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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내내 비엔나의 날씨는 겨울 같았다. 부는 바람은 겨울코트를 어색하지 않게 만들만큼 뼈를 파고 들었다. 5월 말, 달력의 시간은 날씨와 엇박자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다른 숙박객들이 다 나가고 난 뒤에도 날씨를 핑계삼아 미뤄두었던 편지를 쓰고 있었다.

 

그때, 우리층 문에 누군가 열쇠를 넣고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문 옆, 거실 책상에 앉아있던 내가 저쪽에서 미처 열기 전에 문을 열어주었다. 아침까지 보지 못했던 단아한 이미지의 단발머리 아가씨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목례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내 쪽에서 인사를 건네며 다시 책상에 앉으려는데 그녀가 난처해한다.  영어로 "여기 청소를 하려구 왔는데 시작해도 될까요?" 라고 묻는다.  얼른 눈치를 보니 한국인이 아니다.

 

 

아, 한국인이 아니시면?"

"저는 중국사람이예요. 여기 아르바이트 해요. 청소를 하려고 하는데 좀 시끄러울텐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러면서 그녀가 다시 수줍게 웃는다. 

 

"그럼요. 청소하시는데요. 저는 신경쓰지 마세요. 그럼  이곳 빈에서 공부하시면서 아르바이트도 같이 하시는 건가요?"  

"네. 저는 19살 때 빈에 왔어요. 지금은 빈 대학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하구 있구요. 아르바이트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 

 

이제 26, 27 살 정도 되어보이는 그녀는 화장기도 없고 수수한 학생차림 그대로였다. 그녀가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는 동안 이야기를  좀더 나누고 싶어, 마침 내가 가지고 있던 과일을 얼른 씻어 그녀를 다시 불렀다. 

 

"제 이름은 배수경이예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공부와 병행하시느라 힘드시지요?"

"제 이름은 장 양 (zhang yang) 이예요. 네 많이 힘들어요. 아르바이트는 여기 말고도 한 군데 더 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길 수 있어요. 괜찮아요."

 

" 장 양! 저도 대학을 다닐때  공부와 돈 버는 일을 병행해야 했었거든요. 그래서 공부도 많이 늦어졌었지요. 근데 그 시간을 지나고 나니 이렇게 여행도 올 수 있게 되었어요. 당신도 지금은 무척 힘들고 다른 친구들보다 공부가 늦어져 답답하겠지만 분명 좋은 날이 올 거라 저는 믿어요. 그러니 힘드셔도 꼭 공부 다 마치고 힘내셨으면 좋겠어요."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대학을 다니던 그때의 내 모습을 그녀에게서 보는 듯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 역시 나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아, 그러시군요. 사실 저도 가끔 너무 힘들 땐 왜 내가 여기서 이렇고 있지 라는 생각을 해요. 하지만 이 일들을 통해서 배우는 것도 많아요. 한 예로 이 곳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저는 청소를 어떻게 하면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는 슬그머니 눈웃음을 보낸다. ) 게다가 이렇게 남들과는 다르게 많은 장애물들을 넘어가면서 제가 더 강해지고 있다는 걸 느끼거든요."  

 

 

이렇게 해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비엔나에 있는 동안 우리는 잠깐 잠깐 시간을 내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의외로 여행을 통해 그동안 삶을 돌아보고 혼란했던 생각을 정리하고자 왔다는 이들이  꽤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에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남들보다 늦은 대학 졸업과 서울생활이라는 속도전에 맞추어 살아내야했던 지난 젊은 시절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 같은 것이라 해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었다. 남들보다 늦었던 것, 그 속에 공부외의 것들에 빼았겼던 시간들에 대한 억울함 같은 것들을 여행을 통해 털어내고 싶었었다. 

 

그런데 장양과의 만남은 나의 생각에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녀의 말처럼 만약 내가 그런 아픔이 없었다면 장 양 같은 친구를 그저 스쳐지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나의 아픔이 분명 누군가와의 간극에 작은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아픔으로 내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좀 더 깊이 있게 사람과 사물을 대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그녀와의 만남 속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빈 여행을 마치고 다른 나라로 이동해야 할 날이 다가오자 나는 그녀에게 작은 선물을 건네었다. 그러자 그녀가  내일 아침 내가 10시 차로 떠나니 아침 9시까지 이곳에 오겠다는 것이다. 내 선물에 대한 답례로 꼭 하나 주고 싶은 책이  있는데 기다려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9시 정각을 알리는데도 그녀가 오지 않았다. 그녀에게 인사만 전해달라고 하고는 가방을 싸고 나가려던 찰나 그녀가 얼마나 달렸는지 얼굴이 벌개져서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내가 아직 떠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숨을 헐떡이며 말하고는 귀여운 포장지로 싼 책 한 권을 건넨다. 

 

아침은 먹고 온 거냐고 했더니 그저 고개만 젓는 그녀에게 "이럴 필요없었다"고 "나는 너의 마음을 이해했을 것"이라고 했더니 고개를 흔들며 "그래도 이걸 꼭 주고 싶었노라"고 말한다.

 

 

 

 

시간이 바빠 기차안에서야 그녀가 준 포장지를 뜯어보니 그 안에는 "신보다 더 행복해지기"라는 제목의 책과 아르바이트로 지친 몸을 깨우며 늦은 새벽시간까지 썼을 편지가 들어있었다. 

 

 

그 편지속에서 그녀는 내게 "당신이 늦은 건 하나도 없다. 우리는 단지 다른 경험들을 했을 뿐이다. 그러니 늦었다 생각하지 말고 지금까지 그래왔듯 당신의 길을 가라. 그러면 분명 앞으로 보다 더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눈이 흐려져 편지를 읽다가 다시 내려놓기를 반복하고 나서야 읽기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는 나는 다시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스트리아와 스위스로 이어지는 구간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결과만이 논해지는 세상이다. 성공을 해야하고 그 성공이라는 단어에는 수많은 항목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항목들에는 한 인간이 넘어왔던 수많은 장애물이나 과정들은 언제나 간과되기 일쑤이다.  끊임 없이 스스로를 남과 비교하고 세상의 속도전에 뒤처지면 그건 실패라 공인된다.  그리고는 나의 가치 역시 정확히 그곳에서 멈추어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장양과의 만남을 통해 나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인생을 보다 큰 그림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데에는 언제나 아픔으로만 남아있을 것 같던 우리들의 그 공통된 장애물의  힘이 컸다.  

 

서울로 돌아와 다시금 서울의 속도전에서 나 자신을 혹사시키고 있을 때, 혹은 생각지도 못했던 장애물들로 힘겨워 질 때 나는 장 양과의 대화를 그리고 그녀가 편지에서 적어주었던 말들을 기억해보곤 한다. 

 

"친구, 우리가 겪던 경험들이 우리를 더욱 강하게 한다는 걸 잊지마,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전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래,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그것들이 너에게 지금 무엇을 속삭이는지,  또 앞으로 무엇을 가르쳐 줄지를 말이야." 

덧붙이는 글 | 작년 유럽여행을 홀로 다녀오면서 겪은 일들을 이어쓰기 하고 있는 것들 중 한 글입니다. 


태그:#여행 ,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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