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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사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다. 공립학교 교사이다. 이른바 '교육공무원'인 셈이다. 1990년 '대한민국 교육공무원'의 직책을 중등학교에서 성실히 수행할 것을 '대한민국'에 의해 명(命) 받은 '국가공무원'이다. 나는 국가공무원으로서, 교육공무원으로서 우리 조국의 희망찬 미래를 열어나가는 주역들을 '아름답게 키울' 의무를 대한민국으로부터 부여받았다.

 

따라서, 나는 한 명의 대통령을 위한 국가공무원도, 한 명의 교육부장관을 위한 교육공무원도, 한 명의 교육감을 위한 지방공무원도, 한 명의 학교장을 위한 교사도 아니다. 그냥 어디서든지 학생들이 '옳고 그름을 가를(구분할) 수 있도록 치는(기르는)'는 자유로운 교사이다. 학생 이외의 그 어떤 힘도 나를 구속할 수 없다. 나의 언행을 구속할 수 있는 건, 학생들을 대하는 교사로서의 내 양심뿐이다.

 

나는 국어 교과 교사이다. '우리 민족의 말과 글 속에 담겨 있는 우리 한민족의 얼'을 학생들에게 전달하여, 그들이 더 나은 조국의 미래와 개인의 삶을 열어나갈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국어 교과 교사이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교과 및 담임을 맡고 있는 교사이다. 아침 8시 이전에 출근하여 낮에는 담당교과를 가르치고, 밤에는 야간자습을 하는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진로진학에 대해 상담을 하고, 가끔은 각종 공문서 처리를 위한 일을 하는 등 거의 매일 15시간 이상을 학교에서 지내며, 밤 11시가 훌쩍 넘은 시각까지 일을 해도 해도 끝이 없어, 요즘에는 체력이 거의 바닥나 있는, 나름대로 '바쁜 척 하는' 시골 농어촌 소재 고교의 교사이다.

 

미래에 대한 꿈을 꾸며, 학교에서 자기주도 학습을 통해 열심히 대입 수능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생들과 매일매일 몸과 마음을 부딪히며 살아가는 평범한 교사 중 한 명이다.

 

오늘 밝히는 내 의견은 현재 내가 속한 학교와 내가 속한 교육청과는 전혀 무관함은 물론, 그 어느 교육단체나, 그 어느 정치단체와는 아무런 관계로 없는, 시골 농어촌 소재 공립고등학교에 근무하는 일개 교사의 순수한 개인 의견임을 분명히 밝힌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학생 이외의 그 어떤 힘도 나를 구속할 수 없다. 나의 언행을 구속할 수 있는 건, 학생들을 대하는 교사로서의 내 양심뿐이다.

 

그러므로, 오늘 나의 발언을 놓고 그대들을 포함한 그 어느 누구도 시비 걸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대한민국 헌법 21조에 보장된 언론과 표현의 자유 원칙에 따라, 그저 나의 자유 의사를 자유롭게 언론에 게재할 뿐이다. 민주공화국(헌법 제1조)인 대한민국에 있어서 정치상의 의사결정은 종국적으로는 국민에 의해 하게 되지만, 적절한 의사결정을 이루려면 그 전제로서 충분한 정보와 거기에 기초를 두는 논의가 필요하다. 정보를 이득, 그리고 논의를 이루기 위해서 표현의 자유는 필요 불가결한 권리이다.

 

말하자면 '언론과 표현의 자유(헌법 제21조)'는 민주주의의 근간(根幹)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공무원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히 지니고 있는 언론과 표현의 권리에 따라, 그저 나의 자유 의사를 자유롭게 언론에 게재할 뿐이다. 이는 마치 종교의 자유(헌법 제20조)에 따라 그대들도 특정 종교를 표방하거나 관련 종교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대들도 현재의 신분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의 한 국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헌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

 

이처럼 엄연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국민들의 눈과 입을 강제로 틀어막으려는 행위, 또는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존재하는 각 언론사를 장악하려는 행위는 본래부터 불가능하다. 어찌 '남'이 '나'가 아닐진대, '남'이 '나'의 생각과 눈과 입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그런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무척 '건방진' 사람이거나 '무모한' 사람일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제, 내 자식이 주인공이 될 미래와, 내가 교단에서 만나고 있는 학생들이 이끌어 나갈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헌법에 따른 권리와 의무를 지고 자유에 따르는 책임을 질 줄 아는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자유로운 생각을 피력하고자 한다.

