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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방학이라도 쉴 수 있게 해주세요."
"아이들에게도 휴식이 필요합니다."
"점수 몇 점 올리기가 주는 가치... 의문입니다."
"입시생도 아닌 초등학생을 방학까지 나오게 한다는 건 무리라고 봅니다."

최근 전교조 충북지부가 모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6학년 보충수업에 대한 의견을 묻자 답변한 내용이다.

질문과 답변에서 드러나듯 초등학교가 일제히 방학을 시작했지만 충청지역 대부분의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은 방학에도 등교한다.

충북 영동에 있는 A초등학교는 6학년 학생들을 오는 8월 3주 동안 등교하도록 했다. 학습부진아들은 8월 한 달 내내 등교해야 한다.

전교조 충북지부가 자체 파악한 '보충수업' 현황을 보면 상태가 더욱 심각하다. 청주시내 49개 초등학교 중 28개 학교가 방학 중 6학년을 대상으로 1주에서 많게는 4주까지 보충수업을 계획하고 있다. 보충수업 계획이 없는 학교는 4곳에 그쳤고, 나머지 17곳은 아직 보충수업 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충북 음성군에 있는 21개 초등학교 중 7곳이 방학 중 돌봄 학교 프로그램을 보충수업으로 대체 운영하기로 했다.

방학 중 한 달 내내 보충수업, 반발 일자 2주로 축소  

충남도교육청 정문에서 일제고사 중단을 요구하고 있는 충남지역 학부모들
 충남도교육청 정문에서 일제고사 중단을 요구하고 있는 충남지역 학부모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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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뿐만이 아니다. 충남 연기의 한 초등학교는 6학년 학생 전원을 대상으로 방학 중 한 달 내내 국어, 수학을 중심으로 보충수업을 하려다 학부모 반발에 부딪혔다. 하지만 계획 자체를 취소하지 않고 2주간 매일 5시간으로 보충수업 시간을 조정했다.        

6학년 학생들이 방학에도 학교에 가야 하는 실제 이유는 한 가지다. 오는 10월에 있는 '6학년 학업성취도평가'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충북 옥천군에 있는 모든 초등학생 6학년은 10월 학업성취도평가 이전에 모의학업성취도 평가시험을 3차례 치러야 한다.   

한 초등학교 교사의 "10월 한 번의 시험을 위해 아이들을 다그치는 모습이 부끄럽다"며 "교육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항변은 이 때문이다.

물론 해당 학교에서는 '보충수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방과 후 학교 일환으로 '교과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란다. 즉 표현만 바꾼 보충수업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초등학교가 일제히 방학 중 학생 등교령을 내린 배경은 무엇일까?

지난달 30일 열린 충북지역 교감단연찬회 회의 자료는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날 배포된 '6학년 학업성취도평가 대비 권장사항' 제목의 문서에는 "여름방학 한 달이 학력 향상을 위해 몰입지도 할 시간"이라며 "교과 관련 여름방학 프로그램으로 집중 지도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또 (시험) 정보 교환, 고학년 핵심 개념 정리, 기출문제·고난이도 문제 풀이, 가정과 학교에서 반복학습 유도, 지문에서 답을 찾는 요령 등 시험 보는 방법 익히기 지도 등이 제시됐다.

사실상 학업성취도 평가에 대비해 방학 중 몰입교육을 유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 충북도교육청 관계자는 "도교육청이 작성한 문서가 아닌 교감단 모임에서 자체적으로 작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교감단 연찬회 문건 "여름방학 한 달은 학력 향상 위해 몰입지도 할 시간"

충북지역 교감단 연찬회 자료. "여름방학 한 달이 학력 향상을 위해 몰입지도 할 시간"이라며 사실상 방학 중 보충수업을 유도하고 있다.
 충북지역 교감단 연찬회 자료. "여름방학 한 달이 학력 향상을 위해 몰입지도 할 시간"이라며 사실상 방학 중 보충수업을 유도하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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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교조충북지부는 교감단이 이 같은 문건을 만들게 된 배후에 충북도교육청이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전교조충북지부 김명희 수석부지부장은 "충북도교육청 장학사들이 군별로 수시장학지도를 나가 '학력증진 방안'을 내놓을 것을 주문했다"며 "군 교육청에서 학습지도계획을 내놓으면 '성의가 없다'고 지적해 결국 방학을 반납하는 사태까지 초래됐다"고 말했다. 그는 "교감단의 방학 중 몰입교육 회의 자료는 도교육청의 강도 높은 현장 순회지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거슬러 올라가면 방학을 반납한 초딩 '보충수업'을 등장시킨 원조는 이명박 정부의 4.15 자율화 조치다.

충남도교육청 관계자는 "이전에는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으로 교과관련은 운영하지 못하도록 돼 있었다"며 "지난해 4.15 학교자율화 조치 이후 교육주체들의 의견 수렴만으로 교과 프로그램 운영이 허용되면서 전국에서 학력신장을 위한 심화보충 프로그램이 운영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국 대부분의 학교가 방학 중에 교과관련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라고 덧붙였다. 

학부모 하소연 "아이가 너무 불쌍하다"

전교조충북지부 관계자는 "4.15학교자율화 조치 이후 공교육은 입시중심의 서열화 교육으로 치닫고 있다"며 "초등학생도 방학에 쉴 수 없는 경쟁사회로 밀어 넣고 있지만 사교육비는 날로 증가하고 아이들의 감성과 창의력은 메말라 가고 있다"고 말했다.

재선을 노리는 현 교육감들이 '학력신장'이라는 치적 쌓기를 위해 과도하게 성취도 평가에 학생들을 내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 이기용 충북도교육감은 지난 9일 전교조충북지부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성적이 안 나오면 내가 책임져야 한다"며 "지금은 아이들을 공부시켜야 할 때"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그는 방학 중 보충수업 중단요구에 대해서는 "일선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알아서 하는 일에 도교육청이 나설 수 없다"고 답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초등학교 자녀를 둔 학부모(충북 영동군 영동읍)는 "학교에서 시험문제를 풀기 위해 쉬는 시간까지 5분으로 줄였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방학에도 쉬지 못하는 아이가 너무나도 불쌍하다"고 말했다.


태그:#초등학생, #학업성취도평가, #충남도교육청, #충북도교육청, #전교조충북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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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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