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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평소에 인터넷 메신저로 연락을 하고 지내는 장애인 형 한 분이 있다. 그 날도 어김없이 메신저에 접속 했는데 그 형이 접속해 있었다. 장애인 운동을 하는 분이라 보통 대화명을 보면 '장애인 차별 철폐하라!' '장애인도 버스 타고 싶다.' '장애해방 새 세상을 위해 투쟁!' 이라는 구호를 적혀져 있다.

 

 

하지만 그날은 형답지 않게 투쟁 구호를 대화명으로 하지 않았다. 대신 '장애인가족들 가족이 아니라 웬수다' 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평소와 다른 대화명에 나는 궁금해서 형에게 말을 걸었다.

 

"형, '장애인가족들 가족이 아니라 웬수다'는 게 무슨 얘기에요?"

"뭐겠노? 허허 인터넷 상으로 이야기 하려니 느낌이 안 사네."

"장애인 가족들이 장애인을 더 심하게 차별 한다는 거에요?"

"엉 그런 거랑 비슷한 거지. 너 오마이뉴스에 기사 쓴다고 했제? 그럼 우리 사무실 한번 와라. 나 말고 다른 사람 소개 해줄테니...."

"네, 뭐 안 그래도 그 사무실에 내일 볼일이 있으니 갈게요."

 

"누나는 밖에 잘 못나가고 사람도 안 만나니깐 휴대폰 쓸 일 없잖아!"

 

오죽 답답했으면 나 같은 비전문적인 시민기자를 찾나 싶어서 XX 형이 활동 하고 있는 사무실에 다음 날 아침 일찍 갔다.

 

"형 어제 메신저에서 이야기 나눈 거 이야기 해주세요."

"알았다. 잠시 있어봐라. 나 말고 다른 장애인들도 소개시켜줄게."

 

XX 형은 자신 뿐 만 아니라 다른 장애인들도 같이 이야기하기 위해서 잠시 전화를 하셨다. 30분 쯤 지나자 전동 휠체어 2-3대가 사무실에 더 들어왔다. 나는 XX 형이 피해 사례를 접수 받아 가족들에게 차별받은 장애인들을 소개 시켜주려는 줄 알았다. 하지만 사무실에 오신 분 모두 내가 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 분들이었다. 그리고 그 분들 모두 집에 나와서 자립생활을 하며, 자신의 권리에 대해서도 세상에 목소리를 낼 줄 아시는 장애인 분들이었다. 이런 분들이 가족들에게 어떤 차별을 받는지 의아해서 다짜고짜 질문을 했다.

 

"XX 형님, 여기 계신분 모두 집을 나와서 자립생활 하시고, 투쟁하는 장애인 운동가들인데 가족들에게 차별 받을 이유가 있나요? 집을 나왔으면 가족들도 사실 신경 안 쓰는 거 아니에요?"

"에이 꼭 가족들이랑 같이 지내는 장애인만 차별 받냐? 우리도 차별 받는다"

 

몇 달 전부터 XX 형은 인터넷도 쓰지 않는데 자신의 이름으로 된 인터넷 청구서를 매월 고지 받는다고 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인터넷 서비스 센터에 문의를 하니 XX 형의 가족들이 사는 집 주소로 인터넷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했다.

 

"형 그럼 가족들이 인터넷 비 납부 하는 거에요?"

"아니. 가족들이 납부라도 하면 내가 이렇게까지 화를 내진 않겠지. 왜 내 이름으로 인터넷을 신청 하냐면 장애인이 인터넷 신청하면 이용료 50% 할인 되거든. 그걸 가족들이 이용 한 거야. 청구서는 꼬박 나에게 날라 오고 돈도 내가 내고 말이야."

"정말요? 그럼 가족들에게 말해보시지 그냥 몇 달 동안 계속 가만히 있으세요?"

"가족들한테 이야기 하면 뭐라고 말하는지 아냐? 같은 가족인데 당연 한 거 아니냐며 오히려 나한테 화를 내. '지금까지 먹여주고 대소변 받아주었는데 니가 그러면 되냐고'라고 화를 내지."

"진짜요? 도움은 커녕 장애인이라고 가족들이 더 이용해 먹으려 하네요."

 

xx 형 뿐 아니라 평소에 인사를 하고 지냈던 xx누나가 자신의 사례를 이야기 하시 시작했다.