 

  나는 전교조도, 한교조도, 한국교총도, 뉴라이트도 아니다. 아니, 그런 건 애초부터 모른다. 나는 그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일 뿐이다. 지난 19년이 넘도록 학생들을 가르쳐 왔고, 아마 앞으로도 10년 정도 학생들을 더 가르칠 것 같다. 정치적 행위라는 것은 관심조차 없다. 그저 내 양심에 따라, 판단에 거리낌이 없으면 말하고 행동하고, 거리낌이 있으면 입을 닫고 행동하지 않는다.

 

교사인 '나'의 언행을 지배하는 건 '학생'들이다. 마치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처럼... 대한민국의 권력이 대통령으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고, 교육의 권력이 교육부장관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고, 학교의 권력이 학교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닌 것처럼... 따라서, 학교의 장(長)도, 교육감도, 교육부장관도, 대통령도 내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지 못한다.

 

그저 '나'를 지배하는 것은 오직 내가 만나는 그들, 즉 학생들이다. 그들로 인해 나는 살아 있고,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그들이 없으면 교사인 '나'도 없다. 학생들 앞에서야 나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 그래서 나는 내 존재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학생들의 눈망울이 두렵다. 미래 사회의 기성세대가 되어 나중에 우리 세대를 평가할, 그들의 드러나지 않는 미래와 그들의 냉철하고 성숙한 이성(理性)이 두렵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두려움'이 더더욱 '나'를 자유롭게 한다. 존재하게 해주는 원인(原因) 곧 구성원들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면, 더 이상 그 존재는 가치가 없어진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구성원의 소중함을 무시하는 조직이나 리더는 더 이상 그 명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가족 구성원이 없는 가장(家長)이 있을 수 없고, 사원(社員) 없는 사장(社長)이 있을 수 없고, 학생이 없는 교사(敎師)가 있을 수 없고, 교사(敎師)가 없는 학교장(學校長)이 있을 수 없고, 국민(國民)이 없는 대통령(大統領)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따라서, 가장은, 사장은, 교사는, 학교장은, 대통령은 그 구성원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사랑해야 한다. 적어도 나는 학교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인정한 교과서를 통해 그렇게 가르친다. 또한 적어도 전국 60만 명 정도가 치르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 및 사회탐구 문제에서도 위에서 언급한 내용은 아주 '기본적으로' 등장하곤 한다.

 

  현 국가(國家) 구성의 3요소는 '국토(國土), 주권(主權), 국민(國民)'이다. 국가 구성의 3요소에 그대들은 없다. 대통령이란, 그저 국가의 근간이 되는 대한민국 영토에서 주권을 지니고 살아가는 국민들에 의해 권력을 '잠시' 부여받은 자이다. 따라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자가 대한민국 영토의 일부인 독도(獨島)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또한 주변국들로부터 우리나라의 주권(主權)을 수호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국가(國家) 구성의 근간(根幹)이 되는 국민(國民)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대한민국 헌법 제69조는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고 규정하고 있다.

 

왜 대통령은 취임 선서를 '국민 앞에 엄숙히' 할까? 국민이 바로 권력이기 때문이다. 즉,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권력의 근원(根源)이 국민이라면, 권력이 국민을 이길 수 없다. 아니 권력이 국민을 이겨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극상(下剋上 ; 계급(階級)이나 신분(身分)이 낮은 사람이 윗사람을 꺾고 오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대표직을 수행해 달라고 선출해 준 국민을, 대표로 선출된 자가 이길 수 있는가? 구성원들에 의한 피선출자가, 선출자들을 이긴다는 것이 순리에 맞지 않는다. 만약 국민에 의해 선출되어 권력을 쥔 자가 어떤 사항에 대해 국민을 이기려고 한다면, 국민 다수(多數)의 동의를 구해야 하고, 동의를 구하지 못한 채 무리한 권력을 행사하게 되면, 그 권력이 행사하는 일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4.19 혁명'의 고귀한 교훈을 알고 있다. 이승만 전(前) 대통령이 본인 또는 측근들의 부당한 권력 행사로 인한 각종 문제로 인해 국민의 뜻에 따라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권좌(權座)에서 물러난 사실을 엄연히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알고 있는 그대들도 2008년 2월 25일에 제17대 대통령 취임과 함께 출범하면서 '국민을 섬기는 정부'라는 모토로 36개의 국정과제를 설정하였다. 그리고 임기 5년 곧 60개월 가운데 이제 고작 16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정작 국민을 섬기는 것이 아니요, 또 다른 권력을 섬기고, 재벌을 섬기고, 무한 경쟁을 섬기고 있다. 어쩌면 이제 정부는 '국민을 섬기는 정부'라는 깃발을 내려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임기가 44개월이나 남아 있는데, 벌써부터 선거 당시 그대들을 믿고 지지했던 국민들조차 등을 돌리려고 하고 있다면, 그대들은 앞으로 어디로 흘러가려는가?

