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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생각엔… 내가 이 일을 몇 살 때까지 할 수 있을 것 같냐?"

3년 전, 방송작가로 처음 일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나보다 먼저 방송작가의 길로 들어선 한 친구와 점심식사를 하다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 친구는 난감한 듯 한참 동안 숟가락만 물끄러미 쳐다봤다. 동병상련. 괜히 아픈 데를 건드렸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멋쩍게 웃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 늦은 오후, 다시 방송국 화장실에서 우연히 만난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아까, 네가 한 질문 있잖아."
"응? 응…."
"내 생각엔 오십 세까지는 할 수 있을 것 같아."
"오십 세? 진짜?"
"응. 대신 한 가지 조건만 지킨다면."
"그게 뭔데?"
"원고료 올려달라고 안 하기."

우리는 폭소를 터트렸지만 뒤끝은 쓰렸다. 그 당시만 해도 방송작가들에게는 원고료 인상 여부가 가장 큰 문제이자 관심거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원고료 운운할 때가 아니다. 출근한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몇 년 전부터 어렵게 투쟁하며 공론화시켰던 원고료 인상 이야기는 한 마디로 '택'도 없어졌다.

프로그램과 함께 죽고 사는 작가들

한국방송작가협회. 자료 사진.
 한국방송작가협회. 자료 사진.
ⓒ 김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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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음악방송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개편 시즌이 되면 항상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경제논리에 비추어봤을 때 라디오의 음악프로그램은 눈에 보이는 경제적 '가치'나 '효용'을 창출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편 대상 1위가 된다.

프로그램이 없어지면 그 프로그램에 함께 했던 작가도 명을 함께 한다. 프로그램이 죽으면 같이 죽고, 살면 같이 산다. 개편은 6개월마다 이루어진다. 따라서 방송작가의 수명은 6개월에 한 번씩 저승사자 앞에 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것으로 결정된다. 물론 다른 프로그램으로 투입될 경우도 있지만 그것도 잘됐을 때의 이야기다. 작가만 죽는 게 아니고, 리포터, 엔지니어, 카매라맨, VJ 등 비정규직들이 줄줄이 연이어 '집으로' 가는 사태가 일어난다.

길지 않은 방송작가의 경험이었지만 가장 큰 출혈은 이번 봄 개편에 일어났다. 유례없는 경제 위기에 미디어법이 국회를 통과되느냐 마느냐를 놓고 연일 사무실 분위기가 뒤숭숭하던 무렵이었다.

어느 날부터 평소 눈인사를 나누던 작가들이 보이지 않았다. 사무실이 썰렁할 만큼 빈 자리가 많았다. 처음에는 외근이나 출장을 간 줄 알았다. 그러다 며칠 후 책상마저 대폭 줄어들게 되자 심상치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다. 개편 뒤 프로그램이 축소 또는 종영돼 일이 대폭 줄어들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예 그만 두게 된 것이다.

방송작가에게 책상을 허하지 말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KBS 본관과 신관. KBS는 작가 대신 PD에게 직접 글을 쓰게 하는 PD집필제시행 여부를 놓고 논란을 일으켰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KBS 본관과 신관. KBS는 작가 대신 PD에게 직접 글을 쓰게 하는 PD집필제시행 여부를 놓고 논란을 일으켰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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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스로를 '연예인'이라고 부른다. 잘나가는 스타급 연예인이 아니라 행사 뛰고 나서 일당받는 연예인을 말한다. 방송작가에게는 자기 소유의 책상도 없고 각자에게 주어지는 컴퓨터도 없다. 자기 노트북을 들고 와서 근무한다. 여기에는 특별한 전설(?)이 전해내려온다.

몇 해 전, 어느 지역 방송국작가가 불법해고에 관한 소송을 걸었는데 그 작가에게는 개인 소유의 책상이 있었다고 한다. 개인 소유의 책상이 곧 정규직을 의미하는 하나의 법적근거가 되어 그 방송작가는 승소했다. 그러나 그러한 판례가 있고 나서 그 뒤로부터 작가를 비롯한 모든 비정규직에게는 책상을 허하지 말라는 시책 아닌 시책이 내려졌다는 전설이다.

책상뿐만이 아니다. 휴가 보너스, 명절 선물 등과 같은 품목 역시 정직원으로 동등하게 대우한다는 법적근거가 된다는 근거 하에 일절 없다. 퇴직금, 보험 같은 것은 처음부터 꿈도 꾸지 않았다. 이러한 전설이 한두 개가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 허울 좋은 방송작가라는 직업은, 안으로는 곪아터지고 악취나는 전설을 가득 안고 있는 전설의 고향이다.

