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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돌이가 위에서 지켜보고 잇다.
▲ 아롱이,구순이 데이트 장면 구돌이가 위에서 지켜보고 잇다.
ⓒ 김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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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로 치자면, 후임자인 구돌이가 선임자인 아롱이에게 꼼짝 못해야 되는데, 거꾸로 아롱이가 늘 구돌이에게 쫓겨 다닌다. 그러던 아롱이가 이변을 일으켰다. 밤만 되면, 예전 둥지였던 가지마루나무 윗가지에 가 앉는다. 그러고 조금 있으면, 구돌이 짝인 구순이가 밑 둥지에서 올라와서 가만히 옆에 앉는다. 아롱이는 엉덩이를 약간 흔들면서 반긴다.

아롱이, 구순이가 데이트 중 구돌이가 지켜봄
▲ 아롱이와 구순이, 그리고 구돌이 아롱이, 구순이가 데이트 중 구돌이가 지켜봄
ⓒ 김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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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달아 구돌이도 올라온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구돌이가 아롱이,구순이 데이트를 훼방 놓거나 공격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뒤편의 나무가지나, 밑의 나무가지에 조용히 앉아서 주시할 뿐이다.

구순이는 구돌이에게서 싫증을 느낀 것일까. 아니면 구돌이로부터 더 큰 관심을 끌기 위해 잠시 한 눈을 파는 척 하는 건가. 낮에 열심히 단풍잎을 물어다가 둥지를 치장하는 구돌이의 수고도 외면하고 밤마다 아롱이를 찾아가는 이유가 뭘까.

구돌이 부부와 초롱이가 함께 자고 있다.
▲ 3마리 합방 구돌이 부부와 초롱이가 함께 자고 있다.
ⓒ 김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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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또 열불이 났다. 가엾다고 여긴 아롱이가 엉뚱한(?) 짓을 하고 있다는데 대한 실망감이다. 유부녀를 꼬드겨서 데이트하는 가정파괴범 아롱이를 가만 내버려둘 아내가 아니다. 마침 쥐고 있는 부채를 가지고 나뭇가지를 휘저어 버렸다.

아롱이가 고무나무 둥지에서혼자 잔다.
▲ 아롱이 독수공방 아롱이가 고무나무 둥지에서혼자 잔다.
ⓒ 김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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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비백산한 아롱이와 구순이, 그리고 덩달아 혼이 난 죄없는 구돌이는 그날 어떻게 밤을 지냈는지 확인을 못했다. 그 다음날 구돌이 부부와 초롱이가 가지마루 둥지에서 합방한 것이 목격되었다. 그 후부터 아롱이는 벵갈고무나무 둥지에서 독수공방을 하고, 구돌이 부부는 가지마루나무 둥지에서, 초롱이는 가지마루나무 가지 위에서 잠을 잔다.

가지마루 나무 둥지가 그들의 잠자리다.
▲ 구돌이 부부 보금자리 가지마루 나무 둥지가 그들의 잠자리다.
ⓒ 김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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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조의 변종인 비실이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는 병 든 새처럼 힘없이 비실거렸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비실이가 아닌 튼튼이로 변신하고 있다. 비실이의 짝인 비순이는 어느 암컷에게는 없는 양쪽 볼에 흰색 네모무늬가 있다. 그래서 다른 암컷과 쉽게 구별된다. 비실이 부부는 언제나 함께 다닌다. 찰떡궁합으로 금슬이 아주 좋다.

새장 안이 좋아하는 자기 집이다.
▲ 비실이 부부의 보금자리 새장 안이 좋아하는 자기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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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실이 부부의 잠자리는 새장 안이다. 다른 좋은 곳을 다 마다하고 그곳을 택한 이유를 나는 잘 모른다. 태어나면서부터 살았던 새장의 친숙함이 그 이유일까, 아니면 먹이가 가까이 있는 편리함 때문일까. 사람도 이 친숙함과 편리함 때문에 털어야 할 짐을 벗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둥지 안의 구돌이 부부의 다정한 모습
▲ 구돌이 부부 둥지 안의 구돌이 부부의 다정한 모습
ⓒ 김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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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롱이 부부는 새 식구가 온 이후로 사이가 좋지 못하다. '밥 따로 국 따로' 다. 누구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어제는 초롱이가 비실이 부부 둥지 앞에서도 퇴짜를 맞고, 다시 구돌이 부부 둥지로 들어가려다가 쫓겨난 후, 둥지 앞 나뭇가지에 앉아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꼴을 보인다. 아롱이는 고무나무 둥지에서 홀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나무에 앉을 때도 멀리 떨어져 앉는다.
▲ 아롱이와 초롱이 사이 나무에 앉을 때도 멀리 떨어져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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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아롱이 부부와 구돌이 부부 사이가 미묘하기 짝이 없다. 구돌이 짝인 구순이가 아롱이를 좋아하는 것 같고, 아롱이 짝인 초롱이는 구돌이와 비실이를 좋아하는 모양새다.

아내는 화를 내고 있다. 아롱이 때문이다. 아롱이가 '바람을 피우기 때문'이란다. 아롱이가 구순이를 좋아하기 때문에 초롱이가 '홧김에 서방질'을 한단다. 아내는 혼자서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어 가고 있다. 측은지심의 상징이던 아롱이가 졸지에 바람둥이가 되어, 미움의 대상으로 그 역할이 바뀌었다.

단풍나무 위에 홀로 앉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 외로운 초롱이 단풍나무 위에 홀로 앉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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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아롱이와 초롱이가 사이가 좋아져야 우리 집에도 평화가 오겠다. 초롱아! 아롱아! 처음 우리 집에 올 때처럼 다정하게 지내면 안 되겠니?


태그:#금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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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어난 해: 1942년. 2. 최종학력: 교육대학원 교육심리 전공[교육학 석사]. 3. 최종이력: 고등학교 교감 명퇴. 4. 현재 하는 일: '온천세상' blog.naver.com/uje3 (온천사이트) 운영. 5. 저서: 1권[노을 속의 상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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