 

인간은 나이의 많고 적음이나 직위의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실수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어린 아이도, 청소년도, 어른도, 노인들도, 일을 하다 보면, 살다보면 실수나 잘못을 할 수 있다. 좋은 의도로 일을 하다가, 생각지도 못한 변수로 인해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 우리는 완전하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하지 못한 존재가 조금이라도 더 잘 살기 위해서, 정치를 필요로 하고, 경제를 필요로 하고, 문화를 필요로 한다. 완전하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에, 조금 더 잘 살아보기 위해 그런 것들이 필요한 것이다.

 

즉, 이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실수나 잘못을 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에는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인정(認定)'하고 가급적 빨리 고치거나 바람직한 방법을 모색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가르침을 우리는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다. 여기서 핵심적인 것은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면 용서받을 수 있지만,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대들은 요즘에도 열심히 기독교 성경(聖經)을 읽고 있을 것이다. 그 성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마태 7:7-8)'이라고 했으며,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마태 18장 22절)'. 기존의 잘못과 실수에 대해 진심으로 인정하고 반성하여 용서를 구하면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면 얼마든지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는 '성숙한' 국민이다. 과거에도 그래왔고, 현재도 그러할 것이고, 아마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만큼 마음이 넓고 모질지 못한, 잘못이나 실수를 저지른 다른 사람을 넓은 아량으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보듬어 안을 줄 아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국민이 곧 '예수'이기 때문이다. 이는 국민이 곧 '부처'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제 그대들은 내가 만나는 학생들에게 더 이상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수를 하였든 잘못을 저질렀든, 그냥 깨끗하게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설득할 것은 설득해야지, 그냥 '소떼 몰이 식'의 정책 추진은 우리 국민들 사이의 갈등만을 조장할 뿐이다. 이제 그대들은, 국민들의 손에 다시 켜지고 있는 촛불을 강제적으로 끄려고만 하지 말고, 그대들이 지난 2008년 2월 '섬기는 정부' 출범식에서 가슴 속에 키웠던 국민에 대한 사랑의 촛불이 꺼지지 않았나에 대해 돌아보아야 한다. 방패와 몽둥이로 국민의 손에 들린 촛불을 끌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국민들의 마음 속의 촛불은 절대 끌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2년 전 겨울, 즉 2007년 12월 19일, 대통령 직선제 실시 이후 국민들에게 가장 많은 지지율(투표자 중 48.7% 지지)로 당선된 한 대통령의 탄생을 지켜보며 흥분했다. 어려운 우리 경제를 다시 일으킬 수 있으리라는 소박한 희망으로, 그래서 결국 '나' 자신의 삶도 조금 더 행복해 질 수 있으리라는 소박한 희망으로, 다시는 과거의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는 진정한 선진 대한민국을 이루어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가슴에 뿌듯한 희망을 품었었다. 아니 적어도 지지자가 아니었던 사람들도, 민주주의 원칙과 방법에 따라 당선되고 구성된 그대들이 앞으로 국정을 잘 이끌어 나가기를 마음 속으로 기원했을 것이다. '내'가 지지한 사람이 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국민의 대다수가 선택'했다면, 그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리고 적어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자식들에게 동생들에게 후배들에게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기에...

 

