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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냉장고가 막걸리로 가득찼다. 포천이동에 사는 친구가 선물로 가져왔다. 막걸리는 서민의 술로 난 농촌시골마을에서 태어난 탓에 막걸리를 초등학교 때부터 접할 수 있었다.
▲ 서민의 술 막걸리 최근 냉장고가 막걸리로 가득찼다. 포천이동에 사는 친구가 선물로 가져왔다. 막걸리는 서민의 술로 난 농촌시골마을에서 태어난 탓에 막걸리를 초등학교 때부터 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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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L 한 잔 어때? 오랜만에 만나서 MKL 먹으면서 회포나 풀어보자구"

MKL? 이게 뭐야? 한잔 하자는 걸 보면 술인건 분명한데 양주인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소주가 새로 나왔나? 와인인가?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대학교 졸업 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연락처를 알 수 없어 연락이 두절되었던 선배가 내 미니홈피에 남긴 글이다.

난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해 수소문한 끝에 선배의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고, 이내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다가 MKL의 정체에 대해서 물었다.

"형! 근데 MKL가 뭐여? 술이여?"
"MKL가 뭐긴 뭐여 막걸리지"
"잉? 막걸리? 하하하"


그럴듯 했다. 듣고 보니 막걸리의 이니셜을 따서 'MKL'라고 쓴 모양이다. 막걸리를 'MKL'이라고 하니까 느낌이 새삼 다르게 느껴졌고, 뭔가 쫌 있어보였다.

족구 끝나고 땀을 식히며 먹는 막걸리 맛은 일품

사실 이 선배와는 운동을 좋아해 대학 때부터 족구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해왔고, 족구 경기가 끝나면 족구장 한켠에 둘러 앉아 학교 인근 단골식당에서 공수해 온 김치 하나만 놓고 막걸리를 들이마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얼마나 마셨길래 들이마셨다는 표현을 썼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자면 이렇다.

하루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멤버들이 하나둘 족구장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수업이 일찍 끝난 선배와 동기들은 먼저 족구장에 모여 경기를 즐기고 있고, 나중에 도착한 멤버들이 가세하면 다시 편을 나누어 새로운 경기를 시작한다.

물론, 경기의 재미를 위해 일명 '내기 족구'를 한다. 내기는 당연히 막걸리 쏘기.

내기가 걸린 한 판 경기는 그야말로 혈전이다.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 플레이가 나오고 이내 경기가 끝나면 벌어질 막걸리 파티 때문에 주변에서 관람이나 응원을 하는 과 동료들의 박수가 터져나온다. 15점 3세트의 경기가 끝나고 경기에서 진 팀의 막내 둘이서 예비역 선배들로부터 돈을 건네받아 단골식당으로 향한다.

미리 연락을 하지 않았는데도 단골식당에서는 큰 고무 대야에 얼음을 얼려놓고 말통에 막걸리를 가득 담아 준비해놓고 있다. 여기에 막걸리 맛의 진수를 느껴볼 수 있는 찌그러진 양재기 그릇도 준비해 놓았다.

얼음과 막걸리, 그릇, 여기에 새콤한 김치까지 족구장 한켠에 있는 소나무밭(일명 '솔밭'이라고 부름)으로 공수가 되면 이내 자리가 만들어지고 말통에 들어있는 막걸리를 얼음에 쏟아 붓는다.

그릇으로 휘휘 저은 뒤 어느 정도 막걸리가 시원해지면 누가 퍼 줄 것도 없이 서로 달려들어 막걸리를 그릇에 담고, "지화자"를 외치며 막걸리를 들이키면서 족구 경기로 달구어진 몸을 달랜다.

막걸리 한 잔에 김치 한 조각이면 안주는 그만이다. 양재기 그릇에 담긴 막걸리를 단숨에 들이키고 입술 사이로 흘러내려오는 막걸리를 보면 옆에서 앉아있던 사람들의 입맛을 당기는지 슬쩍 다가와 막걸리 한 잔 달라고 접근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수업을 마치고 퇴근하시던 교수님까지도 자리에 함께 앉아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며 예전 추억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아무래도 '막걸리'라는 술이 묘한 마력이 있는 것 같다. 막걸리만 마시면 추억 이야기가 술술 나오니 말이다.

이렇듯 막걸리는 값싸고 다른 술에 비해 맛이 있어서 그런지 대학시절 선배들과의 우정을 돈독히 할 수 있었던 매개체임과 동시에 요즘같이 경기가 어려운 시절에 서민들의 애환을 함께 할 수 있는 동반자가 되어 주고 있는 존재인 듯 싶다.

