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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남기원 내부 찾는 손님이 많이 줄었다는 풍남기원 내부 모습
▲ 풍남기원 내부 찾는 손님이 많이 줄었다는 풍남기원 내부 모습
ⓒ 박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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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인터넷으로도 바둑을 많이 두지. 그런데 우리같이 나이 많은 사람들은 컴퓨터도 잘 모르고, 또 모니터를 오래 보고 있으면 눈이 아파서…. 기원에 와서 사람들도 만나고, 바둑도 두고, 또 배우기도 하는 거지."

백과 흑의 한판 싸움. 인생의 축소판이라 일컬어지는 바둑은 기원의 몰락으로 한때 위기를 맞는 듯했으나 온라인 바둑의 활성화로 다시금 예전의 영광을 되찾고 있다. 오히려 바둑TV, 바둑교실 등 바둑을 배우고 즐길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해지고, 바둑이 두뇌 개발에 좋다는 인식이 퍼져감에 따라 바둑을 하나의 스포츠로 즐기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바둑 인구 천만'도 괜한 말이 아니다.

하지만 바둑이 대중화 될수록 기원의 어려움은 커져만 갔다. 그 옛날 바둑 좀 둔다는 사람들이 모여 바둑을 공부하고 인생을 논하던 기원이 당장 맞닥뜨린 건 경영 악화였다. 기원이 아니더라도 바둑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손님이 줄어든 것이다.

그럼에도 직접 사람을 만나 바둑을 두기 위한 사람들의 발길은 여전히 기원을 향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 문을 닫지 않고 기원을 운영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에게 기원은 추억 그 자체이다. 올해로 30년. 전주시 기원 역사를 꿰뚫고 있다는 풍남기원 김원재(75) 원장의 이야기는 그래서 흥미로웠다.

"기원 운영 수익기대 어려워... 취미생활일 뿐"

 풍남기원 김원재 원장
 풍남기원 김원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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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찾아간 풍남기원에는 3~4명의 할아버지가 둘러앉아 바둑을 두고 계셨다. 못해도 10개 이상의 바둑판과 스무 석 이상의 자리가 마련돼 있었으나 그 자리 주인은 사람이 아닌 썰렁함이었다.

"요즘엔 하루에 많이 와야 15명 정도야. 예전엔 하루에 30~40명은 기본으로 왔었는데 말이지. 일요일 같은 경우에는 100명이 넘게 오기도 했어. 그런데 다들 복지관으로 가다보니 정작 여기로 와서 바둑을 두는 사람은 얼마 안돼. 옛날 손님들 같은 경우에는 이제 나이가 들어 돌아가신 분들도 많고…."

주로 60~70대 할아버지들이 많이 찾아온다는 이곳 풍남기원의 일일 평균 손님은 15명 내외. 하루 이용 기료(기원 이용료)가 65세 이상은 3천 원, 65세 미만은 4천 원이니 하루에 벌어들이는 수입이 채 5만 원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김원재 원장은 기원을 통해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가게 임대료와 이것저것 빼고 나면 남는 게 없어. 나야 나오는 연금이 있어 그나마 할 만 한 거지, 기원으로 영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요즘에도 기원을 열었다가 몇 달 안 돼 다시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아. 그래서 몇몇 기원에서는 부수입을 마련하기 위해 고스톱이나 마작같은 놀음이 성행하기도 했는데, 그러면 안 되지."

군대에서 부상을 당해 상해군경 연금을 받고 있는 김원재 원장은 사실상 기원 운영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기원이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운영되다 보니 난립하게 되고, 또 최근에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바둑교실이 성행하면서 오래된 기원은 막다른 골목에 놓이게 된 것이라고.

그래도 김원재 원장은 기원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서적인 교감과 실력향상이라는 장점이 있는 만큼 자신은 끝까지 기원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 오는 손님들 다 오래 됐거든. 잊지 않고 찾아주시는데, 문을 닫을 수 없지. 나에겐 기원을 운영하는 거 자체가 취미생활이야."

기원에서 접한 패배, 그리고 시작된 바둑 공부

아마 5단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김원재 원장이 처음 바둑을 접한 건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1957년 군대에서 부상을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는 중이었다.

"그땐 별다른 놀거리가 없었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마땅히 할 게 없어 바둑을 뒀지. 그런데 그 승부가 참 재밌더라고. 그래서 퇴원 후, 고향인 전주로 내려와 기원에 갔어. 우선은 내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던 거야."

그러나 나름대로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김원재 원장은 한마디로 '쓰라린 패배감'을 맛봤다. 당시 1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던 어르신과 맞붙었다던 김 원장은 내리 2판을 다 지고 난 뒤에서야 자신의 실력을 깨달았고, 이후 시간이 날 때마다 기원에 들러 사람들과 바둑을 두며 실력을 키웠다고 한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바둑을 잘 몰랐어. 두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먹고 살기 힘든데 무슨 바둑이야. 80년대 초중반 들어서야 기원도 많이 생기고, 또 스타 바둑기사들이 등장하면서 대중화가 된거지."

"내기바둑? 이젠 그런 거 없어~"

김의균 교수 풍남기원에서 만난 김의균 교수
▲ 김의균 교수 풍남기원에서 만난 김의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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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남기원에서 '기원의 문화를 온 몸으로 경험했다'는 또 다른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호원대 김의균 교수였다. 김 교수 역시 김원재 원장과 마찬가지로 아마 5단의 실력을 갖춘 '고수'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 한약방 할아버지로부터 어깨너머 바둑을 배웠다는 김 교수는 1주일에 4일 이상 기원을 찾아 사람들의 실력을 한 단계 끌어 올려주는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기원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랑방' 이미지가 좋다는 김 교수는 무엇보다 기원에 대해 해명할 게 하나 있다며 말을 꺼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기원하면 도박하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잖아요, 응? 내기바둑이라는 것도 있고. 그런데, 옛날에야 프로기사들도 먹고 살기 힘드니까 그런 게 있었지, 요즘엔 거의 없어요."

예전에는 상수가 자신의 실력을 낮게 감추고 일부러 몇 판 져준 다음에 큰돈을 걸고 이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고수의 눈에는 그게 일부러 져주는 것인지 아닌지 분간이 된다는 것이다.

"그땐 그 사람에게 가 귓속말로 '적당히 하셔'라고 충고하죠. 특이 이곳 기원은 고수들이 많이 들르기 때문에 그런 사기나 내기는 있을 수가 없어요. 다만, 상수랑 바둑을 둘 때에는 기료를 내주는 것이 예의라서 자발적으로 기료를 내는 경우는 있죠."

흔히, 바둑을 수담(手談)이라고 한다. 손으로 나누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그만큼 직접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바둑을 두는 것은 단순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바둑을 두는 과정에서 나오는 다양한 전략과 전술은 곧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지혜이고, 위기에 봉착했을 때 취해야 할 자세 역시 인생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기에 바둑을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하는지 모른다. 풍남기원에 유독 젊은 사람이 아닌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많은 것도 사실은 그 때문이 아닐는지….

"탁! 탁!"

바둑판에 돌을 올리는 할아버지들의 주름진 손에서 세월의 흔적이, 인생의 도(道)가 느껴졌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선샤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기원#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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