그런데 요즘 나의 주변에서는 그 당시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대들이 '국민을 섬기는 정부'라는 표어를 내걸고 출범한 지 16개월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은 자신들이 선출한 대표자인 그대들의 몰염치함에 대해 꽤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우려를 품고 있는 듯하다.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고, 용서를 구할 줄 모르고, 취임 초기에 국민들 앞에서 행복한 대한민국 건설을 다짐했던 그 약속을 잊어버린 채 오히려 국민들의 손에 들려있는 희망의 촛불, 행복의 촛불을 빼앗으려고 하는 '그대들'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이전에 비해 많이 늘었다.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면, 권력은 하인이요 국민이 주인일진대, 어찌 감히 '건방지게' 하인이 주인을 이기려 하고 누르려 한단 말인가? 사람이 아무리 망각의 동물이라고는 할지언정, 어찌 5년의 임기 동안 이제 겨우 16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이토록 철저하게 국민 고마운 줄 모르고, 국민들 앞에 그대들이 했던 '섬기기'로 한 약속을 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대들은 거짓말쟁이이거나 아주 심한 건망증 환자라도 된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사회의 일각에서 일고 있는 '탄핵'의 움직임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정치 보복은 또 다른 정치 보복을 부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무엇을 잘못하거나 실수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반성과 사과 그리고 변화를 요구하기 전에 '탄핵'부터 요구한다면, 순서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이른바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반성과 사과 그리고 변화를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선(改善)의 여지가 전혀 없다면 고려해 보아야 할 터지만, '내가 당했으니 너도 당해 보아라.'식의 '정치 보복성 탄핵 논쟁'으로는 이 혼란한 정국을 정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 학생들 앞에 서기가 무척 부끄럽다. 아니 점점 갈수록 창피해 못 살겠다. 기성 세대로서, 아이들에게 행복하고 기쁨과 사랑이 넘치는 사회를 제공하지는 못할망정, 강한 자가 약한 자에 대해 배려하거나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서로 간의 이해와 사랑으로 서로 감싸 안지는 못할망정,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온갖 시기와 질타 그리고 갖은 협박과 구박 그리고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를 기성세대가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정말 학생들에게 부끄럽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또한 대한민국은 헌법을 통해 엄연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일도 한 사람의 입에 따라 무리하게 추진되기도 하고, 그런 과정에서 사람들이 죽거나 다쳐 나가도 '잘못했다, 미안하다' 사과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오만함! 그 몇 사람의 오만함으로 인해, 거리에서는 죄 없는 국민들과 죄 없는 전경들이 서로 부딪히고 터지고 째지고... 결국 국민을 보호하라고 조직한 경찰이 들고 있는, 국민들의 세금으로 만든 방패가 오히려 국민을 공격하는 무기로 전락해 버리고, 바로 지난 달에 자식을 전경에 보낸 사람들이 자식 같은 전경들과 길거리에서 서로 치고 받고 싸우고,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그 모습을, 오늘 내가 만난 학생들도 TV를 통해, 인터넷을 통해 보고, 듣고,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 학생들도 어쩌면 그러한 아수라장 뒤에서는, 그 아수라장을 조장한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감춘 채 냉소(冷笑)를 짓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제 많은 전쟁터에 나서서 죽거나 다치는 젊은 군인들 뒤에는, 미래의 주인공인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몰아놓은, 욕심으로 가득 찬 어떤 비도덕적 권력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학생들도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교과서를 통해 이미 배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들과 '나'를 포함한 우리 기성세대 모두는 분명히 기억하여야 한다. 현재 내가 만나는 '젊은 학생'들이 이제 머지 않아 우리 사회의 주역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을... 그리하여 그들은 미래에, 오늘 우리가 저지른 각종 만행과 비행과 비리와 비도덕과 비양심과 비겁과 옹졸함에 대하여 평가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 엄연한 사실 앞에 두려워하지 않을 기성세대가 있다면, 그 사람은 무척 오만(傲慢)한 사람이다. 형은 아우를 두려워해야 하고, 부모는 자식을 두려워해야 하고, 선배는 후배를 두려워해야 하고, 교사는 제자를 두려워해야 하고, 정치인은 유권자를 두려워해야 하고, 대통령은 국민을 두려워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교사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다. 한 어원 연구에 따르면 '가르치다'라는 말은 '옳고 그름'을 '가를(구분할) 수 있도록 치는(기르는)' 행위를 말한다. 교사의 책무(責務)에 대한 이 엄연한 명제는 그 어떤 폭압(暴壓)도 그 어떤 유화책도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이 교사의 책무는 법(法)에 앞서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법은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강압적으로 휘두르는 권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 정신'은 소수(少數)의 이익(利益)이나 구속(拘束) 이전에, 다수(多數)의 자유(自由)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교사인 나는 학교에서 이렇게 가르친다.

 

그렇다면 우리 '교사'나 대학 '교수'는 너나 할 것 없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즉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을 구분하여, 옳지 않은 것을 보면 고치도록 노력하는 이른바 '행동하는 양심'을 가르칠 사회적 의무가 있는 사람들! 따라서, 뜻이 같을진대 어찌 하는 일이 다를 수 있으랴! 오히려 교사들의 시국 선언이 늦은 부분에 대하여 교사들 스스로 반성할 일!!!!

