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최근 몇몇 언론에 '2007년 OECD 건강자료 분석'을 토대로 우리나라 의료를 평가하면서 선진 외국에 비해 의사 수가 너무 적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면서 의사 수를 더 늘려야 선진 외국과 비슷한 의료 수준에 오를 수 있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상하다. 요즘은 길 하나 건너면 의원이고, 동네마다 의원이 없는 곳이 없는데 왜 의사가 부족하다고 하는 걸까?

새사연 보건복지분과에서 공부하며 OECD 자료를 늘 챙겨보는 습관이 들어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수치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수치가 주는 의미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자료가 언제 나온 건데 이제야 언론에서 호들갑을 떠는 건지 한심한 생각도 들었다.

자세히 원인 분석을 안하고 기사를 썼구나 생각하며 지나려는데, 이번에는 의사협회에서 그 내용에 대한 공식 반박문을 발표했다. "OECD에서 집계한 단순 통계와 수치만을 근거로 의사인력의 많고 적음을 논할 수 없고, 근래 의사 수가 빠른 속도로 증가해 오히려 인력감축이 시급한 상황"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의사인력이 지금 추세대로 증가한다면 10년 뒤인 2019년에는 약 15만 8000명 정도가 될 것이고, 인구 수는 통계청 추계상 4933만 7991명에 달해 1000명당 의사 수가 약 3.2명 가량이 될 것으로 추산되어 OECD 중간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또한 2003년부터 2007년까지 5년간 6878명의 인력이 진료할 곳을 찾지 못해 실업 상태에 놓여 의사들이 힘들어한다는 상황을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좀 아닌 듯싶다. 통계 자료의 오류이거나 다른 문제일 것이 분명하다. 하여간 이쯤되면 헷갈리게 된다. 의사 수를 늘려야 하나, 줄여야 하나, 아니면 지금 수준으로 유지해야 하나?

OECD 건강 통계의 진실

OECD는 해마다 가입국에 대한 경제 상황, 노동 조건, 의료 상황 등 세세한 항목들을 각 국에서 보내주는 공식 자료를 모아 통계 수치를 발표한다. 그 가운데 보건의료 수준을 나타내는 'OECD Health Data'가 있다. 다른 것들은 다 제쳐두고 이번에 문제가 된 의사 수만을 비교해 보자.

 세계 각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수 비교
세계 각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수 비교 ⓒ 새사연

2007년 OECD 발표 자료만을 보면 우리나라 의사 수는 가입국 30개국들 중에서 하위에 위치한다. 벨기에 4.0, 스위스/뉴질랜드 3.8, 노르웨이/아이슬랜드 3.6 … 일본 2.1, 멕시코 1.9, 한국 1.7, 터키 1.6

수치로 보니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끝에서 두 번째이다. 우리 앞에 멕시코, 일본이 있다. 일본이 조금 앞에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이 수치는 그만큼 국민들을 책임지는 의사들이 부족하다는 뜻이므로, 그 나라의 보건의료 수준을 생각할 때 후진성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많은 자료들을 함께 둘러보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다른 자료들을 보면 우리의 국민의료비는 적고, 영아 사망률이나 평균 수명은 중상위를 차지한다. 적은 의료 인력으로도 이렇게 훌륭한 의학적 성과를 달성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의사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적은 의사 수로도 이렇게 훌륭한 보건성과를 낸 우리나라는 가장 효율적인 의료정책을 펴고 있다고 언론에서 칭찬해야 하는 것 아닌가?

통계 수치만 보고 잘못 판단하게 되는 사례를 들어보자. OECD 자료를 보면 간호대를 졸업한 수는 인구 1000명당 다른 나라들은 보통 30, 40명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75명 수준이다. 병원에 가면 간호사들이 많을 것이므로 간호 서비스는 세계 최고이겠다. 간호 서비스 수준은 모르겠지만 그 수치만 가지고 그렇게 평가하게 된다면 문제가 있게 된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보다도 간호사들의 휴직이 많아서 실제 일하는 간호사들은 절반을 약간 넘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림잡아도 인구 1000명당 30, 40명 정도의 간호사들이 실제 일하고 있는 셈이다. 선진 외국과 비슷한 수치가 된다.

이처럼 통계나 수치는 그 의미를 확실히 알고 보지 않으면 엉뚱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다.

전문의는 넘치고, 1차 의료 의사는 절대 부족

다시 돌아와 의사 수 얘기를 다시 해본다. 현재 의사 수는 외국에 비해 모자라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 수치에는 우리나라의 한의사 수가 빠져있다. 똑같이 환자들을 보는 한의사 수를 포함한다면 인구 1000명당 1.7이 아니라 2.3 수준도 될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일본보다도 앞서게 되지만 그래도 뒤에서 몇 번째이다. 어떻게 해도 의사 수는 모자라다. 언론이 이런 부분을 지적하면서 써야 하는데 연구를 게을리 한 건지,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올린 건지 알 도리가 없지만 보도하는 자세가 글러먹었다.