 

"얼마 전 까지 난 내 명의로 된 휴대폰도 갖지 못했어?"

"왜요?"

"내 남동생이 내 명의로 휴대폰을 등록했었거든. 휴대폰도 인터넷처럼 장애인 할인이 많아서 말이야. 난 남동생 이름으로 등록하고 말이야."

"아... 남동생이 누나 명의로 신청해서 장애인 할인을 받으려고 했군요?"

"그치. 그리고 그때 뭐라고 했는줄 아냐? 누나는 집 밖에도 잘 못나가고 폰도 많이 안 쓰니깐 장애인 할인 받을 필요 없다고 하더라. 참 어이가 없더라. 내가 지보다 사람들 많이 만나고 폰도 많이 쓰는데 나쁜 놈..."

"그럼 결국 지금은 명의를 바꾸 신거에요?"

"어. 내가 소심해서 남동생이 쓴 내 명의를 취소하지 못하고 있다가, 아는 활동보조인 언니가 그건 가족이라도 잘못 된 거라면서 명의를 취소하는 걸 도와줬어. 그래서 지금은 내 명의로 쓴다."

"휴 그래도 다행이네요."

 

"알지도 못하는 약값 3000만원이 나에게 청구 되었더라."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XX 형이랑 같이 사는 OO형은 그런 일 보다 더 큰 일이 있었다며 나에게 말했다.

 

"한 달에 해봤자 인터넷비 1-2만원? 휴대폰 값? 그 정도야 내 경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그래요? 빨리 이야기 해주세요."

"얼마 전에 나도 이상한 청구서가 하나 날라 왔다. 뭔가 싶어서 열어 봤더니 3000만원 짜리 약을 샀더라고. 난 절대 약 산적 없는데 뭔가 싶어 어머니한테 전화해보니 아버지가 내 이름으로 약값을 청구 했던 거야."

"헉.... 말 문이 막히네요. 3천만원이면 애 이름도 아니고, 혼자 살아가는 장애인들에게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돈이 아니잖아요?"

"그치 내가 돈이 어디 있냐? 일을 하려고 하면 매번 튕기기 십상이고, 정부에서 주는 장애인 보조금도 한 달에 50만원 남짓 밖에 안 되. 이것 가지고는 3천만원 절대 못 갚지. 난 평생 빛쟁이가 된 거지. 가족들 이런 행동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 집에 나왔는데 끝까지 괴롭히네."

 

"니가 여기 왜 있노?"

 

이야기를 다 듣고 여기 모인 분들이 자립하지 않고 집에서 지냈을 때 가족들과의 관계가 어땠는지 궁금해서 질문을 했다.

 

"형 그럼 어릴 때도 가족들에게 차별 받았어요? 아니면 집에 나와 살게 되어서 차별 받게 된 거에요?"

"흠.. 이 이야기는 절대 맨 정신으로 얘기 못했던 건데 특별히 오늘 얘기 한다. 어릴 때 난 주로 방에서 누워서 지냈어. 잠시 학교에 갔다 오는 시간을 제외 하고는 언제나 혼자서 방에 누워 있었지. 근데 가끔 큰 누나가 내 방에 들어와서 니가 여기 왜 있냐며 나를 툭툭 발로 차는 거야. 어릴 때라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크고 나니 큰 상처로 남더라. 단지 장애인 동생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누나에겐 나는 원망스러운 존재였던 거야. 아직 까지 그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내가 왜 태어났나 싶기도 하고..."

"흠... 그럼 지금 자립하지 않고 집에 사는 장애인들은 대부분 이런 대우를 성인이 되어서도 받고 있겠네요?"

"대부분 그렇겠지. 정말 심각하지?"

"네, 전혀 생각지도 못했네요."

 

나는 장애인 가족만큼은 자신의 아들, 딸, 형, 누나, 언니이기 때문에 장애를 차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얘기를 나누어 보니 그게 아니었다. 사회에서 차별 받는 것도 서러운 장애인인데 같이 함께 삶을 나누었던 가족조차 장애를 더 더욱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이야기를 나누었던 지인들 외에 혼자 자립하지 못하고 집구석에서 평생을 지내고 있는 장애인들의 현실은 어떻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장애인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사회에서도 가족들에서도 환영은커녕 차별받는 사실, 참 답답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뷰와 필자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bsmbsh1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장애인,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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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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