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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풀잎 끝에 달려있는 이슬, 그 시간 싱그럽지 않은 초록생명은 없다.
▲ 이슬 풀잎 끝에 달려있는 이슬, 그 시간 싱그럽지 않은 초록생명은 없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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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세상이 가장 싱그러울 때는 언제일까?
어둠이 걷히고 아침햇살의 기운이 감돌뿐 아직 햇살이 비추기 직전 혹은 맑은 이슬방울에 햇살이 빛나는 짧은 순간이 아닐까 싶다.

그 시간에는 바람도 아직 잠에서 덜 깨어나 풀잎 끝 작은 이슬방울도 떨어지지 않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바람도 밤 새워 만든 이슬을 배려하는 것이다.

자연이 자연을 배려하듯 자연의 일부인 사람도 자연을 배려하며 살아갈 때에 그 삶의 풍성해진다.

이끼와 이슬 작은 이끼와 작은 이슬방울
▲ 이끼와 이슬 작은 이끼와 작은 이슬방울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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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성장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회자되고 있다.
경제제일주의에 빠져있는 이들이 자신들의 경제주의를 합리화하기 위해 '녹색'이라는 말을 붙인 것인데 녹색과 경제적인 의미의 성장은 함께 붙일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새만금에서 경제적으로 가늠할 수 없는 이득을 얻는다고 자화자찬하지만, 죽어가는 갯벌의 생명과 갯벌에 기대어 살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생명을 담보로 하고 위협한다는 것, 그것처럼 미련한 짓은 없다.

이슬 풀잎 끝에 송글송글 맺힌 이슬방울
▲ 이슬 풀잎 끝에 송글송글 맺힌 이슬방울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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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공사로 이뤄지는 4대강 살리기는 자연의 눈으로 보면 살리기가 아니라 죽이기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물길에서 자연은 생명의 기운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강줄기로 흘러오는 수많은 실개천들, 그들이 흘러가며 살려내는 수많은 생명들의 젖줄을 단숨에 끊어버리는 것이 4대강 살리기의 실체다.

국민의 혈세로 국민들이 누려야할 초록생명을 죽이는 일을 밀어부치는 정부는 과연 국민의 정부인가? 자연, 초록 생명을 배려하지 않는 녹색성장의 저변에는 권력과 경제적인 이익에만 눈먼 자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으로 치장하는 것이며, 녹색 생명을 무참하게 죽이는 일도 '녹색 성장'이라는 말로 포장하는 것이다.

이슬 속에 피어난 꽃 맑은 이슬방울을 바라보면 나의 마음도 맑아진다.
▲ 이슬 속에 피어난 꽃 맑은 이슬방울을 바라보면 나의 마음도 맑아진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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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 흐르던 강물, 그 곁에서 실컷 목을 축이고 내어놓으며 맑은 이슬을 만들던 초록생명들이 시멘트로 무장한 직선의 강에서도 이슬을 내어놓을 수 있을까?

아니, 뿌리조차 내리지 못하고 목말라 말라죽을 것이다.
내어놓은 이슬은커녕 제 몸 축이기도 힘들만큼의 적은 물로 연명을 해야할 터이다.

현대인들은 자연을 보는 눈을 잃어버렸다.
도시에 사는 이들뿐 아니라 시골에 사는 이들 조차도 실명되어 자연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경제성'이라는 말 한 마디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다.

그것이 맘몬의 계획이었을 것이다.
경제 혹은 성장이라는 말이면 모든 것을 굴복시킬 수 있는 힘을 갖기 위해 그동안 치밀하게 인간의 삶에 적당한 편리성을 제공하면서 좀먹어 들어왔고, 인간을 길들여진 것이다.

이슬방울과 서양채송화 이슬방울 속에 새겨진 서양채송화
▲ 이슬방울과 서양채송화 이슬방울 속에 새겨진 서양채송화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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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우리는 이전 세대보다 물질적으로 더 풍부해서 더 풍족하게 사는지, 앞으로도 우리의 소비지향적인 욕심을 계속 채워줄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든 최첨단 과학기계들이 우리의 삶에 족쇄로 다가오고 있으며, 이제 인간은 기계의 노예가 되어 그냥 자극적인 웃음에 멍하니 시선을 주는 것이 최선의 쉼인 것처럼 여겨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녹색성장의 시대에서는 행복의 가치도 얼마나 지출을 했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며, 끊임없이 자신을 상품화 시키지 않으면 매장되는 초경쟁사회를 살아갈 것이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는 만큼 불행한 시간도 늘어날 것이다.

조금 더디가도 온 생명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그러나 우리의 시대는 이런 이들이 좌경 불법폭력단체로 매도되는 시대다. 이 얼마나 끔찍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그럼에도 여전히 저 초록생명들은 이른 아침이면 맑은 이슬방울을 내어놓는다. 자꾸만 이슬방울에 눈이 머무는 까닭이다.


#이슬사진#녹색성장#새만금#4대강 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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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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