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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김영사
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김영사 ⓒ 윤석관
카스트 제도라는 말을 혹시 들어보았는가? 들어본 사람들 대부분은 그것이 인도의 신분제도의 이름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그것이 힌두교의 교리에 따른 것으로서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4단계 계급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어릴 적에 학교에서 카스트 제도를 배우면서 이 네 가지 계급과 피라미드 모양의 그래프만이 내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신이 버린 사람들>이라는 책에서는 또 다른 계급을 나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 계급의 이름은 달리트. 우리말로 그들은 불가촉천민 계층으로서 카스트의 4가지 계층에 속하지도 않는 '아웃카스트'의 최하층민이었다.

이들이 인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인구의 16퍼센트, 즉. 인도인 여섯 사람 중 한 명꼴로 존재하고 있었다.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닌 이들은 힌두교의 속박에 갇혀서 최악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 최악의 삶이란 이러했다.

전통적으로 마하르 집단이 마을에서 수행하는 의무는 '비천한 마을 하인'의 잡무였다. 마하르는 '마을의 야경꾼이자 보초이며 대소사의 살아있는 알림판'이었다. 마을의 언쟁을 중재하고 마을을 지키면서 부고를 알리고 다른 사람에 서신을 전달하며 화장에 필요한 장작을 나르고 마을의 담장을 손보는 일이 그들의 일이었다. 또한 지주들을 마을회관으로 불러서 지세를 걷고, 나라의 재물을 운반하는 사람들을 호위하며, 마을의 길을 쓸고, 관리들의 심부름을 하고, 도둑을 쫓고 가축의 시체를 마을 밖으로 치우는 것도 마하르의 의무였다. (17쪽)

이렇게 달리트들은 마을의 잡일들을 해야 할 의무가 있었으며, 그것에 대한 보상을 상층 카스트들에게 구걸하면서 얻어내었다. 하지만 상층 카스트들은 다음과 같은 말과 함께 그들에게 음식을 제공해주었다.

"이 음식을 가져가면서 우리 집 불행도 다 가져가라. 자, 가져가라……. 버리는 것보다야 네 뱃속에 넣는 데 낫겠지. 우리 집 우환도 가져간다면……." (46쪽)

<신도 버린 사람들>의 저자 나렌드라 자다브 역시 최하층민의 달리트 계층에 속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현재 인도의 신분제도가 무너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인도의 살아있는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으며, 외국 언론들은 그를 인도중앙은행 총재, 재무장관, 나아가서는 인도의 미래를 이끌어갈 대통령 감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인도에서 힌두교가 뿌리내린 영겁의 역사 속에서 최하층민의 의무만을 부여받았던 달리트 계층의 나렌드라 자다브. 대체 그가 어떻게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한사람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일까? 인도의 계급사회에는 도대체 무슨 변화의 바람이 불었던 것일까?

이 책은 달리트였던 인간이 어떻게 어느 누구 부러워하지 않을 만큼 성공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비밀을 여과 없이 우리들에게 공개하고 있었다. 그 비밀 속에는 수많은 달리트 계층들의 투쟁의 기록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 달리트의 투쟁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간디와 비견될 만한 인도의 영웅. 암베드카르(바바사헤브)를 구심점으로 한 달리트 해방 운동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의 물결 한 가운데에 그의 부모들도 참여하고 있었다.

"당신네 종교가 우리의 종교라고 말한다면, 우리의 권리가 당신들의 권리와 동등해야 한다. 그런데 실정이 그러한가? 그렇지 않다면 무슨 근거로 우리가 힌두교의 울타리 안에 머물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인가?" (56쪽)

저자의 아버지 다무와 어머니 소누. 둘은 힌두교의 신을  함께 섬기는데 한쪽은 지배계층으로 윤택한 삶을 누리고, 다른 한쪽는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 그것을 뉘우치기 위해 고난의 삶을 따라가야 한다. 특히, 그들이 사용하면 더럽다고 여겨 출입을 금지시키는 차별행위를 철폐하고자 민중을 이끌었던 암베드카르의 사상에 고무되어 시시각각으로 그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때로는 투쟁의 일원 중 한명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다무는 암베드카르의 가르침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에 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던 사람들 중 한사람이었다. 그리고 가르침의 결과 그를 짐승 취급하는 마을에서 떠나 스스로의 능력으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뭄바이로 이동하게 한다. 그가 기존의 체제에 반기를 들었을 때 그의 가족들과 친척들이 모두 그 마을에서 벌을 받아야 했지만,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더는 못 견디겠어. 소니. 참을 수가 없어. 우리는 자존심을 가져야 해. 존엄성을 지녀야 한다고. 어떻게 집집마다 다니며 구걸을 하냔 말이야. 발루타가 우리의 권리라고? 맙소사! 그들이 음식을 어떻게 던지는지 본 적 있어? 개처럼 살 권리 따위는 원치 않아. 나는 인간답게 살 권리를 원한다고." (48쪽)

그렇게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뭄바이로 가서 일자리를 찾았지만, 대공황이라는 전 세계적인 불황과 맞물려 하루하루를 힘겹게 생활하게 된다. 그는 겨우 일용직을 찾아서 근근이 연명했다. 어느 날은 몇 시간동안 기다려도 아무 일도 못하고 집에 돌아오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의 자존심을 포기하지 않았고, 몇 번의 오르막과 몇 번의 내리막을 함께하면서 긴 시간동안 암베드카르의 달리트 해방운동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암베드카르는 달리트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던 상층 카스트인에게 불교로 개종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낸다.

달리트들은 마지막까지 힌두교 신자로서 떳떳하게 대접받고 싶었으나, 협상은 지지부진하게 이뤄졌고 그들은 종교 아래 인간이 놓여있는 구조를 인간아래 종교가 놓여있는 구조로 옮겨가려는 계획을 실행했다. 그들은 자존심과 인권을 회복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게 이 책에는 기존 체제에 맞서 싸웠던 수많은 달리트들의 역사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덕분에 신분철폐의 법령이 통과했고 나렌드라 자다브와 같은 최하층 사람들도 예전과는 다른 스스로의 노력여하에 따라 인생이 바뀔 수 있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자다브는 어린 시절 그들의 부모님의 경험담을 토대로 이 책을 펴냈다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어떻게 너를 학교에 보내고 먹여 살리는지 알아달라고 했을지 모를 부모의 경험담을 그는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었고, 혼자 간직하기에 너무나 아까웠는지 이 사실을 전 세계인들에게 고백하고 있었다.

한평생 인권을 외치고 "교육하고, 단합하고, 궐기하라!"는 구호를 생활로 옮겨 나갔던 아버지 다무는 분명 이 책이 세상에 나와서 전 세계인들에게 읽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땅속에서도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지르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제 시작이라는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보냈다. 그의 아버지가 살았던 1900년대 전체에 비하여 그들의 처우는 나아지긴 했어도 아직까지 뿌리 깊게 자리한 신분구조의 골은 깊이 파여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이들이 그를 "달리트 학자"라고 부르는 것에서 단편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암베드카르의 가르침과 그의 부모님의 소망을 받들어 계속적으로 인권운동에 앞장 설 것이다. 그래서 전 세계가 그가 내딛는 일보일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껏 인도에는 간디라는 사람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 책을 통해 다른 두 명의 인물을 알게 되었다. 한명은 암베드카르이며, 또 한명은 바로 이 책의 저자이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이들의 저서를 구해 읽으면서 우리 사회와의 연관성과 해결책을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세계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진정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강수정 옮김, 김영사(2007)


#신도 버린 사람들#나렌드라 자다브#김영사#단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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