의사협회의 말대로 한 해 의과대학을 졸업하는 의사 수가 3000명이 넘기 때문에 인구는 적어지고, 의사는 늘어나 얼마 안 가서 의사들이 과잉배출될 것이라는 생각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의사 수의 증가는 위의 그래프에서 보듯이 다른 나라에 비해 그다지 가파르지는 않다. 절대적인 수가 부족한 데다 외국과 비슷한 추세로 증가하고 있다면 어느 정도 의사들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의사협회도 의사수 과잉이라는 엄살을 펴고 있음이 분명하다.

사실 외국은 아직도 의사가 부족하다고 난리다. 인구 1000명당 우리나라의 두 배나 되는데도 부족하다 하는 것은 대부분 1차 의료 의사들, 즉 주치의를 담당할 동네병원 의사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보통 주치의를 맡고 있는 1차 의료 담당 의사들이 40∼5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데도 부족하다는 거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전문의가 90퍼센트를 넘는다. 물론 그 중에 다른 전문과를 가지고 동네병원에서 일반 진료를 하는 의사들이 많아서 그렇지 우리나라는 1차 의료 의사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나라이다. 어쨌든 외국은 그래도 1차 의료 의사가 부족하다 호소하고 있고, 그러다보니 진료 대기시간도 길어지면서 질 좋은 진료를 하기가 힘들어진다고 토로한다.

그렇게 많아도 부족하다는 나라와 부족한데도 충분하다는 우리나라, 뭔가 이상하다. 그 원인을 곰곰히 생각해 본다. 이는 외국과 우리나라의 진료 시스템의 차이에서 오는 상대적 문제이다. 선진 외국은 동네병원 의사들이 주치의처럼 일을 하는데, 보통 15분, 20분 진료를 하면서 환자들을 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많은 환자들을 볼 수가 없고, 진료를 기다리는 시간도 너무 길어진다. 당연히 의사 수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동네병원이 1, 2분 진료를 하게 된다. 그렇게 보는 환자들이 하루에 70명, 100명은 되어야 병원 경영이 좋아진다. 하지만 의사들이 늘어나면 상대적으로 하루에 보는 환자 수가 많이 줄게 되고, 병원 수익이 줄어드는 어려움을 호소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의사들은 결코 의사가 많아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양질의 진료 필요... '주치의제' 시행으로 개선해야

인구 1000명당 의사 1.7명이니 그보다 얼마나 높아야 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 국민들은 지금의 의사 수로도 충분히 진료를 받고 있다. 문제는 양질의 진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점, 기껏 기다렸더니 1분 진료하고 진료실을 나와야 한다는 점 이런 것들이 문제인 것이다. 무턱대고 언론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의사를 늘린다면 지금 우리의 의료 현실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환자들이 잠깐 의사 얼굴 보고 나와야하는 지금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의사들은 경영을 핑계로 짧은 시간에 환자를 많이 보려고 하거나 돈 되는 진료만을 하려고 들 것이다. 나도 그런 부류의 의사로서 자괴감을 갖고 있기에 씁쓸하다.

언론이 제대로 우리 의료 문제를 분석하고 관심을 가졌다면, 1차 의료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지금의 의료 시스템을 고쳐야 하고, 주치의제도와 같은 좋은 환자-의사 관계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내걸어야 했다. 그렇게 되려면 의사들은 하루에 20∼30명 정도의 환자들을 대하게 되고, 당연히 의사들은 절대부족하게 되니 우리나라는 지금보다도 두 배 이상 동네병원 의사들이 늘어야 한다고 주장했어야 한다.

이번에 OECD 통계를 들먹이며 의사 수의 부족을 발표한 언론이나 반박하는 의사협회는 진실을 안 가르쳐주고 있었다. 언론은 톡톡 튀는 저널리즘적인 기사를 올린 것이고, 의사협회는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의사협회는 '무작정 의사를 늘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주치의제도와 같은 발전된 1차 의료 정책을 통해 환자들을 충분히 만족시키면서 질 높은 진료를 하기 위해서는 의사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늘리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발표해야 옳았다. 단순히 숫자 놀음만 하지 말고.

덧붙이는 글 | 고병수 기자는 제주도 '365일의원'에서 진료를 하고 있는 가정의학과 전문의이자,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입니다. 이 기사는 새사연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의사수#1차진료#의료서비스
댓글

새사연은 현장 중심의 연구를 추구합니다. http://saesayon.org과 페이스북(www.facebook.com/saesayon.org)에서 더 많은 대안을 만나보세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