그러나 방송작가를 비롯한 방송국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화나게 하는 것은 비단 이런 것만은 아니다. 6개월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반복하며 살아야하는 '허무'의 반복이 이 일을 계속해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고민하게 만든다.

다음 개편 때 프로그램이 없어지면 실직자 신세가 된다. 따라서 이러한 위험부담 때문에 대부분의 남자 작가들은 일찌감치 전업을 한다. 그래서 남자 작가들을 보기가 여대에서 남학생 보기만큼 힘든 것이다.

제 발로 나가는 비정규직 방송인들

그렇다면 여성작가들은 이러한 해고부담이 가벼울까. 절대 그렇지 않다. 내 주위의 작가들은 거의 미혼이다. 대부분 다른 지역에서 와서 혼자 자취를 하는 친구들이 많다. 서울, 완도, 광주, 군산 등 방송작가가 좋아서 이 일로 업을 삼기 위해서 일부러 이 타향에 와서 사는 것이다.

며칠 전 한 후배 아나운서와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송별회를 겸한 자리였다. 아직 서른을 넘기지 않은 이 남자 후배 아나운서는 곧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길 예정이라고 했다. 그가 입사한 지도 만 2년. 계약직종의 하나인 아나운서의 계약기간은 2년이다.

물론 인사평가에 따라 재계약할 수도 있고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희박하게나마 있지만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그는 뻔히 잘 알고있다. 그래서 이제 2년을 채우고 '제 발로' 나가는 것이라 했다. 보다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떠난다는 것이 그의 말이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단다.

방송국 직원들이 자주 하는 말이 방송작가들은 왜 이렇게 자주 바뀌냐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자주 바뀐다. 3년이 채 안 된 나도 어느덧 중견의 입장이 되었으니 할말 다 한 셈이다. 서로 알 만하면 나가고, 얼굴 익힐 만하면 그만둔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왜 오래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시간이 가도 좀체 오를 생각을 하지 않는 원고료와 과도한 업무, 6개월마다 반복되는 풍전등화의 운명 앞에 자신의 청춘과 삶을 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6개월의 '시한부 인생' 자처한 바보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드라마국 회의 중인 장면.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드라마국 회의 중인 장면.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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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방송작가들의 잦은 출입은 프로그램의 질과 곧바로 연결되게 되어있다. 제 아무리 뛰어난 방송작가 아카데미를 수료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한 번의 현장경험만은 못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제 막 일이 손에 익을 무렵이 되면 그만두게 된다. 그러면 다른 신입작가가 와서 다시 모든 일을 배우게 된다. 어렵사리 배워놓으면 또 일을 그만두고 그러면 다시 원고료가 싼 신입작가를 뽑고…. 또 그러한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방송국으로서도 엄청난 손해다. 기껏 밑빠진 독에 물붓는 것밖에 안 된다.

비단 방송국뿐만이 아니다. 모든 사업체나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잘 키운 인재는 그 몫을 한다. 일에 대한 경험과 연륜을 몸소 체득한 근로자를 해고하는 것은 당장 눈앞의 경제적 가치와 효용만 생각하는 아주 짧은 식견이다.

그러면 '방송작가를 그만 때려치우고 다른 정규직을 찾아보면 될 거 아니냐'는 얄궂은 소리가 뒤따른다. 그런데 한두 사람 그렇게 마음먹는다고 해서 문제의 근본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난파하기 직전의 배는 그 키를 쥔 선장에게 있다. 한두 사람 구명보트를 입는다고 해결될 일인가.

그러나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배운 게 도둑질밖에 없어서'가 아니라 이 일을 무척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바보스럽게도 이 방송작가라는 일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생색내며 떡볶이를 먹는 소수의 위선이 아니라, 더운날 떡볶이를 만들고 있는 다수의 땀방울을 위해 그들은 바보를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방송작가의 마지막 자존심이기도 하다. 이 자존심마저 무너지면 그야말로 '껍데기'에 불과하다.

참 좋은 사회란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사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주 단순하고 명료한 명제이지만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분에 넘치는 명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백번 양보해서 하고 싶은 일까지는 아니어도 하던 일은 계속 하면서 살 수 있게라도 해주어야할 것 아닌가. 이것마저 버거워 보인다.


태그:#비정규직,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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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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