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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10일 오후 1시 30분]

이종석 전 장관
 이종석 전 장관
ⓒ 황방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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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9일, "대북지원이 북한 핵무장에 전용된 의혹이 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최근 발언에 대해 '남북관계에 대한 무지와 책임회피'라고 규정하면서 맹비판했다.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이끌었던 이 전 장관은 이날 오후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 동국대에서 연 한겨레평화강좌 '한반도는 어디로?-회담주역들에게 길을 묻다' 강연에서 "북한에 대한 현금 지원은 2006년 이산가족 화상상봉시설의 북한 내 설치를 위해 몇 십만 달러를 준 것이 유일했다"면서 "상봉시설 모니터에 들어가는 컴퓨터가 북한으로 반출될 수 없는 전략물자로 분류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밖에) 현금지원이 있었다면 한나라당이 가만있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강연 앞머리에서 이 대통령의 주장을 적극 반박했다.

▲ 일부 언론에서 대북현금지원액이 29억 달러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일반 상거래대금 18억 달러와 고 정주영 회장의 금강산과 개성사업권 등 11억 달러를 합친 것으로, 교역대가라는 점에서 문제가 될 수 없다.
▲ 북한에서 핵과 미사일 개발은 제2경제위원회가 담당하며 이들은 내각중심으로 운영되는 민간경제와는 별개로 운영된다.
▲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의 추정에 따르면 북한은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연평균 8억 달러 정도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는데, 북한은 국제금융 이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금수입 대부분이 이를 충당하는 데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 남측이 지원한 비료와 쌀이 현금으로 전환됐을 것이라는 의혹도 있지만, 지난 10년간 북은 단 한 번도 쌀이나 비료를 외국으로 수출한 적이 없다.

이 전 장관은 그러면서 "지난해 남북교역에서 북한은 4억4000만 달러의 흑자를 봤는데, 북한은 이명박 정부가 보내준 이 돈으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했단 말이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화해협력이 북한의 핵실험을 초래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화해협력정책으로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면서 "부시 행정부의 대북 직접대화 회피와 북한 압박 및 고립 정책이 북한을 핵실험에 이르게 했다"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분석을 인용하는 것으로 반박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불량정책'이라고 규정했다. "무익한 강성 언어를 써서 정책을 펴기도 전에 남북관계의 악화를 초래했으며,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의 역할을 주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북한이 도발하면 응징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미리 전쟁을 나지 않게 막는 것이 정치이고 외교"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이명박 정부는 대북갈등을 높여 '노무현 서거정국'의 방향을 돌리려 했지만 시민사회의 높은 의식으로 이를 좌절시켰다"면서 "이제는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어느 정권도 최소한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진입 중"이라고 분석했다.

왼쪽부터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이종석 전 장관
 왼쪽부터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이종석 전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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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도 아니면 모'식의 셈법으로 전략 변경"

이 전 장관은 최근 북한 움직임에 대해서는 "장거리로켓  발사 이후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에 대한 강경대응(핵실험)은 북한의 외교적 관성으로 볼 때도 일탈적"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북한은 더 이상 누구도 믿을 수 없으므로 '도 아니면 모'로 간다는 식"이라며 "핵보유국이 되든지 아니면 확실한 체제보장과 경제보상을 받는 대타협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이런 판단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북한은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서 이후 15년간 미국과 관계개선을 추구했으나 식량난과 경제난이 나아진 것이 없고, 한국과 미국의 정권교체에 따라 대북정책이 급격하게 바뀌는 것에 대한 극심한 불신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005년에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미국 관리에게 '정권이 바뀌었다고 정책이 바뀌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왜 그런지 설명해 달라'고 했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미국 오바마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서는 "초기와 달리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때 '인공위성'을 대포동 미사일로 규정하는 등 신중한 자세를 유지하지 못했다"며 "오바마의 실패는 감성에 경도돼 정책의 합리성을 추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 전 장관은 "현 국면은 기능적 외교방식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면서 "북미간에는 고위급시도가 불가피하며 남북간에도 고위급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특히, "남북관계는 극단적 불신이 심화돼 북미 타결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전례를 보면) 북한이 먼저 움직이지 않을 것이므로 이명박 정부가 먼저 근본적인 정책 전환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남북정상회담, 2005년 가을로 의견일치 봤으나 BDA 사건으로 미뤄져"

그는 토론자로 나선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의 "남북정상회담이 정권말인 2007년에 뒤늦게 열리면서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를 과거로 되돌리는 기회를 준 게 아니냐"는 질문에 "2005년 6월에 정동영 장관이 평양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을때 정상회담 개최를  굉장히 강조했고, 이어 8월에 북한의 림동옥 당시 통일전선부 부부장이 서울에 왔을 때 그해 가을쯤에 하는 것으로 의견일치를 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측에서는 중국과 러시아 등 3국을 거론했으나 우리는 서울은 북한이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금강산 등을 생각했었다"면서 "그러나 곧 방코델타아시아(BDA)사건이 나면서 결국 미뤄지게 됐다"고 답했다.

이 전 장관은 2006년 12월 장관에서 물러난 뒤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으로 복귀했으며, 최근 1년간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연구 활동을 하다가 최근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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