 

만약 정부나 교육 당국이 교사들에게 이러한 목소리조차 내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은, 교사로서의 책무와 양심, 그리고 매일 학생들 앞에 서서 '진실하라!'고 외쳐야 하는 교사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 이미 마음 속에 수 많은 촛불을 켜 놓고 있는 학생들 앞에서 책무와 양심을 도외시한 교사들이 도대체 무엇을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말한다. 그래서 내 마음의 자유로움으로 말할 수 있다. 대통령을 포함한 우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다시 새로운 희망의 촛불을 마음 속에 키워야 한다.  '그대들이', 그대들의 방패와 진압봉으로 바람을 일으켜 내 손에 들린 촛불을 끌 수는 있어도, 바람이 거셀수록 오히려 마음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이 촛불은 어찌할 수 있단 말인가?

 

한편으로는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 본다. 그렇다면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나'에게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은 있는가? 만약 없다면 교사로서 그런 능력조차 기르지 않고 지금까지 무엇하며 살았는지 반성해야 하고, 만약 있다면 그 판단의 잣대(기준)은 과연 옳은가에 대해 스스로 명상하며 고민해야 한다. '성경(聖經)을 읽기 위해 촛불을 훔치는 행위는 정당한가?'

 

  그대들이여! 시국선언에 서명한 그 수 많은 사람들을 징계하려고만 들지 말라! 징계를 논하기 전에 그들이 도대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에 대해 먼저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어라! 그것이 현 시국을 타개하는 첫걸음인 것이다. 국민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 권력은, 국민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권력은 결국 그 국민들에게서 외면 받게 된다는 엄연한 역사의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들이여, '생각하는 사람'을 징계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나'를 징계하라! 그렇게 징계하고 싶으면 100번이라도 1,000번이라도 징계하라! 하지만, '나'를 징계하기 이전에, 그대들의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 반성할 줄 모르고 사과할 줄 모르고 용서를 구할 줄 모르는 '그대들의 그 오만함'과, 당신들을 선출해 준 국민들과 대화하거나 소통하려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밀어 부치려는 '그대들의 그 방자함'을 스스로 먼저 징계해야 해야 할 것이다. 징계가 이번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그대들 스스로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여, 국민들과 소통하고 손 잡는 것이 문제 해결의 열쇠임을 그대들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대들이여, '말하는 사람'을 징계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나'를 징계하라! 그렇게 징계하고 싶으면 100번이라도 1,000번이라도 징계하라! 하지만, 그대들은 기억하라! 대한민국 헌법은 엄연히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거나 통제된 사회는 더 이상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사회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또한, 그대들이 '나'의 몸과 교사라는 직책을 징계할 수는 있어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나'의 마음과 매일 학생들을 만나야 하는 한 시골 고등학교 담임 교사의 양심까지 징계할 수는 없다는 것을...

 

그대들이여, '행동하는 양심'을 징계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나'를 징계하라! 그렇게 징계하고 싶으면 100번이라도 1,000번이라도 징계하라! 하지만, 또한 기억하라! 내가 매일 만나는 학생들은 교과서를 통해서,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본래부터 권력은 국민을 이길 수 없다고 배운다. 따라서, 권력은 국민을 이기려 하면 안 된다. 또한 그 학생들은 매일 학교에서 교과서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는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고 서민들의 안정된 삶과 남북의 평화가 실현된 미래를 지향한다고 배우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 앞에 엄연히 펼쳐질 미래의 주인공으로서 이제 곧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 우리 기성세대를 역사 앞에 단죄할 것이라는 것을 똑바로 기억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대들에게 당부한다.

  그대들이여, 국민을 이기려 하지 말라!

  그대들이 표방한 그대로 국민을 '섬겨라!'.

  국민을 힘으로 '누르려' 하지 말라! 만약 그럴 경우, 국민은 그대들에게 '잠시 맡긴' 권력을 다시 거두어들이게 될지도 모른다.

  국민이 곧 예수요, 국민이 곧 부처임을 잊지 말라!

  알아들을 귀가 있으면 알아 들으라!

 

2009년 6월 29일

 

1987년 6월 29일 민주정의당(민정당) 대표 노태우(盧泰遇)가

국민들의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요구를 받아들여 특별선언을 발표한 지

22주년 째 되는 날에

 

덧붙이는 글 | <경향신문> '기사 제보'란에도 게재하였습니다.


#교사#징계#민주주의#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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