농촌에서 막걸리는 최고의 술, 어린 내가 처음 접한 술도 막걸리

주전자를 조금 찌그려트려 볼까? 막걸리는 이런 주전자에 따라 마셔야 제 맛이다. 술잔도 조금은 찌그러진 양재기 그릇에 마셔야 막걸리를 마시는 맛이 난다. 이 주전자는 어린시절 논에 막걸리를 나르던 주요 수단이었다.
▲ 막걸리에 주전자에 마셔야 제 맛! 주전자를 조금 찌그려트려 볼까? 막걸리는 이런 주전자에 따라 마셔야 제 맛이다. 술잔도 조금은 찌그러진 양재기 그릇에 마셔야 막걸리를 마시는 맛이 난다. 이 주전자는 어린시절 논에 막걸리를 나르던 주요 수단이었다.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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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태어나서 술을 접한 때는 초등학교 4학년 즈음으로 기억된다. 물론 처음 접했던 술이 막걸리다.

벼농사를 짓는 농촌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자라다 보니 막걸리는 나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할아버지께서 약용으로 음용하시던 뱀술, 집에서 담그던 동동주도 있었지만 너무 독했던지라 어린 내가 입에 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런데, 막걸리는 농사일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고, 다른 술에 비해 맛도 있어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입에 대기 시작했다.

모내기나 추수를 하는 농번기를 맞아 논에 나가 일을 하다보면 새참시간이 다가오고 그 시간만 되면 집에서는 농사일을 도와주러 온 일꾼들에게 시원한 막걸리 한 잔 대접한다면 항상 나에게 술심부름을 시켰다.

술심부름을 갈 때면 막걸리를 받아 오라며 큰 주전자 하나를 주었는데, 자전거로 막걸리를 받아 논까지 이동하려면 한손은 자전거 핸들을 잡고, 다른 한손에는 막걸리가 가득 채워져 있는 주전자를 들고 가려면 중간중간에 몇 번씩 쉬어야 했다.

하여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쉴 때마다 조금씩 먹다보니 맛도 있고 해서 논에 도착할 때쯤이 되면 눈에 띄게 막걸리 양이 줄었고, 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논에서 일을 하고 있던 어른들이 "자전거 타고 오면서 한 잔 했구먼. 얼굴 벌건걸 보니…"하고는 "일루와. 그렇게 몰래 먹지 말고 한 사발 햐"하면서 놀리기도 했다.

어른들이 막걸리를 마시는 동안 옆에서 가만히 술을 마시는 걸 지켜보던 난 이미 한번 막걸리 맛을 본 뒤라서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어른들이 다시 논일을 하러 나가면 주전자에 남은 막걸리를 몰래 먹기도 했다.

한번은 막걸리를 먹고 논에 들어갔다가 중심을 잡지 못해 논에서 넘어져 옷에 흙물이 들어 어머니께 호되게 혼났던 기억도 난다.

이렇듯 막걸리는 어린시절 나에게는 술이라기보다는 일할 때면 늘 마시는 음료수 정도로 생각했었다. 더군다나 아저씨들이 술을 한 잔 나에게 건네줄 때면 어머니께서 설탕을 한 숟가락씩 넣어줘서 그런지 막걸리가 더 맛있게 느껴졌었다. 집에서도 막걸리를 마시면 어느 정도 포만감도 주고 한 두 잔 정도는 건강을 해칠 만한 양이 되지 않아서 그런지 농사일을 하면서 막걸리를 마시는 것에 대해 크게 나무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막걸리를 주로 먹던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난 다른 아이들에 비해 술을 조금 일찍 배운 것 같다.

막걸리 하면 파전을 떠올리는데 막걸리 안주는 따로 없다. 신김치 하나만 있어도 기가 막힌 안주가 된다. 사진속 오이와 고추도 막걸리 안주로서는 손색없다.
▲ 막걸리 안주? 웬만하면 다 되죠 막걸리 하면 파전을 떠올리는데 막걸리 안주는 따로 없다. 신김치 하나만 있어도 기가 막힌 안주가 된다. 사진속 오이와 고추도 막걸리 안주로서는 손색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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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막걸리로 유명한 포천 이동에서 막걸리 공장을 운영하는 친구가 놀러오면서 선물로 막걸리 한 상자(12병)를 가져다 주었다. 혼자 먹기에는 양이 너무 많아 마을분들에게 나누어주고 남은 막걸리를 생각이 날 때마다 들이키는데, 이럴 때면 항상 예전 막걸리를 나누어먹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송고합니다.



태그:#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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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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