함성을 응원점수도 보탬이 되고자 장기자랑하는 무대의 팀원들에게 열렬한 함성과 환호를 보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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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 공연으로 지쳐있는 서로에게 활력소를 팍팍!!
▲ 어깨도 토닥토닥 장시간 공연으로 지쳐있는 서로에게 활력소를 팍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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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국방송통신대학, #영어영문학과, #전국수련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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