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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8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국가인권위원장 이임식을 마친뒤 직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다.
 안경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8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국가인권위원장 이임식을 마친뒤 직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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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안경환 위원장이 이임식을 하면서 국가인권위원장은 공식적으로 빈자리가 됐다. 관심이 쏠리는 대목은 역시 후임 위원장이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법상 위원장 등 인권위원의 임명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은 한 달 이내에 후임자를 임명하도록 되어 있는데, 현재 이진강 전 대한변협 회장, 신혜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 등이 차기 위원장으로 거론되고 있다.

문제는 인사청문회 등 인권위원 공개 검증절차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밀실인사'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고, 심지어 '반 인권' 전력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한다. 인권단체들은 국가인권위 설립 초기부터 이 문제를 지적해왔고, 안 위원장도 이임식 기자간담회에서 후임자 임명과 관련해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회에서는 지난달 27일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국가인권위원장과 상임위원 임명 시 인사청문회를 실시하는 내용의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을 제출해놓은 상태다. 오는 15일 시민사회단체들과 야4당 의원들이 이 문제를 놓고 토론회도 연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번 국가인권위원장 임명에 적용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밀실, 나눠먹기, 낙하산, 반 인권... 끊임없는 자질 시비

국가인권위법에 따르면 인권위원의 기준은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자"이다. 위원장을 포함한 인권위원은 모두 11명인데, 각각 국회가 4명(상임위원 2인 포함), 대통령이 4인, 대법원장이 3명을 지명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위원장이 가장 주목을 받지만, 합의제 구조이기 때문에 각 인권위원들도 권한이 크다. 예산·결산 등 조직 운영정책과 위원회 권고 및 의견제출은 전원위원회에서 과반수 찬성을 거쳐야 한다.

국가인권위가 설립될 때부터 인권위원 인선절차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대통령과 여야 정당, 사법부가 각자 자기 몫을 '나눠먹기' 하다보니 인권위원 자리가 인권과 무관한 '낙하산' 도구로 악용된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다.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회원들이 6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 사퇴는 이명박 정권의 인권위에 대한 정치적 탄압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회원들이 6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 사퇴는 이명박 정권의 인권위에 대한 정치적 탄압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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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에도 류국현 비상임인권위원이 법조비리 연루 전력으로 두 달 만에 사퇴한 바 있지만,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서 인권위원 자질 시비가 두드러졌다.

지난해 8월 청와대는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 지지선언을 했을 뿐 인권 신장 활동 경력이 전혀 없는 김동수 목사를 비상임위원으로 지명했다가 자진 철회했다. 김 목사는 당시 <뉴스메이커> 인터뷰에서 "인권위가 좌경화되어 있다", "인권을 너무 보장하면 죄수들이 폭동을 일으킨다" 등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그 뒤 지난해 9월 한나라당 몫으로 비상임위원에 임명된 최윤희 건국대 교수 역시 공안기획검사와 한나라당 윤리위원 전력이 문제가 됐다.

같은 시기 청와대 지명을 통해 비상임위원으로 임명된 김양원 목사는 장애인시설 운영과 관련해 횡령 비리와 낙태 강요 의혹도 받고 있다. 당시 장애인단체들이 국가인권위 건물에서 농성을 벌이려고 하자 국가인권위가 경찰에 시설보호 요청을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김 목사는 지난해 3월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공천을 신청했다가 낙천한 바 있다.

'국가인권위원장 출근저지 투쟁' 벌어질까

안경환 위원장 사퇴 이후 '인권위 수호를 위한 법학교수 모임'은 인권위원장 임명 가이드라인으로 ▲인권 전문성·경험·지향성 ▲인권위 독립성 수호 ▲정파적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움 ▲국제인권기준 실현 의지 ▲국제적 활동 역량 ▲시민사회와 협력 ▲도덕적 청렴성 등 7가지 기준을 검토하고 있다.

전 국가인권위 사무총장인 곽노현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결국 '국가인권위 조직축소를 어떻게 보냐'는 한 가지 질문으로 모든 기준이 귀결된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가 이와 관련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낸 상황에서 조직축소가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인물은 위원장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는 인권위원을 어떻게 정하지?
선정위원회 추천, 국회 투표 거쳐 공개 검증
ICC(세계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가 '모범적'이라고 평가한 국가인권기구들은 다양한 공개검증 절차를 두고 있다. 까다롭게 여러 차례 검증 및 투표를 거치는 국가들도 있다.

인도네시아 인권위원회의 경우, 5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가 후보를 추천하면 의회가 적합성을 검토한 뒤 대통령이 후보자를 임명한다.

태국 인권위원회는 선발위원회에서 2배수인 22명을 추천한 뒤 상원에서 투표를 통해 득표수대로 11명을 선발한다. 호주와 남아공 인권위원회도 선발위원회가 관련 지식과 경험을 확인하도록 되어 있다.

지난 2000년 10월 '올바른 국가인권기구 설치를 위한 민간단체공동대책위원회'가 제안한 법안에는 '인권위원선정위원회'나 인사청문회 검증을 거치도록 되어 있다.

2002년 인권운동사랑방이 이에 대해 공개질의했을 때 국가인권위는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답변했지만 아직까지 검증시스템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곽 교수의 주장대로 "인권위 조직에 대한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아니오'를 외칠 수 있는 인물"이라면, 이 대통령이 그를 임명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정치적 목적으로 국가인권위를 장악하려고 하는 정부인데, 위원회 독립성을 확고히 지킬 만한 인물을 지명하겠냐"고 잘라 말했다.

지난 2001년 1월 '국가인권위원회 독립기구화'를 요구하며 눈 내리는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14일간 노숙농성을 했던 박래군 활동가는 "이제 국가인권위가 인권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독이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현실은 매우 암담하다"면서 "최악의 경우, 반인권적 국가인권위원장을 막기 위해 인권단체가 출근저지 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태그:#국가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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