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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 내에 자리잡은 전파상, '김일무선'
▲ 김일무선 전주 한옥마을 내에 자리잡은 전파상, '김일무선'
ⓒ 박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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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버린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전주 한옥마을에는 매일 같이 문을 여는 전파상이 있다. 낡고 허름한 외관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흔적도 만만치 않지만, 요즘 같이 디지털기기와 각종 서비스 센터가 범람하는 시대에 무슨 전파상인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게다가 전파상에 들르는 손님도 없건만, 가게 안은 언제나 분주한 모습이었다.

'왜?'라는 궁금증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 열려 있는 문틈 사이로 내부를 살펴봤다. 서너 평이나 될까 말까한 조그만 공간은 각종 선풍기와 라디오, 텔레비전이 쌓여 있어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그리고 한켠에는 돋보기 안경을 쓴 할아버지 한 분이 전선을 만지며 무언가를 고치고 계셨다. '김일무선'의 주인 김일환(70) 할아버지셨다.

"실례할게요, 할아버지. 많이 바쁘세요? 잠깐 할아버지 얘기 좀 듣고 싶어 들어왔어요."
"그려"

손에 쥔 전선에 시선을 고정한 채, 조금은 심드렁한 말투로, 그렇게 할아버지는 입을 여셨다.

IMF 이후 뚝 끊긴 손님…"할 줄 아는 게 이거밖에 없어"

기계 고치기에 여념이 없으신 할아버지
▲ 김일환 할아버지 기계 고치기에 여념이 없으신 할아버지
ⓒ 박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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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 먹고 살 게 없었던 그 시절, 김일환 할아버지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이리공업고등학교에 들어갔다. 학교에서 전기를 전공한 뒤, 전자회사에서 근무를 하던 김일환 할아버지는 자신의 기술을 가지고 무언가를 한번 해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전파상 운영을 시작했다. 기술과 자기 가게를 가졌던 만큼 처음에는 수입이 좋았다.

"아, 찾는 사람이 많았지. 그때는 진공관 TV가 처음 나오고 또 라디오도 많이 들었으니까. 돈도 꽤 벌었어. 근데, 차츰 손님이 줄기 시작하더니 IMF 이후에는 손님이 뚝 끊겼어. 이제는 찾는 사람이 아예 없다니까."

전파상을 차린 60~70년대는 라디오와 TV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던 시기였고, 반면 전파상과 같은 수리점은 희소했던 터라 김일환 할아버지는 재미가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 문만 열어 놓고 있고 있을뿐, 실제로 수리를 부탁하거나 물건을 사가는 사람은 전무한 상황이다.

"내가 할 줄 아는 게 이거 밖에 없어. 이 나이에 다른 데를 가겠어, 아니면 뭘 하겠어. 여기 와서 고칠 수 있는 건 고치고, 만지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거지."

지난 2002년 풍 때문에 오른쪽 몸 마비를 겪은 김일환 할아버지는 운동 겸 취미생활로 매일 전파상에 나오고 계셨던 것이었다.

"선풍기 필요한 사람은 와서 공짜로 가져가~"

"그런데, 여기 빽빽하게 메운 선풍기와 라디오는 다 어디서 온 거예요? 맡기는 사람 없다면서요?"

"아, 이건 다 내가 주워 온 거야. 요즘엔 다 그냥 버리잖아. 조금만 손보면 쓸 수 있는데도 고장 났다고 버려. 내가 아파트를 돌며 수거한 것도 있고, 또 여기저기 버려진 거를 모아오다 보니 이렇게 됐어."

김일환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버린 전자제품들을 모아 매일 매일 하나씩 수리해 나가는 중이다. 나사와 볼트 같은 기본적인 부품에서부터 전기선이나 각 제품의 주요 부품은 몇 십 년 째 이어온 '김일무선' 내에서 자체 충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치기 어려운 것은 굳이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할아버지 말대로 취미생활이기 때문.

이렇게 해서 다시금 정상적인 작동을 하게 된 선풍기나 라디오는 이를 필요로 하는 서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준다.

"근데 요즘은 와서 가져가는 사람도 없어. 아직 쓸만 한 게 많은데 말이지. 나야 더 이상 물건을 들일 데가 없어서 고물상에 넘기는데, 이왕이면 필요한 사람이 와 가져가면 좋잖아. 안그래?"

할아버지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가끔 몇몇 사람이 들러 필요한 걸 가져가지도 했지만, 요즘엔 또 이마저도 끊겨 아쉽다고 말했다.

'김일무선' 가게 안은 선풍기와 라디오 등으로 발  디딜 틈조차 없다
▲ 김일무선 내부 '김일무선' 가게 안은 선풍기와 라디오 등으로 발 디딜 틈조차 없다
ⓒ 박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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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움직이는 날까지 가게 열 것이다"

오가는 사람이 없는 까닭에 이제 '김일무선'은 사실상 전파상으로서의 의미는 더 이상 없는 셈이다. 하지만 할아버지에게 있어 '김일무선'은 아직까지 더 없이 소중한 공간이다.

"내가 몸도 안 좋은데, 어딜 가겠어. 노인회관이나 복덕방에 가는 거 보다는 여기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낫지. 앞으로도 일 할 거야. 아직 고칠 게 많이 남았거든. 내가 못 움직이게 되는 날까지 난 여기 나올 거야."

가끔은 할아버지 또래의 친구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동네 사랑방. 때로는 서민들에게 무료로 선풍기와 라디오를 제공해 주는 따뜻한 공간. 김일환 할아버지가 있는 한 '김일무선'은 영원할 것만 같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선샤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전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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