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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크라잉넛', '레이지본'이 대중의 시선을 받으면서 사람들은 인디음악이라는 장르에 익숙해져 갔다. 음악클럽이 밀집한 홍대 앞에 '인디밴드의 메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일 것이다.

당시 유행하던 파란 화면의 PC통신 유니텔에 모던락 소모임(모소모) 동호회가 생겨났다. 회원들의 음악적 교류는 매우 활발했고, 그 흐름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스웨터'의 신세철, '노이즈 가든'의 윤병주,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 그리고 '델리스파이스'의 김민규, 윤준호가 대표적 인물이다. 우리나라 모던락 계보에서 첫 손 꼽히는 인물 중 하나인 델리스파이스의 드러머 최재혁을 지난 6월 8일 만나 그의 10년 인디음악 인생을 함께 되돌아보았다.

인터뷰 중인 최재혁 씨
 인터뷰 중인 최재혁 씨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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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의 첫 만남

그는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가수협회에 등록되어 있던 아버지'의 영향이라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음악을 좋아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집에서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 나나 무스꾸리의 음악을 늘 들으며 자랐어요."

그러다 중 3때 반 친구의 기타연주에 반해 그도 기타를 잡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때는 학교 밴드부를 창단했다. 대학에 입학한 뒤에는 밴드 '아웃사이더'에 들어가 기타 대신 드럼스틱을 쥐게 되었다. 그 곳에서 신세철, 윤준호를 알게 되었고 군 제대 후 윤준호의 소개로 델리스파이스에 합류해 드러머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델리스파이스, 오메가 3 그리고 라나타나까지

델리스파이스는 '차우차우'로 시작해 '고백' '미싱유'까지 6장의 앨범을 9년 동안 선보이면서 많은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지금은 앨범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델리 스파이스는 휴식이 필요했고 지금은 암묵적 휴지기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팬들은 매년 여름 인천 송도에서 열리는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이나 올해로 3회째를 맞이하는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등의 공연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다. 그는 "팬들이 잊지 않고 우리를 페스티벌에 초대해 줘서, 거기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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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메가3 .
ⓒ 오메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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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그는 윤준호, 고경천과 함께 '오메가3'라는 그룹으로 더 많은 공연을 하고 있다. '오메가3'라는 새로운 그룹을 결성한 계기에 대해 그는 '한 카페에 거의 매일 모이다보니 서로 마음이 잘 맞는다는 것을 깨달아서'라고 했다.
"저에겐 밴드의 음악적 색깔이 중요할 뿐 아니라 사람도 중요해요."

그들은 오메가3로 한 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크고 작은 클럽 공연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또 새로운 팀 '라나타나(Lanatana)'를 준비하고 있다.

"델리스파이스가 오래된 연인 같은 관계라면 오메가3는 언제 만나도 부담 없는 친구 같고, '라나타나'는 지금 막 뜨거운 연애를 시작한 단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서로 뜻이 맞는 한진영('마이앤트메리' 멤버), 안건(전 '삼청교육대') 그리고 한 명의 여성 멤버와 함께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왜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을 모으고,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일까?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음악,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어서'라고 한다.

"상업적인 성공을 추구하기 보다는 진정성이 담긴 음악을 하고 싶어요. 음악시장이 어렵고 바닥을 치고 있는데 뮤지션이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좋은 음악을 만들어 땀 흘려 연습하고 공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공연장에 와주고, 음반을 사서 들어주는 팬들이 있어서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그는 "음반시장의 제도적 모순을 말하기에 앞서 '더 좋은 음악을 만들고 더 멋진 공연을 보여주는' 음악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음악인도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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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델리스파이스 1집 .
ⓒ 델리스파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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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인들을 위한 축제인 '한국 대중음악 시상식'이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의 갑작스런 지원 취소로 인해 행사 개최가 지연되는 위기를 겪었다. 음악계도 정치적인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완전히 비껴나 있지 않은 것이다. 그는 음악인들도 많은 시민들과 소통하고 문화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사회현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갖기 바란다고 말했다.
"사회의 변화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어야겠죠."

다만 음악 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종교적 편 가르기에 휩쓸리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뮤지션으로 10년을 살아온 그에게 인생 최고의 순간은 7살 난 딸에게 인정받았을 때라고 한다. 딸이 어릴 때는 공연장 소음이 너무 커 데려올 수 없었는데, 지난달 7일 클럽 '타(打)'에서 마침내 그의 딸이 아버지의 공연을 관람했다.

"나중에 아빠처럼 멋진 가수가 되겠다고 하더군요. 그 순간 음악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인디음악의 전사 최재혁. 그러나 그는 어린 딸의  찬사에 최고의 기쁨을 맛보는 순진한 아빠이기도 했다.


태그:#델리스파이스,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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